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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13.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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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장 2절 묵상 - 그와 같이 될 소망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요한일서 3장 2절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가진 현재의 신분과 미래의 소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신앙의 여정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사랑과 확신으로 가득 찬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되새기고,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을 품어보려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라는 표현은 우리의 현재를 정의합니다. 요한은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이라 부르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이 놀라운 신분을 받았습니다.

이 신분은 단순히 명예로운 칭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보호, 그리고 인도하심 안에 거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다르게 볼 수 있고,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스스로를 의심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가 이미 “자녀”입니다. 이 확신은 우리의 삶에 깊은 평안과 담대함을 줍니다. 비록 지금 세상에서 고난과 시련을 겪더라도, 우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영원히 속해 있습니다.

장래의 영광,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신비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라는 구절은 우리의 미래가 여전히 신비 속에 감춰져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완전한 구속과 영광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의 제한된 이해와 시간 속에 갇힌 존재로서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미지의 부분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소망을 키웁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고 말하며, 현재와 미래의 대조를 설명합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완전한 구원의 모습은 언젠가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이 신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담긴 놀라운 미래를 예고합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걸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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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아질 소망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라는 말씀은 이 구절의 절정을 이룹니다. 여기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온전히 보게 될 것이며, 놀랍게도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는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소망입니다.

이 약속은 단순히 외적인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함, 순결함, 사랑, 그리고 영광스러운 본성을 닮는다는 뜻입니다. 빌립보서 3장 21절에서 바울은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과 같은 형체로 바꾸어 주시리라”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육신과 죄로 물든 본성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이 변화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받을 최고의 상급입니다.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라는 표현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누리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지금은 죄와 세상의 장막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지만, 그날이 오면 우리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분을 아는 기쁨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을 뛰게 하는 소망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

이 말씀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3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처럼,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로서,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하며 사랑과 순종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야 합니다.

동시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래를 바라보며 인내와 소망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세상의 어려움이나 불확실성이 우리를 흔들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될 날을 기억하며 힘을 얻습니다. 우리의 삶은 끝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시작을 향한 여정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요한일서 3장 2절은 우리에게 사랑과 소망, 그리고 변화를 약속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장래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는 우리의 삶에 방향을 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쁨을 선사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 소망을 붙잡고 오늘도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그분이 나타나실 그 날, 우리는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나의 신분을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나요?
 - 이 말씀은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줍니다. 일상에서 이 신분을 잊고 세상의 기준이나 두려움에 휘둘릴 때는 언제인지 돌아보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더 굳건히 세울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2. 미래의 영광을 기다리는 소망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장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나의 선택과 태도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소망이 오늘의 어려움 속에서 나를 어떻게 붙들어 주는지 나눠봅시다.

3.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며 나의 삶을 어떻게 깨끗하게 하고 있나요?
 -  말씀은 이 소망을 가진 자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내 삶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닮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실천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어떻게 구할지 고민해 봅시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를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장래에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소망을 주심에 깊이 감사합니다. 이 소망이 제 삶을 붙들고,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제 삶이 주님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거룩한 제물이 되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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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1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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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2장 26절 묵상 - 의인의 인도와 악인의 미혹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잠언 12장 26절은 의인과 악인의 삶의 태도와 그 결과가 얼마나 극명하게 대비되는지를 단 한 구절로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선택을 넘어, 우리가 이웃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결과까지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라는 전반부와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라는 후반부는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며,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먼저,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된다"는 말씀을 묵상하며 의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의인이란 단순히 개인적으로 선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며 그 선함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인도자"라는 단어는 방향을 제시하고, 길을 열어주며, 때로는 희생적으로 앞서가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의인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삶을 삽니다. 이는 예수님의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죄인을 품으셨습니다. 그분은 참된 인도자로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 사람의 작은 친절, 진실한 조언, 또는 따뜻한 위로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반면,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는 후반부는 악인의 비극적인 결말을 단호하게 드러냅니다. 여기서 "소행"은 그들의 행위와 습관, 삶의 패턴을 의미합니다. 악인은 겉으로는 자신을 위해 사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 선택이 스스로를 속이고 파괴하는 덫이 됩니다. 미혹이란 진실을 보지 못하고 거짓된 길에 빠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마치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돈을 좇다가 가족을 잃고, 거짓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은 결국 신뢰를 잃습니다. 악인의 삶은 일시적인 만족을 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공허와 파괴로 이어집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내가 지금 걷는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내 선택이 나를 살리는 길인지 망치는 길인지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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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또한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의인은 혼자 잘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이웃을 인도하며 더불어 살아갑니다. 반면 악인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망가뜨립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원리는 여전히 적용됩니다. 우리는 경쟁과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살며, 때로는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말합니다. 진정한 행복과 평화는 이웃과 함께 나누고, 서로를 세워줄 때 찾아온다고.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악한 선택은 그 반대의 결과를 낳습니다.

이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며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인도자가 되고 있는가? 나의 말과 행동이 그들을 선한 길로 이끄는가, 아니면 혼란과 실망을 주는가? 또한, 나의 소행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내가 좇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나를 미혹하는 덧없는 욕망인지 돌아봅니다. 이 질문들은 결코 쉽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바로 세우는 데 꼭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잠언 12장 26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 길을 보여줍니다. 의인의 길은 이웃을 살리고, 자신도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는 길입니다. 악인의 길은 자신을 속이며 결국 파멸로 이끄는 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할지, 어떤 인도자가 될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의인의 길을 걷고,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나와 이웃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인도자가 되고 있는가?
 - 나의 말과 행동이 이웃을 선한 길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혼란과 실망을 주는지를 돌아봅시다.

2. 나의 소행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 내가 지금 추구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나를 미혹하는 덧없는 욕망에 끌려가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3.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가?
 - 개인적인 이익만을 좇기보다는 공동체를 세우고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잠언의 말씀을 통해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를 지혜로 이끄시어 이웃에게 선한 인도자가 되게 하시고, 제 소행이 주님의 뜻을 따르며 저를 미혹에서 지켜주시길 간구합니다. 오늘도 공동체 안에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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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11.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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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7장 1절 묵상 - 화목의 가치를 깨닫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짧은 구절은 인생에서 물질적 풍요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담긴 이 말씀은 단순히 먹을 것의 양이나 질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마음의 평안이 삶의 진정한 가치임을 일깨워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행복의 본질을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물질보다 귀한 화목

"마른 떡 한 조각"은 풍족하지 않은 상황을 상징합니다. 화려한 잔치나 고급 요리가 아닌, 가장 기본적이고 소박한 음식을 뜻하죠. 반면 "제육이 집에 가득하다"는 표현은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잔칫상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물질적 풍요가 다툼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다면, 아무리 많아도 그 가치를 잃는다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화목, 즉 평화로운 관계와 서로를 향한 사랑이 없다면, 그 어떤 부도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물질적 성공을 행복의 척도로 삼습니다. 더 좋은 집, 더 맛있는 음식, 더 많은 재산을 가지면 삶이 나아질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 믿음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가족 간의 다툼, 친구와의 오해, 이웃과의 갈등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반대로 소박한 삶 속에서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화목하게 지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툼의 무거운 대가

"다투는 것"은 단순히 말다툼을 넘어 마음의 상처와 분열을 가져오는 모든 갈등을 포괄합니다. 성경은 다툼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지 자주 언급합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에서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서 나며 다툼이 어디서 나느냐"라고 묻고, 그 원인이 내면의 욕심과 교만임을 지적합니다. 다툼은 집 안을 어지럽히고, 관계를 무너뜨리며, 결국 사람을 외롭고 지치게 만듭니다. 제육이 가득한 집이라도 다툼이 있다면 그 풍요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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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대조적으로 화목은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마른 떡 한 조각을 나누며 웃고 대화할 수 있는 가정은, 비록 물질은 부족할지라도 사랑과 신뢰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느끼는 기쁨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선물입니다. 솔로몬은 이 지혜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더 귀히 여기느냐? 물질의 풍요를 좇아 다툼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소박함 속에서 화목을 선택할 것인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결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목은 단순히 다툼이 없는 상태를 넘어,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삶의 태도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고(로마서 5:10),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를 회복하셨습니다. 이처럼 화목은 하나님의 마음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화목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 오해,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잠언 17장 1절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다툼을 이기려는 마음 대신, 화목을 위해 한 발 물러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사소한 양보와 용서가 마른 떡 한 조각을 나누는 소박한 기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삶 속에서 적용하기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나는 무엇을 더 소중히 여겼던가? 물질적 풍요를 좇느라 가족과의 대화, 친구와의 신뢰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화목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일까 고민해봅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오해를 풀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며, 다툼 대신 이해를 선택하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어도 행복한 삶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결국 잠언 17장 1절은 우리에게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라고 초대합니다. 세상은 화려한 제육을 내밀며 우리를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화목이라는 더 깊은 가치를 보여주십니다. 소박하더라도 평안한 마음,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있는 곳이 진정한 풍요의 자리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화목의 길을 걷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삶에서 물질적 풍요와 화목 중 무엇을 더 우선시하고 있는가?
 - 일상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물질적 욕심이 관계를 해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봅시다.

2. 최근 다툼이 있었던 상황에서 내가 화목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 과거의 갈등을 떠올리며, 내가 화평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거나 양보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반성해봅시다.

3. 오늘 화목을 실천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
 -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만들어갈 구체적인 한 가지 실천을 고민해봅시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잠언 17장 1절을 통해 화목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마음이 물질보다 평안을, 다툼보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오늘 하루, 제 말과 행동으로 화목을 만들어가는 도구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평화가 제 삶과 주변에 넘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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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1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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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7절 묵상 - 고난과 위로의 동행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이 구절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편지의 한 부분으로, 고난과 위로라는 두 가지 주제가 깊이 얽혀 있는 말씀입니다. 이 짧은 문장 안에 담긴 의미는 단순히 고난의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함께한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고난과 위로가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견고한 소망이 어떻게 뿌리내리는지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바울은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이라고 말합니다. 이 소망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당시 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의 분열, 도덕적 문제, 외부의 박해 등 그들의 신앙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고난과 위로의 연결고리에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단순히 피해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난이 신앙의 여정에서 필연적인 부분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고 믿었습니다.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라는 문장은 이 연결고리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고난은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서로와의 연대 속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바울은 앞서 같은 장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고후 1:5)고 말합니다. 즉,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회이며, 그 고난을 통해 우리는 그분의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위로는 단순한 감정적 위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그리고 궁극적인 구원의 약속에서 오는 깊은 평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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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병고, 상실, 실패, 관계의 갈등 등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고난의 무게는 때로 우리를 주저앉게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고난이 끝이 아님을 상기시킵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자는 위로에도 참여합니다. 이는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빛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터널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도, 결국 출구가 있고 그곳에서 따스한 햇빛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알았기에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소망을 견고히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구절은 또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너희를 위한"이라는 표현을 통해 개인적인 소망을 넘어 공동체적 연대를 말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고립시킬 수 있지만, 위로는 공동체 안에서 더욱 풍성해집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경험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분열 속에서도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바울의 마음이 이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 역시 오늘날 교회와 가정, 이웃 안에서 고난을 함께 짊어지고 위로를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의 근거를 묻습니다. 바울의 소망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뿌리내린 소망이었습니다. 고난이 있을지라도 위로가 뒤따르고, 위로가 있기에 소망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 진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세상은 불확실하고 고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7절을 묵상하며, 우리는 고난과 위로가 함께 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지만, 위로는 하나님의 강함을 보여줍니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신앙의 여정에서 함께 엮인 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분의 위로가 우리의 견고한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로 하루를 살아가며, 고난 속에서도 위로를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삶에서 고난을 마주할 때,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 이 질문은 고난을 단순히 부정적인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위로를 찾을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2. 내 주변의 누군가가 고난을 겪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 그들의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까? 공동체 안에서 위로를 나누는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 공동체적 연대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내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됩니다.

3. 나의 소망은 무엇에 뿌리내리고 있는가? 세상적인 낙관주의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기반한 견고한 믿음인지 점검해보라.
 - 소망의 근거를 점검하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토대를 다질 수 있도록 이끕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고난 속에서도 위로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의 삶에 찾아오는 어려움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견고한 소망을 붙들게 하소서. 또한 저를 통해 주변의 아픔을 위로하는 도구로 사용해 주시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으로 섬기게 하여 주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저의 소망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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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2편 11절 묵상 - 의인의 기쁨과 정직한 마음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이 구절은 시편 32편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의인들이 누리는 기쁨과 찬양의 삶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명령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기쁨과 정직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1. 의인의 기쁨의 근원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라는 말씀은 의인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초대입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완벽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고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 분들을 가리킵니다. 시편 32편의 앞부분을 보면, 다윗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은 후에 경험한 자유와 평안을 노래합니다. 이 기쁨은 세상적인 조건이나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즉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순간적인 쾌락과 만족을 약속하지만, 그것들은 곧 사라집니다. 반면,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은 영원한 샘과 같이 우리의 영혼을 채워줍니다. 이 기쁨은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주며, 우리로 하여금 모든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뿌리내린 삶을 살라는 초대입니다.

2. 정직한 마음의 중요성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라는 표현은 기쁨의 조건으로서 정직함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정직함은 단순히 거짓을 말하지 않는 도덕적 태도를 넘어섭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마음, 숨김없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시편 32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 했을 때 겪었던 고통을 고백합니다(32:3-4). 그러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그는 용서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32:5). 이 과정에서 정직한 마음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쁨은 얕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약점이나 죄를 감추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겉으로 보이는 경건함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함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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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즐거이 외치는 삶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라는 부분은 기쁨이 단순히 내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현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 외침은 억지로 짜낸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한 분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의인들이 외치는 소리는 찬양이 되고, 감사로 이어지며, 다른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부정적인 말과 불평으로 하루를 채웁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의 입술을 새롭게 하라는 도전입니다. 즐거이 외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가족, 친구, 이웃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외침이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메아리가 될 수 있습니다.

4. 적용: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편 32편 11절은 과거의 다윗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현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살아있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각자 죄와 연약함을 안고 있지만,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안에서 의인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여호와를 기뻐하고 있는가? 내 마음은 하나님 앞에 정직한가? 나의 삶은 기쁨의 외침으로 채워져 있는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주변과 나누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끝없는 도전을 주지만, 동시에 한없는 위로와 소망을 선사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며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촉구합니다. 우리의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이 외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지금 여호와를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는가?
 - 내 삶의 기쁨이 세상적인 조건에 좌우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참된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2. 내 마음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정직한가?
 - 숨기고 싶은 약점이나 죄가 있다면, 그것을 정직하게 고백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3. 나의 삶은 기쁨의 외침으로 주변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
 - 일상에서 불평 대신 감사와 찬양이 넘치고 있는지, 내 말이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는지 점검해봅시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저를 의인으로 불러주시고 기뻐하라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제 마음이 정직하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고, 세상 속에서도 주님께 뿌리내린 기쁨으로 살게 하여 주세요. 제 삶이 주님을 향한 찬양이 되고, 주변에 그 기쁨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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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 4절 묵상 -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삶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행전 6장 4절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보여준 신앙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당시 교회가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행정적인 필요가 생겼고, 그로 인해 사도들은 본연의 사명에서 벗어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호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선언하며, 자신들의 핵심 사명을 지켰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을 줍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할까요? 바쁜 일상 속에서 기도와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요?

기도의 중요성

사도들이 "기도하는 일"을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신앙의 뿌리입니다. 기도 없는 신앙은 마치 물 없는 나무와 같아서 결국 시들어 버립니다. 사도들은 교회의 성장과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쁜 사역 중에 늘 기도하셨던 모습을 떠올리면, 기도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생명력의 원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기도에 힘쓰고 있을까요? 바쁜 일정 속에서 기도는 종종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의 결단을 보면,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며, 삶의 모든 순간을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삶은 단순히 시간을 내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말씀 사역의 소중함

사도들이 두 번째로 강조한 것은 "말씀 사역"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길잡이입니다. 초대교회는 말씀을 통해 성장했고,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깨웠습니다. 말씀 사역은 단순히 설교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고,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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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에서도 말씀의 중요성은 변함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려 합니다. 소셜 미디어, 뉴스, entertainment 등 수많은 소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결단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말씀에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삶에 적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소명입니다. 말씀 없이 기도만 하는 것은 방향을 잃기 쉽고, 기도 없이 말씀만 붙잡는 것은 생명력을 잃기 쉽습니다.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하며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세웁니다.

삶 속에서의 적용

사도들의 선언은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행정적인 일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기도와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실천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 중 기도와 말씀을 위한 시간을 정해놓고 지키는 것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거나,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또한, 사도들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듯, 우리도 주변 사람들과 기도와 말씀을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혹은 친구들과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작은 모임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도들의 사역이 교회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었듯, 우리의 작은 실천도 주변에 선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는 사도들의 다짐은 초대교회의 기초를 세운 선언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나침반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우선순위를 강요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기도와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고, 말씀을 통해 그분의 뜻을 깨달으며, 그 깨달음을 삶으로 살아낼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묵상하며 다시 한번 결단해봅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삶을 선택합시다. 사도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이 두 가지를 붙잡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기도와 말씀은 우리의 영적 호흡입니다. 이 호흡이 멈추지 않는 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일상에서 기도와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가?
 - 바쁜 삶 속에서 기도와 말씀을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일들에 밀려 뒷전으로 두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2. 내가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얼마나 깊이 교제하고 있는가?
 - 기도와 말씀 묵상이 형식적인 의무로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키우는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점검해봅시다.

3. 내 주변에 기도와 말씀을 나누며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사도들처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기도와 말씀을 실천할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봅시다.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희가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주님께 마음을 드리고,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하시어, 그 깨달음을 삶으로 살아내게 하소서. 저희 주변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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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32절 묵상 -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깊이 있는 가르침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의 문장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약속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 그리고 이 자유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단순히 사실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즉, 진리는 한 인격,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과 사랑입니다. 이 진리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마음과 삶으로 받아들이고 체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진리”를 제시합니다. 광고, 이념, 철학, 그리고 개인의 욕망은 각기 다른 형태로 진리임을 주장하며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종종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속박에 묶이게 합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기준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속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눈을 열어 참된 삶의 목적을 보게 합니다.

진리가 주는 자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은 자유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자유는 종종 외적인 제약의 제거나 개인의 욕망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훨씬 더 깊고 내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죄와 두려움, 죽음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요 8:34). 죄는 우리를 얽매고,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리를 알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 사랑과 용서를 통해 죄에서 풀려납니다. 이 자유는 단순히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거짓된 약속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담대함을 줍니다.

진리를 아는 과정

진리를 안다는 것은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8장 31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며, 그분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는 여정입니다. 이는 기도와 묵상, 그리고 순종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때로 이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진리를 왜곡하고, 우리의 연약함은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며, 우리의 편견과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진리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우리를 자유의 길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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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진리를 살아가기

이 말씀은 단순히 묵상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거짓이 만연한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진리가 주는 자유를 실천하는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한, 진리의 자유는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세상의 판단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굳게 설 수 있게 합니다. 이 자유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과 도전을 동시에 줍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죄와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자유는 단순히 나만의 해방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진리를 더 깊이 알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며, 그 진리가 우리를 온전히 자유롭게 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에게 진리란 무엇인가?
 - 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얼마나 깊이 알고 있으며, 그것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세상의 거짓된 진리에 비추어 내가 속박되어 있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자.

2. 진리가 나를 어떻게 자유롭게 하는가?
 - 예수님의 진리를 통해 내가 경험한 자유는 무엇이며, 아직도 죄나 두려움에 묶여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3. 내 삶에서 진리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 오늘 하루, 혹은 이번 주에 내가 진리를 말하고 행하며 다른 이들에게 자유를 나누는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 수 있을까?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주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아갑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참된 진리를 알게 하시고, 그 진리가 저를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시길 간구합니다. 저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 자유를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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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장 51절 묵상 -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의 축복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누가복음 24장 51절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마무리되는 감동적인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 짧은 구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시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시는 순간을 묘사하며, 그리스도의 승리와 제자들에게 남겨진 소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예수님의 떠나심이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영원한 약속과 축복의 시작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축복하실 때에" 떠나셨다는 표현은 깊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축복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전하는 능력 있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과 평화를 남기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앞으로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필요한 힘과 위로가 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고, 그 시작은 축복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어려운 순간이나 이별의 때에 축복의 마음을 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게 됩니다.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라는 구절은 예수님의 신성과 승리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셨고, 이제 하늘로 돌아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셨음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이 장면을 보며 두려움 대신 경외와 소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은 더 이상 육신의 제약 속에 계시지 않으며, 이제 어디서나 제자들과 함께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님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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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천 사건은 제자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2-53절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떠나심을 슬퍼하기보다 기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축복과 승천이 그들에게 확신과 기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심으로써 성령이 오실 길이 열렸고, 제자들은 곧 오순절에 성령을 받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떠나심은 제자들을 떠난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명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씀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근거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지셨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구속자이자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잇고 계심을 뜻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축복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합니다. 삶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힘이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변화시켰듯,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과 축복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또한 재림의 약속과 연결됩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에서 천사들은 "하늘로 가신 이 예수는 너희에게서 하늘로 가신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지신 것은 언젠가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을 보증하는 사건입니다. 이 약속은 우리로 하여금 소망 가운데 깨어 살아가게 합니다. 세상의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는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결국, 누가복음 24장 51절은 예수님의 사랑, 승리, 그리고 약속이 담긴 말씀입니다. 축복하실 때에 떠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이 축복을 기억하며,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며 충성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결코 끝나지 않음을 선포하는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도 제자들처럼 기쁨과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신 후 하늘로 올려지셨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위로와 소망을 주는가?
 - 이 질문은 예수님의 축복과 승천이 개인적인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되새기게 합니다.

2. 내 삶에서 예수님의 축복을 경험한 순간은 언제였으며, 그 축복을 어떻게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을까?
 - 이 질문은 축복의 경험을 돌아보고, 그 은혜를 실천으로 옮기는 방법을 고민하게 합니다.

3.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믿음이 나의 일상적인 선택과 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 이 질문은 재림의 소망이 현재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묵상하게 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 예수님, 축복하실 때에 하늘로 올려지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남겨주신 평안과 소망으로 오늘도 힘을 얻습니다. 주님의 축복을 기억하며 세상에 그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깨어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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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