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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편 2절 칼럼 - 머리에서 옷깃까지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우리는 흔히 하나 됨을 옆 사람과 손을 맞잡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 준다. 머리에서 시작한 기름이 수염을 타고 옷깃까지 천천히 내려오는 장면이다. 하나 됨은 애써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기 전에, 위에서 흘러내려 온 선물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아무 기름이 아니다. 히브리어로 '쉐멘 하토브(שֶׁמֶן הַטּוֹב)', 곧 '좋은 기름'이라 불린 이 기름은 출애굽기 30장의 규례대로 특별히 조제되어 대제사장 아론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데 쓰였다. 값지고 향기로운 이 기름이 한 사람의 머리에 부어졌을 때, 그것은 그 사람만의 영광이 아니라 온 백성을 위한 복의 통로가 되었다.

눈여겨볼 단어가 있다. '내려오다'를 뜻하는 '요레드(יֹרֵד)'가 이 절에서 두 번 반복된다. 기름은 머리에서 수염으로, 수염에서 옷깃으로 쉬지 않고 흘러간다. 고여 있는 기름은 향기를 잃지만 흐르는 기름은 닿는 곳마다 윤기와 향기를 남긴다. 교회도 가정도 마찬가지다. 은혜가 한 사람에게서 멈추면 그곳에 교만이 고이고, 은혜가 흘러가면 하나 됨이 자란다.

옷깃이라는 표현에도 깊은 뜻이 있다. 원문은 '피 미도타브(פִּי מִדּוֹתָיו)', 곧 옷의 입구 쪽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머리에서 보면 옷깃은 가장 먼 끝자락이다. 기름이 거기까지 이른다는 것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변두리의 지체까지 은혜가 빠짐없이 닿는다는 뜻이다. 누구도 은혜의 흐름 밖에 놓이지 않는다.

신약의 눈으로 보면 이 그림은 더욱 선명해진다.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신다. 에베소서 4장 3절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한다. 하나 됨은 우리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미 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세대와 지역과 입장으로 갈라져 서로 날을 세운다. 하나 되자는 구호만 외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먼저 머리 되신 분 앞에 고개를 숙이자. 그리고 그분께 받은 은혜가 내 옷깃을 적셨다면 그것을 곁의 사람에게 흘려보내자.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일터에서도 오늘 내가 기름이 지나가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성도의 작은 친절 하나가 하나 됨의 향기가 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내가 받은 은혜가 내 안에 고여 있지는 않은가? 오늘 누구에게 그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을까?
2. 우리 공동체에서 '옷깃'처럼 가장 먼 자리에 있어 소외되기 쉬운 사람은 누구인가?
3. 하나 됨을 내가 만들어 내려 애쓰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주어진 것을 지키려 하고 있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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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6장 27절 강해 - 존귀와 기쁨의 처소

제목: 존귀와 기쁨의 처소
구절: 역대상 16장 27절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기쁨이 그의 처소에 있도다"

   성도 여러분, 다윗은 오랫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하나님의 궤를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모셔 들이고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찬양의 한 대목입니다. 다윗은 궁전의 화려함이나 군대의 힘을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존귀와 위엄, 하나님의 처소에 있는 능력과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지 본문이 분명하게 일러 줍니다.

1.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니 (27절 상반절)

강해:
'존귀'는 히브리어로 호드(הוֹד), '위엄'은 하다르(הָדָר)입니다. 두 단어 모두 왕이 지닌 찬란한 광채와 권위를 가리킵니다. 본문은 이것이 '그의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존귀를 얻으시려고 애쓰실 필요가 없고, 그분 앞에 서는 순간 사람이 그 위엄을 마주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궤 앞에서는 한 사람의 예배자로 서서 찬양했습니다. 참된 예배는 내가 높아지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크심 앞에서 내가 작아지는 시간입니다.

해설:
같은 찬양이 시편 96편 6절에도 나옵니다.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그 이유는 역대상 16장 25절에 나옵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로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먼저이고 우리의 찬양은 그 뒤따르는 응답입니다. 신약에서 요한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헬라어 독사(δόξα), 곧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적용:
이번 주일 예배당에 들어설 때 "오늘 나는 무엇을 얻을까"를 묻기 전에 "내가 누구 앞에 서 있는가"를 먼저 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심 앞에 서면 우리의 염려가 제 크기를 찾습니다.

2. 능력이 그의 처소에 있으니 (27절 중반절)

강해:
'능력'은 오즈(עֹז)로, 견고함과 힘을 뜻합니다. '처소'는 마콤(מָקוֹם)으로 '장소'를 뜻하는 평범한 단어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말한 처소는 그의 궁전이 아니라 궤를 모셔 둔 장막이었습니다. 장막은 소박했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능력은 건물의 크기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시편 96편이 성소라는 말로 같은 사실을 노래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능력의 근원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입니다.

해설:
신약은 이 처소가 우리에게로 넓어졌다고 말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성령께서 성도 안에 거하시니 성도가 곧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고 권면합니다. 능력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가 나아가는 그 자리에서 공급됩니다.

예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골의 한 작은 교회는 건물이 낡아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샜습니다. 성도는 열 명 남짓이었지만 새벽마다 불이 꺼진 적이 없었습니다. 도시로 나간 자녀들이 와서 건물을 새로 짓자고 했을 때, 연로한 권사님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 남편이 병상을 털고 일어났고, 이 자리에서 우리가 서로 용서했어요. 건물이 아니라 여기서 만난 주님이 우리 힘이었어요." 건물은 낡았어도 그 교회에서는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능력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서 흘러나옵니다.

적용: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시거든 더 많은 것을 갖추려 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먼저 늘려 보시기 바랍니다. 가정과 일터에서도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기쁨이 그의 처소에 있으니 (27절 하반절)

강해:
'기쁨'은 케드와(חֶדְוָה)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즐거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기쁨 역시 '그의 처소에' 있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조건이 갖춰질 때 잠시 찾아왔다가 사라지지만, 하나님 안에서 얻는 기쁨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한 마르지 않습니다. 다윗은 법궤가 들어오는 날 모든 백성과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 기쁨은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에서 나왔습니다.

해설:
느헤미야 8장 10절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선언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오늘 본문의 '능력'(오즈)과 '기쁨'(케드와)이 그곳에서 한 문장으로 묶여 있습니다. 기쁨이 곧 힘이 됩니다. 시편 16편 11절은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권면합니다. 성도의 기쁨은 하나님 앞이라는 자리에서 샘솟습니다.

적용:
기쁨이 사라졌다면 환경을 탓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자리가 멀어지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감사할 일 세 가지를 찾아 주님께 아뢰는 것으로 기쁨의 자리를 회복해 보시기 바랍니다.

맺는말[Conclusion]:

오늘 본문은 하나님 앞에는 존귀와 위엄이 있고, 하나님의 처소에는 능력과 기쁨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우리가 흔히 구하는 성공과 안정과 풍요보다 먼저, 하나님 자신이 우리 예배의 중심에 계셔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알았기에 가장 높은 자리에서도 가장 낮은 예배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처소가 이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세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길을 여셨으므로 우리는 어디에서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힘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기쁨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능력과 기쁨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서 흘러나오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을 가장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새벽의 기도로, 가정의 예배로, 일터의 짧은 감사로 그분 앞에 서십시오. 그때 존귀하신 하나님의 위엄이 우리의 두려움을 덮고, 그분의 능력이 우리의 연약함을 붙들며, 그분의 기쁨이 우리의 마음을 채울 것입니다. 이 은혜가 성도 여러분의 한 주간 위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관련 질문:

1. 나는 예배당에 들어설 때 하나님의 크심 앞에 서려는 마음으로 오는가, 아니면 내가 얻을 것을 먼저 생각하는가?
2. 내가 사는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약하게 느끼는 곳은 어디이며, 그곳을 어떻게 하나님의 처소로 삼을 수 있겠는가?
3. 요즘 나의 기쁨은 어디에서 오고 있으며, 그 기쁨은 환경이 달라져도 변함이 없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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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3장 24절 묵상 - 기업 되신 여호와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예레미야애가 3장은 무너진 예루살렘의 잿더미 위에서 터져 나온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성전은 불타고 성읍은 무너졌으며, 시인은 자신을 고난당한 사람이라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깊은 어둠 한가운데서 말씀의 방향이 바뀝니다. 상황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는 순간 소망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 절들은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라고 노래합니다. 폐허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멈추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임합니다. 24절의 고백은 이 변함없는 성실하심을 붙든 영혼이 내놓은 응답입니다.

히브리어 '헬키 아도나이'는 "여호와는 나의 몫이십니다"라는 뜻입니다. '헬레크'는 땅을 나눌 때 각자에게 돌아가는 분깃을 가리킵니다.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 레위 지파에게 하나님은 친히 분깃이 되어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도 "내 몸과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내 영원한 분깃이시라"라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 한 분이 남아 있다면 성도는 빈손이 아닙니다.

또한 이 고백은 "내 심령에 이르기를", 곧 '아므라 나프쉬', 내 영혼이 말했다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믿음은 때로 낙심한 자신의 영혼에게 진리를 먼저 들려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를 바라리라"는 '오힐'이라는 말은 체념이 아니라 기대를 품고 기다리겠다는 결단을 뜻합니다.

신약에서 성령께서는 이 약속의 확증이 되어 주십니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며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헬라어 '아라본'은 장차 받을 전부를 미리 보장하는 계약금을 뜻합니다. 성령께서 지금 성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이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시라는 보증입니다.

오늘 성도에게 주시는 성령의 음성은 이렇습니다. 잃은 것을 세며 주저앉지 말고, 남아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건강도 물질도 관계도 흔들릴 수 있으나 여호와는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오늘 아침, 내 영혼에게 먼저 말하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내가 그를 바라리라."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지금 내가 가장 붙들고 있는 '분깃'은 무엇이며, 그것이 사라져도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2. 낙심한 내 영혼에게 오늘 어떤 말씀을 먼저 들려주어야 합니까?
3. 성령께서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는 사실은 나의 기다림을 어떻게 바꾸어 줍니까?

기도합시다:
주님, 모든 것이 흔들리는 날에도 주님 한 분이 저의 기업이심을 고백하며 소망으로 주를 기다리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날마다 새로운 은혜로 저희 영혼을 붙들어 주시기를 간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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