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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3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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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2편 8절 칼럼n - 하나님의 인도하심: 길을 잃은 이들에게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삶은 때로 예측할 수 없는 길로 우리를 이끈다. 직장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건강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방향을 잃고 방황한다. 이러한 순간, 시편 32편 8절은 깊은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혼자 두지 않으시며, 세심하게 인도하신다는 약속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어디서 살아갈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이러한 결정 앞에서 불안과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은 취업 시장의 불확실성에 압도당하고, 가정을 꾸린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은 우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아시고, 그분의 지혜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때로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과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즉각적인 답이나 명확한 신호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종종 침묵 속에서, 또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통해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 실패로 보였던 한 사건이 결국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줄 때, 우리는 뒤늦게 그분의 손길을 깨닫는다. 한 친구는 해고당한 후 절망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진정 원하던 일을 찾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 속에서도 길을 열어주신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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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또한 하나님의 “주목”에 대해 말한다. 이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를 살피시는 모습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지켜보듯, 하나님은 우리를 세심히 돌보신다. 이 사랑은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도 변함없다. 과거의 잘못이나 현재의 혼란으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구절은 새 출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오늘 우리를 새롭게 인도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을까? 먼저,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해야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지혜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교회나 소그룹에서 만난 한 사람의 조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완벽한 확신이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그분의 길이 드러난다.

시편 32편 8절은 우리 모두에게 공감되는 메시지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우리는 모두 길을 찾는 여정에 있다. 이 여정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동반자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주목하시고, 사랑으로 훈계하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오늘, 당신이 어떤 길에 서 있든, 이 약속을 붙잡으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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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4. 3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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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7장 19절 강해 - 입술의 열매와 하나님의 평강

제목: 입술의 열매와 하나님의 평강
본문: 이사야 57장 19절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57장 19절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평강과 치유를 가져다준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술을 통해 찬양과 선포의 열매를 창조하시며, 그분의 평강이 거리와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임한다고 약속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핵심 포인트를 살펴보고, 이를 성경의 다른 구절과 연결하며,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1. 입술의 열매: 하나님의 창조와 우리의 찬양

본문은 하나님을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로 묘사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찬양, 기도, 그리고 선포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3:15는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입술은 단순히 말을 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으로 찬양과 증언의 열매를 맺는 통로입니다.

-관주: 시편 51: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다윗은 죄로 인해 막힌 입술이 하나님의 은혜로 열리기를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으로 가능해집니다.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의 입술은 말씀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적용: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도구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어떤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대화와 기도, 찬양이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을 반영하도록 노력합시다. 예를 들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와 찬양의 말을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평강의 보편성: 먼 자와 가까운 자 모두에게

하나님은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평강이 지리적, 문화적, 영적 거리에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임한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선포합니다. 에베소서 2:17은 예수님이 "멀리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다"고 증언하며, 이 평강이 십자가를 통해 완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관주: 요한복음 16:33: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리라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세상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을 약속하십니다.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후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느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평강은 모든 신자의 몫입니다.

-적용: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상황이나 위치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멀리 떨어진 선교지에서나, 우리의 일상 속에서나,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를 붙드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평강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웃이나 동료와의 갈등 속에서도 평강의 메시지를 전하며 화해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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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치유의 약속: "내가 그를 고치리라"

본문의 절정은 하나님의 선언, "내가 그를 고치리라"입니다. 이 치유는 단순히 육체적인 회복을 넘어 영적, 정서적, 관계적 회복을 포함합니다. 이사야 53:5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의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완성된 치유를 예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관주: 예레미야 17:14: "여호와여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만이 참된 치유의 근원이심을 고백합니다. 베드로전서 2:24: "그가 나무에 달려 친히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그의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완전한 치유를 보장합니다.

-적용: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모르지 않으십니다. 상한 마음, 무너진 관계, 영적 갈급함을 그분께 가져갈 때 치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상처를 내어놓고 치유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치유받은 자로서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이사야 57:19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의 입술, 우리의 삶,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을 통해 찬양의 열매를 창조하시고, 모든 이에게 평강을 주시며,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도전받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저주와 불평이 아닌 찬양과 복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처는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 아래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삶 속에서 실천합시다.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평강을 선포하고, 치유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술을 열어 주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너를 고치리라." 이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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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30.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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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 24절 묵상 - 값없이 얻은 의: 하나님의 은혜, 속량의 선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짧지만 깊은 진리를 담고 있는 로마서 3장 24절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꿰뚫는 선언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영원한 심판 아래 놓였던 인간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릴 수 있게 되었는지 그 놀라운 비밀을 공개합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값’과는 상관없이 ‘값없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감격과 감사를 안겨줍니다.

먼저 주목해야 할 단어는 ‘속량’입니다. 속량(贖良, redemption)은 값을 치르고 죄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속량은 노예를 돈을 주고 사서 자유롭게 하거나, 전쟁 포로를 몸값을 지불하고 풀어주는 행위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속량’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로 우리의 죄로 인해 짊어져야 할 영원한 형벌, 즉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신 사건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죄는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그 어떤 인간적인 노력이나 선행으로도 갚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흠 없는 희생만이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단어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恩惠, grace)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호의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우리의 공로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의 행위나 자격으로 의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라고 불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염치조차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 하심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며,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놀라운 사랑의 표현입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의 모든 허물을 묻지 않고 조건 없이 그를 받아주었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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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강조되는 것은 ‘값 없이’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데 어떠한 대가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의 선행, 헌신, 재물 등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의를 살 수 있는 ‘값’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구원의 길을 하나님께서 친히 열어주셨다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셋째, 우리에게 값없이 의로움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그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과 성취를 통해 인정받고 가치를 인정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로움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값없이 받은 이 놀라운 구원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겸손과 감사를 가르쳐주며,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는 능력 있는 복음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본문에서 ‘속량’과 ‘하나님의 은혜’는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며, 이 두 가지가 우리의 의롭다 하심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2. 나는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감사하고 있는가? 나의 삶 속에서 이 은혜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3.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어떻게 전하고 그 은혜를 나누어야 할까?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죄로 물든 저희를 값없이 의롭다 여겨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구원하여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고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저희 또한 값없이 받은 이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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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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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4장 9절 칼럼n - 죄와 은혜: 우리의 선택이 만드는 차이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이 성경 구절은 단순하면서도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와 정직함을 통해 은혜를 경험하는 삶 사이의 대비는,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공감되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말씀은 우리의 선택과 태도가 삶의 질과 관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죄’라는 단어를 무겁고 종교적인 개념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말하는 죄는 단순히 도덕적 규범을 어기는 것 이상이다. 이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신을 속이며, 잘못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친구의 신뢰를 저버리고도 “그저 실수였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순간, 우리는 미련한 자의 길을 걷는다. 이런 태도는 결국 관계를 망치고, 마음에 불안을 남긴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SNS에서 가벼운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상처 입히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죄를 심상히 여기는 태도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반면, 정직한 자는 잘못을 직시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정직은 단순히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을 넘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이런 태도는 은혜를 낳는다. 은혜는 용서, 화해, 그리고 관계의 회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실수를 저지른 동료가 솔직히 사과하고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어진다. 이는 은혜가 작동하는 순간이다. 정직함은 신뢰를 쌓고, 상처를 치유하며,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연결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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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로를 제시한다. 잘못을 가볍게 여기며 자신을 속일 것인가, 아니면 정직하게 마주하며 은혜를 경험할 것인가. 현대인의 삶은 바쁘고 복잡하다. 우리는 종종 실수를 덮거나 변명으로 시간을 절약하려 한다. 하지만 잠언 14:9은 그런 선택이 결국 우리를 더 깊은 고립과 불안으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고한다. 반대로, 정직함은 처음에는 불편할지라도 결국 우리에게 자유와 평안을 가져다준다.

누구나 실수한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태도다. 친구에게 상처를 준 말을 했을 때,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에게 은혜를 경험하게 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혹은 내면에서 우리는 매일 이 선택의 순간을 만난다. 죄를 심상히 여기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할 때, 우리는 은혜의 길로 들어선다.

결국, 이 구절은 우리 모두에게 공감되는 보편적 진리를 전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삶은 어렵지만, 그 길 끝에는 은혜와 평화가 기다린다. 오늘,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미련한 자의 가벼움 대신 정직한 자의 은혜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하고 따뜻해질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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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4. 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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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장 14절 강해 - 사랑, 온전함의 띠

제목: 사랑, 온전함의 띠
본문: 골로새서 3장 14절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로새서 3장은 그리스도인의 새 삶을 설명하며, 덕목들을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그 중심에 사랑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랑을 "온전하게 매는 띠"로 묘사하며, 모든 덕목을 하나로 묶는 핵심 요소로 제시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사랑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사랑이 왜 필수적인지 세 가지 요점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은 모든 덕목의 완성이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2-13절에서 자비, 양선,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 등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나열합니다. 그러나 14절에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명령합니다. 사랑은 단순히 덕목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덕목을 완성하는 핵심입니다.

-관주: 고린도전서 13:13에서 바울은 "이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 이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영감 받은 말씀 속에서 가장 위대한 덕으로 강조됩니다. 요한일서 4:8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선언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되며, 그리스도인은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합니다.

_적용: 우리의 자비, 용서, 겸손은 사랑 없이는 불완전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용서할 때 진심 어린 사랑이 없다면 그 용서는 형식적일 뿐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사랑은 우리의 행동과 태도를 하나로 묶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드러냅니다.

2. 사랑은 온전함의 띠이다

"온전하게 매는 띠"라는 표현은 사랑이 모든 덕목을 하나로 묶어 완전한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옷을 고정하는 띠처럼,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합하고 견고하게 합니다.

-관주: 마태복음 22:37-40에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핵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는 띠입니다. 로마서 13:10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모든 계명을 포괄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필수 요소입니다.

-적용: 교회 안에서 갈등이 생길 때, 사랑은 화합의 띠가 됩니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성도들이 사랑으로 대화한다면, 분열 대신 화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 부부 사이에 사랑이 있다면 갈등이 온전함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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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랑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른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궁극적 모범이시며, 그분의 삶과 죽음은 사랑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관주: 요한복음 15:12-13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시며,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궁극적 표현입니다. 에베소서 5:2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은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됩니다.

-적용: 우리는 일상에서 희생적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웃을 돕거나,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따르는 길입니다. 교회에서는 약한 자를 품고, 세상에서는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맺는말[Conclusion]: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골로새서 3장 14절은 사랑이 모든 덕목을 완성하고,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묶는 띠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드러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깊이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함을 드러내는 자녀로 살아갑니다.

지금 이 순간, 사랑이 부족한 곳을 돌아보십시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용서가 필요하다면, 사랑으로 다가가십시오. 교회에서 갈등이 있다면, 사랑의 띠로 묶으십시오.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을 만난다면,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을 나누십시오. 사랑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매일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획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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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29.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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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18절 묵상 - 믿음과 행함의 조화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야고보서 2장 18절은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분명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이 구절은 믿음이 단순히 마음속 신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합니다.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이 분리될 수 없으며, 참된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증명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믿음이 어떻게 삶에서 구현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이 과연 진정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먼저, 이 구절은 믿음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게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성경의 가르침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일까요? 야고보는 이에 대해 아니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그는 믿음을 살아있는 생명체에 비유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움직이고,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 16절에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듯이, 참된 믿음은 그 열매인 행함으로 드러납니다. 믿음이 마음속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마치 씨앗이 땅에 심기지 않고 썩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 부르며(야고보서 2:17), 참된 믿음은 삶의 변화를 동반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행함이란 무엇일까요? 행함은 단순히 선행이나 외적인 활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과 공의로 이웃을 섬기는 삶의 태도를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야고보는 2장 15-16절에서 배고프고 헐벗은 형제에게 따뜻한 말만 전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질문합니다. 이는 행함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랑의 표현이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행함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연결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사건(창세기 22장)을 야고보가 언급한 것은, 그의 믿음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행함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행함이 단순한 도덕적 행동을 넘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 전체라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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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도전을 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믿음은 종종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으로 축소되곤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 것이 믿음의 전부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런 외적인 종교 행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경고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가난한 이를 돕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불의를 바로잡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태복음 25:40)고 하셨듯이, 우리의 행함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한편, 이 구절은 믿음과 행함의 균형을 생각하게 합니다. 행함이 믿음의 증거이지만, 행함 자체가 구원의 근거는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야고보와 바울의 가르침은 서로 상충되지 않고 보완합니다. 바울은 구원의 근거가 믿음에 있음을 강조하셨고, 야고보는 그 믿음이 반드시 행함으로 이어져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이는 마치 나무와 열매의 관계와 같습니다. 나무가 살아있기에 열매를 맺고, 열매는 나무가 살아있음을 증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우리를 겸손과 성찰로 초대합니다.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는 도전은 우리의 믿음이 과연 살아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과연 내 믿음을 삶으로 증명하고 있을까요? 내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고 있을까요? 이 질문들은 우리를 편안함에서 깨어나게 하고, 믿음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삶 전체로 살아내야 할 소명임을 일깨웁니다.

결론적으로, 야고보서 2장 18절은 믿음과 행함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선포합니다.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열매를 맺고, 행함은 믿음의 진정성을 드러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믿음이 세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빛으로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도록, 믿음으로 시작하여 행함으로 완성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믿음은 어떤 행함으로 드러나고 있습니까?
 - 내 일상에서 믿음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순간들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고 있는지 성찰해봅시다.

2. 행함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믿음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장애물이 있는지, 예를 들어 두려움, 무관심, 또는 우선순위의 문제 등을 생각해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해봅시다.

3.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위해 어떤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까?
 -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무엇일지,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의 발걸음을 계획해봅시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믿음이 말씀과 행함으로 살아 숨 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고, 주님의 공의를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저희를 성령으로 채우시어, 믿음과 행함이 조화를 이루는 참된 제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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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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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19장 7절 칼럼n - 공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다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종종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질문을 마주한다. 누군가는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또 다른 누군가는 권력이나 금전으로 특혜를 얻는다. 이러한 세상에서 성경 말씀인 역대하 19장 7절은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준다: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공정하신 성품을 드러내며, 우리에게도 공정한 삶을 요구한다.

공정함은 단순히 법적 정의를 넘어, 일상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선택에 스며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를 평가할 때, 우리는 그들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보는지, 아니면 개인적 호감이나 편견에 치우치는지 돌아봐야 한다.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특정인을 편애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치우침 없는” 삶을 살라고 촉구한다. 이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거나, 친한 이들에게 더 관대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정함을 본받는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뇌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뇌물은 단순히 금전적 뇌물을 넘어,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모든 유혹을 상징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는 아첨, 권력, 혹은 사회적 압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를 받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거나,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원칙을 저버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행동은 결국 우리의 양심과 신뢰를 무너뜨린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로도 타협하지 않는 정직함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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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은 또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그분의 공의로운 기준을 따르려는 경외심이다. 이런 마음은 우리가 불공정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준다. 예를 들어, 사회적 불평등이나 차별을 목격했을 때, 침묵하거나 동조하기보다는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역사 속 많은 개혁가들은 신앙을 바탕으로 불의에 맞서 싸웠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인종차별에 맞서며 공정함을 외쳤고, 그의 신앙은 그를 불의 앞에서 굳건히 세웠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특정인을 편파적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공정함을 실천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학교, 직장, 가정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만든다. 예를 들어, 팀 프로젝트에서 소외된 동료를 포함시키거나, 친구들 사이의 갈등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공정함의 실천이다.

결국, 역대하 19장 7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정하신 성품을 반영하며 살아가라고 도전한다. 세상은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공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치우침 없이, 뇌물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작은 선택이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씨앗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한 걸음 더 공정함을 향해 나아가 보자.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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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4. 2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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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34-35절 강해 - 새 계명 - 서로 사랑하라

 

제목: 새 계명 - 서로 사랑하라

본문: 요한복음 13장 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중 가장 강력하고 본질적인 명령이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나타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며 세상에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내는 증표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세 가지 요점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성경의 다른 구절과 연결하며,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1. 새 계명의 의미: 사랑의 명령

예수님께서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계명은 구약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와 연결되지만, 예수님은 이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셨습니다. 이 사랑은 단순한 이웃 사랑을 넘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본받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은 이를 명확히 설명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새 계명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반영하며, 이 사랑은 우리의 감정이나 조건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 계명은 제자들에게 주어졌지만,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됩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이 선택이 아니라 명령임을 강조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의지와 결단을 요구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핵심임을 깨닫게 됩니다.

-적용: 우리는 일상에서 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가족, 친구, 심지어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실수를 용서하거나, 필요할 때 시간을 내어 도움을 주는 작은 행동이 새 계명을 실천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2. 사랑의 모범: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말씀으로 사랑의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요한복음 15장 13절은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 말씀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기를 낮추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고 증거합니다. 이 사랑은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오직 상대를 위한 희생과 헌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또한 죄인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사랑도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기 위해 우리는 자아를 내려놓고 타인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거나, 교회에서 우리의 편안함보다 다른 성도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을 따르는 길입니다. 이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과 싸우는 일이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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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랑의 증거: 제자의 표징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세상에 증거하는 가장 강력한 표징입니다. 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초대교회는 이 사랑의 증거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든 것을 공유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웠다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저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다”라고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사랑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도구입니다.

-적용: 우리의 사랑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거나, 어려운 이웃에게 물질적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기회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은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입니다. 이 사랑은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본받아 조건 없이 타인을 섬기는 것이며, 세상에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내는 증표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사랑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고 있는가?

이 계명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이기적인 본성 때문에 사랑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며,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의 삶에 반영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이 계명을 더욱 힘 있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작은 일이라도 사랑의 행동을 시작합시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교회에서 서로를 품는 마음을 가집시다. 우리의 사랑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뜨리고, 모든 사람이 우리를 보고 “저들이 예수님의 제자다”라고 고백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새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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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