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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1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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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편 7절 칼럼n - 풍성한 사랑이 이끄는 예배의 길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삶은 때로 예측할 수 없는 파도와 같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종종 길을 잃는다. 하지만 시편 5편 7절은 단 한 구절로 마음 깊은 곳에 따뜻한 위로와 방향을 제시한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이 말씀은 특정 종교를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사랑과 경외, 그리고 헌신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먼저, “풍성한 사랑”이라는 표현은 우리의 가슴을 두드린다. 사랑은 인류가 공유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다. 부모의 품, 친구의 위로, 낯선 이의 친절 - 우리는 크고 작은 사랑의 순간들로 삶을 버텨낸다. 이 구절은 그 사랑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상기시킨다. 누군가는 이를 신의 사랑으로, 또 누군가는 우주의 선한 에너지로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사랑이 우리를 결코 외롭지 않게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어머니가 병든 아이를 위해 밤을 새우며 기도하는 모습은 이 “풍성한 사랑”이 실체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 사랑은 그녀를 지탱하고, 결국 아이를 향한 헌신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사랑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렇다면 “주의 집에 들어가”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이 머무는 곳, 우리가 진정으로 소속감을 느끼는 안식처를 상징한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모인 식탁이고, 다른 이에게는 자연 속 고요한 숲길일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경쟁과 비교 속에 지친다. 2023년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0% 이상이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피로를 느낀다고 답했다. 이런 현실에서 “주의 집”은 우리가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이다. 한 직장인은 매일 아침 10분간 명상을 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그는 그 시간을 “내 안의 성전”이라 부른다. 이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는 안식의 공간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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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경외함으로”라는 표현은 또 다른 울림을 준다. 경외는 두려움과는 다르다. 그것은 깊은 존경과 겸손이다. 우리는 삶에서 마주하는 거대한 자연, 끝없는 우주, 혹은 타인의 희생 앞에서 경외심을 느낀다. 예를 들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헌신한 의료진을 보며 많은 이들이 그들의 희생에 숙연해졌다. 경외는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더 큰 가치를 향하게 한다. 이 구절은 예배를 통해 그 경외심을 표현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예배는 단순히 종교적 의식이 아니다. 한 학생이 스승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는 것, 자원봉사자가 노인 요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 이 모두가 경외심에서 비롯된 예배의 형태다.

마지막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는 결심의 선언이다. 삶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우리는 방향을 잡고 나아가겠다는 의지다. 현대인은 종종 목표를 잃는다. SNS는 끊임없이 남들의 삶을 보여주며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이 구절은 말한다. 진정한 예배는 외부의 소음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한 예로, 40대 회사원인 김 씨는 몇 년 전 번아웃으로 모든 걸 놓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등산을 시작했고, 산 정상에서 느끼는 고요함이 그를 살렸다. 그는 매주 산을 오르며 자신만의 “예배”를 드린다. 그것은 그에게 삶의 목적을 되찾게 했다.

시편 5편 7절은 단순한 종교적 문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시작해 경외로 이어지고, 결국 헌신으로 완성되는 삶의 여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성전”을 향해 걷는다. 그 길에서 풍성한 사랑은 우리를 이끄는 등불이다. 이 메시지는 종교, 국경, 시대를 초월해 누구나의 가슴에 닿는다. 오늘, 당신은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 예배는 당신을 어디로 이끄는가? 잠시 멈춰 그 길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힘을 얻는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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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4. 1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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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 20절 강해 - 참된 예배의 장소와 본질

제목: 참된 예배의 장소와 본질
본문: 요한복음 4장 20절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한복음 4장 20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하며 예배의 장소에 대한 논쟁을 제기합니다. 그녀는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말하며, 예배의 장소에 대한 오랜 갈등을 드러냅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지리적 장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참된 예배의 본질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대한 깊은 신학적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참된 예배의 장소와 본질을 세 가지 요점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통해 그 의미를 확장하며,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결론에서 서술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1. 예배의 장소는 더 이상 지리적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심 산과 예루살렘이라는 두 장소를 언급하며 예배의 올바른 장소에 대해 묻습니다.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예배의 장소를 둘러싼 오랜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 21절에서 예수님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오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배가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관주: 시편 139:7-10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곳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서 10:19-22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음을 강조합니다. 이제 예배는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곳에서 가능합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교회 건물이나 특정 장소에 예배를 제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정, 직장, 일상의 모든 순간이 예배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입니다. 예배의 장소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줍니다.

2.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져야 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 23-24절에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고 말씀하시며 예배의 본질을 정의하십니다. 여기서 ‘영’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우리의 내면적 헌신을,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합니다. 참된 예배는 형식이나 외적인 의식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예배입니다.

-관주: 로마서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인 예배니라.” 이 말씀은 예배가 단순히 주일 예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29:13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 구절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진실한 마음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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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우리의 예배가 형식에 치우치지 않도록 점검해야 합니다. 찬양을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예배는 생명력 있는 예배가 됩니다. 예배는 단순히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입니다.

3. 예배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다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은 예배의 장소에 대한 논쟁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질문 너머로 그녀를 이끄십니다. 요한복음 4장 25-26절에서 여인이 메시아를 언급하자, 예수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고 자신을 메시아로 계시하십니다. 이는 예배의 중심이 예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참된 예배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관주: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분명히 합니다. 에베소서 2:18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느니라.” 이는 예수님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적용: 우리의 예배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참된 예배자로 설 수 있습니다. 예배할 때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떠난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맺는말[Conclusion]:

요한복음 4장 20절에서 시작된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은 단순한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질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과 참된 예배의 본질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예배가 더 이상 그리심 산이나 예루살렘에 국한되지 않으며, 영과 진리로 드려져야 하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삶에 깊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예배를 교회당 안에서의 예배 시간으로만 한정 짓거나, 외적인 형식에 치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일상이 예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 직장에서 정직과 사랑으로 동료를 대하는 순간,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순간 - 이 모든 것이 예배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예배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분의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의 예배는 형식적인 의식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찬양과 헌신으로 넘치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린 예배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게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단순히 물을 긷는 여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예배의 장소는 우리의 마음이고, 예배의 중심은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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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14.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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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9편 11절 묵상 - 여호와의 힘과 평강의 복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이 짧지만 강렬한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두 가지 선물, 즉 힘과 평강을 선포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어떻게 이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지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에 임하는 약속입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한계를 마주하며 때로는 지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드십니다. 이 힘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담대함, 그리고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인내의 힘입니다. 이사야 40:31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힘은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며,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은 단순히 개인적인 능력에 그치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기 백성”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이 힘은 교회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어집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힘은 더욱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도전 속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의 사명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힘을 받아 서로를 세워주고, 복음을 전하며,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백성으로 부름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또 다른 선물, 평강을 약속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강(샬롬)은 단순히 갈등의 부재를 넘어, 온전함과 조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오는 안식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몰아갑니다. 경제적 불확실성, 건강의 위협, 관계의 갈등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며 평강을 앗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혼란 속에서도 우리에게 참된 평강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16:33에서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평강은 세상의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오직 하나님께 뿌리를 둔 평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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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평강은 단순히 마음의 위로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평강은 우리를 변화시켜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가게 합니다. 마태복음 5:9에서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우리로 하여금 분열과 갈등을 넘어 사랑과 화합을 이루는 삶을 살게 합니다. 이는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되어 가정, 교회, 나아가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반영하며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시편 29편 11절은 힘과 평강이라는 두 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온전한 돌보심을 보여줍니다. 힘은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이기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며, 평강은 그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받은 자는 그 힘을 통해 평강을 경험하고, 평강 안에 거하는 자는 다시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습니다. 이는 마치 호흡처럼, 우리의 영적 삶을 지속시키는 순환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에 하나님의 평강이 흐르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연약함과 불안 속에 있다면, 이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초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며, 우리의 평강의 근원이십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그분께 우리의 모든 짐을 맡기며 나아갑시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상기시킵니다. “주시리로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의 백성에게 힘과 평강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감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편 29편 1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평강의 복을 충만히 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약속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과 평안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의지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는가? 어떤 상황에서 그 힘을 더 구해야 할까?
2. 내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흐르고 있는가? 불안이나 갈등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어떻게 맡길 수 있을까?
3. 나는 하나님의 힘과 평강을 통해 가정, 교회, 세상에서 어떻게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시편 29편 11절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힘과 평강의 약속을 감사합니다. 연약한 저에게 새 힘을 주시고, 불안한 마음에 참된 평강을 부어주소서. 이 복을 받아 가정과 공동체에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게 하시고, 모든 상황에서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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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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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0장 42절 칼럼n - 싸우시는 하나님, 우리의 희망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

성경 구절 하나가 때로는 깊은 위로와 깨달음을 준다. 여호수아 10장 42절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희망을 주는 메시지다.

삶은 종종 전쟁터와 같다. 일터에서의 경쟁, 가정에서의 갈등,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때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고, 홀로 싸워야 하는 외로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 구절은 하나님이 우리의 싸움을 대신해 주신다고 말한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강대한 적들을 마주했을 때, 그들의 승리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으로 가능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편에서 싸우신다.

하나님의 싸움은 단순히 외적인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얻었지만, 그들의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과의 동행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성공뿐 아니라 마음의 평안, 관계의 회복, 그리고 삶의 의미를 주신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던 누군가가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고, 결국 예상치 못한 기회로 상황이 바뀌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신다는 증거다.

이 구절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단번에’라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개입은 때로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순간, 놀라운 속도로 이루어진다. 몇 년간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하루아침에 풀리거나, 오랜 갈등이 한 번의 대화로 정리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이는 하나님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지쳤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개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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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말씀을 읽으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왜 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 “하나님은 정말 내 편인가?” 이런 질문은 자연스럽다. 여호수아의 승리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수많은 전투와 기다림,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의 여정을 아시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더 큰 그림을 그리신다. 지금 당장 승리가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이 구절은 모든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준다. 종교적 배경이 없더라도, 우리는 모두 삶의 무게를 느끼고, 누군가 우리를 위해 싸워주길 바란다. 여호수아 10장 42절은 그 ‘누군가’가 우리 곁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넘어질 때 손을 내미신다.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힘이다.

오늘, 당신의 싸움은 무엇인가?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 혹은 마음의 상처일 수 있다. 어떤 상황이든, 이 말씀은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싸우신다. 그분의 방법과 시간은 다를지라도, 그분의 약속은 변함없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서 승리했듯, 당신도 결국 승리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하나님의 싸움을 믿으며, 오늘의 전투를 이겨내보자. 당신의 삶에도 ‘단번에’라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이 희망이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한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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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4. 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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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2편 8절 강해 - 하나님의 인도와 훈계의 은혜

제목: 하나님의 인도와 훈계의 은혜
본문: 시편 32편 8절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시편 32편 8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훈계하시는 사랑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은 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기록한 것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포인트로 하나님의 인도와 훈계의 은혜를 살펴보고, 성경의 다른 구절을 통해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가르침: 올바른 길로 인도하심

시편 32편 8절의 첫 부분,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방향 3을 제시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세상은 혼란과 유혹으로 가득하며,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올바른 길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방황하게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분명한 길을 보여주십니다.

-관주: 이사야 30:21 - "네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하는 소리가 네 귀에 들리되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리로 가라 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택과 결정 속에서 세밀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적용: 우리는 일상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찾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진로를 선택하거나 가정 문제를 해결할 때 성경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구한다면, 그분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아침에 잠깐 시간을 내어 잠언이나 시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주목: 세심한 돌보심

두 번째로, "너를 주목하여"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순히 멀리서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하게 살피신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주목하다"는 단어는 깊은 관심과 애정을 담고 있으며, 마치 목자가 양을 돌보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신다는 이미지를 줍니다.

-관주: 마태복음 10:29-31 - "참새 두 마리가 한 아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얼마나 세밀하고 개인적인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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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삶의 고난이나 두려움 속에서 외롭다고 느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주목하고 계심을 기억합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가정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고 고백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작은 행동 - 친구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이웃을 돕는 일 - 을 통해 하나님의 주목하심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훈계: 사랑으로 교정하심

마지막으로, "훈계하리로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훈계는 단순한 벌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한 교정의 과정입니다. 다윗은 시편 32편에서 죄를 숨겼을 때 고통받았지만, 회개 후 하나님의 용서와 훈계를 통해 자유를 얻었습니다.

-관주: 히브리서 12:6 -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훈계가 사랑의 표현임을 강조합니다.  

-적용: 우리는 실수나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의 훈계를 두려워하기보다 은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이나 이기적인 행동을 한 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바른 길로 돌이키려 하시는 훈계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즉시 회개하고, 교회 공동체나 믿음의 동역자와 함께 기도하며 교정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나 후배를 훈계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인내와 부드러움으로 임해야 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하나님의 인도와 훈계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시편 32:8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가르치시고, 세심하게 주목하시며, 사랑으로 훈계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약속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확실한 보증입니다.  

이 말씀을 삶 속에서 살아낸다면, 우리는 혼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외로움 속에서도 사랑받음을 느끼며, 실수 속에서도 회복의 길을 찾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젊은이가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좌절했을 때, 이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한 후 동료와 화해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를 절망의 자리에서 일으켜 소망의 길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작은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어려움 속에서 그분의 돌보심을 신뢰하며, 잘못을 깨달을 때 회개하는 마음으로 훈계를 받아들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가르치시고 주목하시며 훈계하시는 그 손길 안에서, 우리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의 삶을 통해 이웃과 세상에까지 흘러넘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주목하시며 훈계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바른 길로 이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삶 속에서 살아내어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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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13.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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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장 2절 묵상 - 그와 같이 될 소망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요한일서 3장 2절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가진 현재의 신분과 미래의 소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신앙의 여정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사랑과 확신으로 가득 찬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되새기고,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을 품어보려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라는 표현은 우리의 현재를 정의합니다. 요한은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이라 부르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이 놀라운 신분을 받았습니다.

이 신분은 단순히 명예로운 칭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보호, 그리고 인도하심 안에 거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다르게 볼 수 있고,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스스로를 의심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가 이미 “자녀”입니다. 이 확신은 우리의 삶에 깊은 평안과 담대함을 줍니다. 비록 지금 세상에서 고난과 시련을 겪더라도, 우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영원히 속해 있습니다.

장래의 영광,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신비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라는 구절은 우리의 미래가 여전히 신비 속에 감춰져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완전한 구속과 영광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의 제한된 이해와 시간 속에 갇힌 존재로서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미지의 부분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소망을 키웁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고 말하며, 현재와 미래의 대조를 설명합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완전한 구원의 모습은 언젠가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이 신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담긴 놀라운 미래를 예고합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걸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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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아질 소망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라는 말씀은 이 구절의 절정을 이룹니다. 여기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온전히 보게 될 것이며, 놀랍게도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는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소망입니다.

이 약속은 단순히 외적인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함, 순결함, 사랑, 그리고 영광스러운 본성을 닮는다는 뜻입니다. 빌립보서 3장 21절에서 바울은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과 같은 형체로 바꾸어 주시리라”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육신과 죄로 물든 본성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이 변화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받을 최고의 상급입니다.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라는 표현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누리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지금은 죄와 세상의 장막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지만, 그날이 오면 우리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분을 아는 기쁨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을 뛰게 하는 소망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

이 말씀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3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처럼,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로서,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하며 사랑과 순종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야 합니다.

동시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래를 바라보며 인내와 소망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세상의 어려움이나 불확실성이 우리를 흔들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될 날을 기억하며 힘을 얻습니다. 우리의 삶은 끝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시작을 향한 여정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요한일서 3장 2절은 우리에게 사랑과 소망, 그리고 변화를 약속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장래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는 우리의 삶에 방향을 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쁨을 선사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 소망을 붙잡고 오늘도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그분이 나타나실 그 날, 우리는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나의 신분을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나요?
 - 이 말씀은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줍니다. 일상에서 이 신분을 잊고 세상의 기준이나 두려움에 휘둘릴 때는 언제인지 돌아보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더 굳건히 세울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2. 미래의 영광을 기다리는 소망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장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나의 선택과 태도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소망이 오늘의 어려움 속에서 나를 어떻게 붙들어 주는지 나눠봅시다.

3.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며 나의 삶을 어떻게 깨끗하게 하고 있나요?
 -  말씀은 이 소망을 가진 자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내 삶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닮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실천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어떻게 구할지 고민해 봅시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를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장래에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소망을 주심에 깊이 감사합니다. 이 소망이 제 삶을 붙들고,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제 삶이 주님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거룩한 제물이 되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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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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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장 21절 칼럼n - 질문 속의 인간다움: 궁금함이 이끄는 여정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요한복음 21장 21절, 베드로가 예수께 묻는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이 짧은 구절은 단순한 질문 이상의 깊은 인간적 울림을 담고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뒤, 자신의 운명에 대한 대화 속에서 갑자기 요한을 가리키며 그의 미래를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일까, 아니면 그 안에 더 깊은 무언가가 숨어 있을까? 이 구절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우리 모두는 때로 다른 이의 삶을 궁금해하고, 그들의 여정을 통해 우리의 위치를 가늠하려 한다. 이 글은 베드로의 질문에서 시작해, 그 속에 담긴 보편적 인간다움을 탐구하며 우리 삶에 던지는 메시지를 찾아본다.

베드로의 질문은 먼저 인간의 호기심을 보여준다. 그는 예수님과 대화하던 중, 문득 요한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이는 우리도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순간이다. 친구가 새로운 직장을 얻었을 때, 동료가 뜻밖의 성공을 거두었을 때, 혹은 누군가의 삶이 우리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흐를 때, 우리는 묻는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이 호기심은 단순한 부러움이나 질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는 본능적 욕구다. 베드로는 요한의 운명을 묻는 순간, 어쩌면 자신의 역할과 의미를 더 깊이 고민했을지 모른다. 우리 역시 타인의 삶을 궁금해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러나 이 질문에는 비교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의 헌신과 충성에 대해 들은 직후, 요한의 미래를 묻는다. 이는 인간의 비교 본능을 드러낸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성공, 행복, 혹은 고난을 보며 자신의 삶을 저울질한다. “왜 저 사람은 저보다 더 잘 사는 걸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이러한 생각은 베드로의 질문과 닿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답은 날카롭다.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비교의 덫에서 벗어나 각자의 길을 충실히 걷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운다. 베드로에게 요한의 미래는 그의 소명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타인의 궤적과 비교하며 방향을 잃을 때가 많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네 길을 얼마나 성실히 걷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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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뒤에는 또한 신뢰의 문제가 숨어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계획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요한의 미래를 확인하려 했을지 모른다. 이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는 종종 답을 요구한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이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운명을 설명하지 않고, 대신 그를 믿고 따를 것을 요청하신다. 이는 우리에게도 전해지는 메시지다. 삶의 모든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신뢰 속에서 한 발짝 내딛는 것이 때로는 더 큰 의미를 만든다. 베드로의 질문은 인간적인 약함을 보여주지만, 그 약함 속에서 성장하는 믿음의 여정을 암시한다.

이 구절은 또한 공동체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생각하게 한다. 베드로는 요한을 단순히 개인으로 보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질문은 요한의 미래뿐 아니라, 그들이 함께 걷는 여정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오늘날 우리도 가족, 친구, 동료들과 얽힌 삶을 산다. 누군가의 성공은 우리의 기쁨이 되고, 누군가의 고난은 우리의 아픔이 된다. 베드로의 질문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질까?”라는 공동체적 물음으로 확장된다. 이는 우리가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성장하며 지지하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베드로의 이 한 마디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질을 건드린다. 우리는 궁금해하고, 비교하고, 불안해하며, 때로는 믿음으로 나아간다. 이 모든 감정과 질문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답변, “너는 나를 따르라”는 이 모든 복잡한 감정 속에서 단순하지만 강력한 방향을 제시한다. 타인의 삶을 궁금해하는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결국 우리의 소명은 우리만의 길을 충실히 걷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베드로처럼 묻는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하지만 그 질문만큼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다. 이 구절은 우리를 질문하는 존재로,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존재로 초대한다. 궁금함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믿음은 우리를 이끈다. 베드로의 질문은 2천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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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4. 1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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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6편 4절 강해 -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제목: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본문: 시편 136편 4절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36편 4절을 중심으로 삼단계 설교(Three-point expository preaching)를 구성하겠습니다. 이 설교는 본문의 의미를 설명하고, 성경 내 다른 구절과 관련하여, 현대 신앙생활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결론은 서술적으로 작성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독특한 능력: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

시편 136편 4절의 첫 부분은 하나님께서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신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유일하심을 나타냅니다. 세상에는 많은 권세와 힘이 존재하지만, 하나님만이 참된 창조주로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큰 기이한 일들"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가 드러나는 초자연적이고 경이로운 일들을 의미합니다.

-관주: 출애굽기 15:11 - "여호와와 같이 위엄과 권능이 뛰어나신 신이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께서 기이한 일을 행하셨나이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찬양하며 부른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고, 물을 가르시는 기적을 통해 당신의 유일한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삶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홀로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질병, 가난, 관계의 문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놀라운 손길을 구해야 합니다.

2. 감사로 응답하라는 초대: "그에게 감사하라"

시편 136편 4절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감사하라는 명령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시편 136편 전체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후렴으로 반복되며, 감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응답임을 보여줍니다.

-관주: 데살로니가전서 5:18 -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구절은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은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감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적용: 현대 신앙인은 바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는 것, 가족의 건강, 일터에서의 기회 등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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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원한 인자하심: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36편 4절의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선언으로 끝납니다. 여기서 "인자하심"(히브리어: 헤세드)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신실함, 그리고 언약의 충실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영원성은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됩니다.

-관주: 예레미야 31:3 - "여호와께서 옛적에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셨도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백성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원동력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적용: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은 우리의 삶에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질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붙잡고, 우리는 두려움 없이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영원한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시편 136편 4절은 하나님의 독특한 능력과 우리의 감사, 그리고 그분의 영원한 인자하심을 통해 우리 신앙의 본질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보며 감사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영원한 인자하심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깊은 평안과 소망을 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변하고, 우리의 상황은 흔들릴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아침 일어나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묵상하며 감사로 하루를 시작합시다. 어려운 순간에도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가정, 이웃, 그리고 세상에 전하는 증인이 됩시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영원한 인자하심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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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