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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장 17절 칼럼n - 의와 평강과 희락: 보편적 가치로 읽는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장 17절은 성경의 중요한 말씀 중 하나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지만, 신앙을 초월하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행위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욕구와 즐거움을 상징하지만, 성경은 그보다 더 깊은 가치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의(正義), 평강(평화), 희락(기쁨)은 종교적 맥락을 넘어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비기독교인의 시각에서도 이 구절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의(義)’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는 정의로움과 옳음에 대한 갈망을 뜻합니다. 종교적 신념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불공정한 사회적 현실에 분노하고, 약자가 억압받는 상황에 저항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빈부 격차나 권력 남용에 대한 논의들을 보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정함’을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의’는 하나님 앞에서의 도덕적 완전함을 의미하지만, 이를 더 넓게 해석하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는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삶의 원칙으로 삼을 만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평강(平康)’은 곧 평화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평화는 개인적인 안녕뿐만 아니라 사회적 조화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전쟁과 갈등, 그리고 일상 속 스트레스가 만연한 세상에서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사람들이 명상이나 마음챙김(마인드풀니스)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내면의 평화를 찾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강은 ‘성령 안에서’ 오는 것이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인간관계의 화해, 마음의 안정, 또는 자연과의 조화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갈등을 겪을 때 용서를 선택하는 것,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쉼을 가지는 것, 혹은 자연 속에서 위로를 얻는 것-이 모든 것이 평강을 실천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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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희락(喜樂)’, 즉 기쁨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처럼 여겨집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아니라, 희락은 더 깊고 지속적인 만족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기쁨을 찾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취미를 통해 얻는 성취감,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순간 등은 종교와 관계없이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희락은 하나님을 통해 얻는 기쁨이지만, 신앙이 없는 분들도 이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의미 있는 일을 통한 성취감, 혹은 자신을 돌보는 시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오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웃으며 보낸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희락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  

이 구절이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삶의 본질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불의를 거부하고, 평화를 원하며, 기쁨을 추구합니다. 종교적 색채를 걷어내더라도, 로마서 14장 17절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갈망하는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철학적 선언처럼 읽힙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먹고 마시는 것에만 몰두하기보다는 타인과 공감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작은 기쁨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이 구절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물질적 풍요를 넘어선 가치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 질문은, 신앙의 유무를 떠나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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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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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0장 13절 칼럼n - 행복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행복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목표이며,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소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의 방법을 따라가지만, 정작 만족과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성경은 행복의 비결을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신명기 10장 13절은 말한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명령과 규례를 주시는 목적이 우리의 행복임을 분명히 밝히신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일까?

1. 하나님의 명령은 억압이 아니라 보호다.
많은 사람들은 ‘규칙’이나 ‘명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부담을 느낀다. 자유를 제한하는 것 같고, 내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교통신호를 지키라고 가르치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 보호의 의미를 가진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삶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길로 인도하고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삶은 마치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험한 산길을 오르는 것과 같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

2. 하나님의 법을 따르면 삶이 조화롭다.
세상의 질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자연이 조화를 이루듯이, 인간의 삶도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 살아갈 때 가장 건강하고 안정적이다.

예를 들어, 성경은 ‘거짓말하지 말라’(출 20:16)고 가르친다. 만약 이 말씀을 무시하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면, 신뢰를 잃고 관계가 깨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함을 지키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은 단순한 종교적 규칙이 아니라, 우리 삶을 가장 건강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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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종할 때 참된 기쁨을 경험한다.
행복은 단순히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돈이 많고, 원하는 것을 다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에 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0-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순종은 부담이 아니라 기쁨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은 내면의 평안을 주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만족을 경험하게 한다.

맺는말[Conclusion]:
행복의 길을 선택하라. -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한다. 하지만 그 길을 찾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세상은 물질과 성공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확한 길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제한하거나 힘들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지킬 때 우리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얼마나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기쁨으로 따르며,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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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8장 6절 칼럼 - 길을 따라가는 삶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우리의 선택이 모여 결국 우리의 삶을 형성합니다. 신명기 8장 6절은 이 중요한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길을 정하는 기준 -
우리는 길을 선택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습니까? 세상은 성공과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여러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진정한 길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말과 유행, 감정에 따라 길을 선택하면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리 삶의 가장 확실한 기준입니다.' 신명기 8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따르도록 훈련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 길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왜 눈앞의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길이야말로 가장 좋은 길이며, 우리를 풍성한 삶으로 이끄시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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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함으로 걷는 삶 - 
"그를 경외할지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을 단순히 두려워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아버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이 옳다고 믿고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계획과 방법을 더 신뢰합니다. 경험과 논리를 앞세우지만, 결국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때로는 손해 보는 것 같고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가장 안전한 길을 걷게 됩니다.

잠언 3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삶에서 실천하는 방법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1. 말씀을 기준 삼기 – 우리의 생각과 감정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2. 기도하며 선택하기 –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3. 순종하며 걷기 – 때로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4. 하나님을 신뢰하기 – 눈앞의 상황이 힘들어도, 하나님이 결국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무리하며[Conclusion]:

인생은 길의 연속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신명기 8장 6절은 우리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하라."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의 삶의 선택을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는 가장 복된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이미지 출처: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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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장 22절 칼럼 -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보편적 깨달음의 초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짧은 구절은 성경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보내진 편지의 결론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얼핏 보면 종교적 맥락에서만 이해될 법한 이 문장은, 사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그것은 "들을 귀를 가진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부름이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내진 초대장이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이 말은 삶 속에서 진정으로 귀 기울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로 인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소리에 둘러싸여 산다. 아침에 울리는 알람 소리, 도로 위의 자동차 경적, 직장에서의 대화, 가족과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그러나 그 소리들 속에서 무엇을 ‘듣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요한계시록의 이 구절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요청이다. 이는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삶의 본질에 닿아 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잔소리를 생각해보자. “밥 잘 챙겨 먹어”라는 말은 귀에 익숙해져 흘려버리기 쉽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걱정과 사랑을 들을 수 있다면, 그 말은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라 애정의 표현으로 다가온다. 직장에서 상사의 날카로운 피드백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비판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속에 담긴 성장의 기회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이처럼 ‘듣는다’는 것은 소리를 넘어 그 너머의 진의를 이해하는 행위다.

현대 사회는 듣기보다 말하기가 더 강조되는 시대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여유는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이 구절은 우리에게 잠시 멈추라고 말한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주변의 소리를 깊이 새겨보라고. 그것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 타인과의 관계나 자기 이해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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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시지는 특히 혼란스러운 순간에 큰 울림을 준다. 삶에서 길을 잃은 듯 느껴질 때, 우리는 종종 답을 찾으려 외부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깨달음은 이미 우리 곁에, 우리가 듣지 못했던 작은 목소리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위로, 자연의 소리, 혹은 내면에서 울리는 양심의 속삭임. 귀를 열면, 그 소리들은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줄 힘이 된다.

종교적 배경이 없는 사람에게도 이 구절은 충분히 공감될 수 있다. ‘성령’이라는 단어를 신비로운 존재가 아닌, 우리를 둘러싼 삶의 진실이나 지혜로 해석한다면, 이는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 진리로 다가온다. 즉, “귀 있는 자는 삶이 주는 메시지를 들을지어다”라는 말로 새겨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특정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행위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라는 초대다.

결국 이 구절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무엇을 듣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깨닫고 있는가?” 귀를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하고, 때로는 익숙한 소음 속에서 새로운 소리를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이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게 공감하며, 더 풍요로운 삶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이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귀는 열려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무엇을 듣고 있는가? 그 소리가 어디서 오든, 그것이 당신에게 주는 메시지를 한 번쯤 깊이 새겨보길 바란다. 귀 있는 자라면, 누구나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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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17절 칼럼n - 사랑과 인정의 보편적 언어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을 기록한 성경의 한 장면이다.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신의 사랑과 선택을 상징하는 감동적인 순간이지만, 비크리스천에게도 이 문장은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말 속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사랑, 인정, 그리고 소속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갈망한다. 부모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따뜻함을 떠올려 보자. 또는 친구, 연인, 혹은 스승이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라고 말해준 순간을 기억해보자. 이런 말 한마디는 우리의 존재를 확인해주고, 삶에 의미를 더한다. 마태복음의 이 구절도 본질적으로는 그런 메시지를 전한다. 비록 ‘하늘의 소리’라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지만, 그 핵심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전하는 무조건적인 애정과 긍정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외부의 평가에 시달린다. 소셜 미디어는 ‘좋아요’와 ‘댓글’로 우리의 가치를 측정하려 하고, 직장에서는 성과로,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판단받는다. 이런 환경에서 “너는 그대로 충분해”라는 메시지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이 구절은 신학적인 맥락을 떠나, 조건 없는 사랑과 인정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누군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뻐해준다는 느낌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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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문장은 가족, 공동체, 혹은 더 큰 무언가에 속하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을 건드린다. “내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표현은 소속감과 정체성을 준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고독과 단절을 느끼며 살아간다. 팬데믹 이후로 더욱 심화된 이 고립감 속에서, 우리는 연결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 구절은 비종교인에게도 ‘내가 어디에 속해 있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보편적 열망을 상기시킨다.

물론 이 문장을 읽으며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하늘의 소리’라는 설정을 비현실적으로 여길 수도 있고, 종교적 색채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의 뿌리에는 인간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의미 있는 존재로 여겨지고 싶은 마음. 이는 특정 신앙이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결국 마태복음 3:17은 신앙의 틀을 넘어선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존재로 불리는 순간의 기쁨, 그리고 그로 인해 삶이 충만해지는 경험에 관한 것이다. 비크리스천이라 해도 이 구절을 통해 자신의 삶 속에서 그런 순간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너는 내 사랑하는 존재야”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이 들려올 때, 하늘이든 땅이든 어디서든, 우리는 조금 더 온전해질 수 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이미지 출처: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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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1절 칼럼 -태초의 시작: 창세기 1:1에 담긴 깊은 의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성경의 첫 구절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우주만큼이나 광대하고 깊습니다. 창세기 1:1은 성경의 문을 여는 구절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선언하며 우리에게 믿음의 첫 걸음을 안내합니다. 이 짧은 문장이 가지는 의미를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창조 - "태초에"라는 표현은 시간의 시작점을 나타냅니다. 이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시간과 공간의 기준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시간 속에 갇혀 있지만,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분이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선언은 그 어떤 우연이나 무작위적인 과정도 아닌,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창조가 이루어졌음을 확증합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목적과 의미를 가진 세계임을 의미합니다.

창조의 총체성 - "천지"라는 단어는 하늘과 땅, 곧 물리적 세계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세세하게 창조하셨으며, 이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증거합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우주의 광대함과 자연의 정교함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발견들은 오히려 하나님 창조의 위대함을 더욱 드러냅니다. 창세기 1:1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도 아래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졌음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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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기초 - 창세기 1:1은 단순한 정보 전달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기초가 되는 선언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합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명확히 합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이며, 아버지의 계획 안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삶에 깊은 위로와 방향성을 제공합니다.

결론: 창조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 창세기 1:1은 성경 전체의 토대를 이루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과거의 창조 사건을 기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목적이 담긴 공간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아버지를 알아가고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낼 책임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선언을 묵상하며,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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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2장 19-20절 칼럼n - 어려운 날에도 길은 있다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맞닥뜨립니다. 때로는 개인적인 실패, 관계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 등이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런 날에는 앞이 보이지 않고, 마치 사방이 막혀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한 사람이 이러한 순간을 지나면서도 희망을 발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지만, 그의 인생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끊임없이 위험과 맞서야 했습니다. 사울 왕이 시기하여 목숨을 노렸고, 왕이 된 후에도 수많은 전쟁과 내적인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사무엘하 22장 19-20절입니다.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이 말씀은 단순히 종교적인 표현이 아니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의 경험에서 나오는 깊은 통찰입니다. 다윗이 겪었던 ‘재앙의 날’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목숨을 위협받는 극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어려운 날에도 길은 있다

우리는 종종 어려움을 당하면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벽에 부딪힌 것 같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없는 듯한 절망을 느낍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합니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

이 표현은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삶이 한계에 부딪힌 것 같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지할 곳’을 찾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종교적 신앙을 떠나서도 우리는 삶에서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으며,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용기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절망 속에서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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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여기서 주목할 표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신 이유가 “나를 기뻐하시므로”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가치를 두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두 마음속에 새길 만한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가치를 잊고 살아갑니다. 특히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스스로를 실패자처럼 느끼거나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가치 있는 존재이며, 누군가는 당신을 기뻐하고 있다.’

마음의 넓은 공간을 찾기

‘넓은 곳’으로 인도된다는 것은 단순히 환경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상황이 변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누군가는 같은 상황에서 절망을 느낍니다.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내면의 공간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계속해서 비난하고, 실패했다고 단정하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좁아집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고, 내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있으며, 어려움을 넘어설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마음의 공간이 넓어집니다.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법

그렇다면 현실에서 우리가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인정하기: 
   어려움을 겪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는 실패했다’는 생각을 멈추는 것입니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그것은 우리의 가치와 상관없습니다.

2) 작은 가능성을 붙잡기: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아주 작은 기회라도 존재합니다. 그것을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마음의 공간을 넓히기:
   매일 같은 문제를 바라보며 괴로워하기보다는, 잠시라도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는 활동을 해보세요. 산책을 하거나, 새로운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4) 내 가치를 기억하기: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극복해온 순간들을 생각해 보세요. 지금의 어려움도 지나갈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재앙의 날’을 지나고 있다면, 한 가지 기억했으면 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끝이 아닙니다.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소중한 존재이며,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날에도 길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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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2. 2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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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8장 4절 칼럼n - 변하지 않는 원칙의 힘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어떤 선택은 작은 것이지만, 어떤 선택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가치관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종종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도덕과 윤리의 기준도 변화하는 듯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을 따라 살아가야 할까요?

레위기 18장 4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 말씀은 단순히 종교적 규율을 따르라는 의미를 넘어, 변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는 삶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원칙이 없는 사회는 흔들린다

사회에는 법이 있고, 기업에는 경영 원칙이 있으며, 개인에게도 도덕적 기준이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이 없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통 신호가 없다면 도로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고, 공정한 룰이 없는 스포츠 경기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확고한 가치관과 원칙이 없다면, 순간적인 감정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날은 선하게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또 어떤 날은 내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속이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바로 변하지 않는 원칙입니다.

변하지 않는 원칙이 주는 자유

아이러니하게도, 원칙을 지키는 것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게 합니다. 룰이 없는 농구 경기를 상상해 보십시오. 자유롭게 공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게임이 성립되지 않아 아무도 제대로 경기를 즐길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정해진 규칙이 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윤리적 원칙과 도덕적 기준을 지키는 것은 우리 삶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면 신뢰를 얻고, 정직하게 노력하겠다는 원칙을 지키면 장기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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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일관성의 가치

사람들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신뢰합니다. 한 기업이 소비자를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운영될 때, 사람들은 그 브랜드를 신뢰하고 지속적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자기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갈 때, 주변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확고한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은 결국 더 큰 신뢰를 얻고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 상황에 따라 기준을 바꾸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쉽게 원칙을 저버리는 사람들은 결국 신뢰를 잃고 맙니다.

우리는 어떤 원칙을 따라갈 것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법도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종교적 명령이 아니라, 인생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도덕적 기준과 윤리적 가치관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으며, 그것을 따를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단 신앙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각자 자신의 원칙을 세우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원칙이 선하고 바른 것이라면, 우리는 더욱 단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생이 아니라, 깊이 뿌리내린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 우리는 어떤 원칙을 따를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원칙을 따르는 것이 결국, 가장 자유롭고 가치 있는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요?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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