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3. 2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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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6장 10절 칼럼n - 자랑과 기쁨의 근원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이 구절은 성경 속 다윗의 찬양에서 나온 말이다. 얼핏 보면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짧은 문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자랑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고, 그로 인해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을 느끼길 원한다. 이 글은 그 자랑과 기쁨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탐구해보려 한다.

먼저, ‘자랑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자랑은 보통 우리가 가진 성취나 소중한 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격증을 딴 날, 오랜 노력 끝에 마라톤 완주 메달을 목에 건 순간,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소박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SNS에 올리며 느끼는 그 뿌듯함. 이런 자랑은 단순히 외적인 과시가 아니라, 내 안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인간적인 욕구다. 역대상 16:10은 그 자랑의 대상을 ‘그의 성호’로 돌리지만, 이를 넓게 해석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존재나 원칙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자랑할 때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느낄까? 물질적인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을 좇는 자랑은 잠깐의 만족을 줄지 몰라도, 곧 공허함으로 이어지곤 한다. 반면, 내적 평화나 타인과의 깊은 연결에서 오는 자랑은 오래도록 마음을 채운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도운 뒤 느껴지는 조용한 뿌듯함은 돈이나 명예보다 더 깊은 기쁨을 준다. 이 구절에서 ‘여호와를 구하는 자’라는 표현은 종교적 맥락을 넘어, 삶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신앙이든, 사랑이든, 정의든, 우리가 마음 깊이 의지하고 추구하는 그 무언가를 찾을 때 비로소 기쁨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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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살아간다. 소셜 미디어는 남들의 화려한 삶을 보여주고, 그 앞에서 우리의 자랑거리는 초라해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 구절은 우리에게 다른 시선을 제안한다. 남과 비교하며 자랑할 대상을 찾기보다, 내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자랑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세상 기준으로는 작아 보일지라도,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충분히 자랑할 가치가 있다.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려 보여줄 때의 그 순수한 기쁨처럼, 자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중요하다.


결국, “마음이 즐거울지로다”라는 말은 이 모든 여정의 종착지다. 기쁨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선물이다.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과 연결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기쁨은 저절로 따라온다. 이 구절은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초대장이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자랑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마음을 얼마나 즐겁게 하는가? 그 답을 찾는 순간, 우리는 모두 이 구절 속 진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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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3. 2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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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1편 1절 강해 - 겸손의 길

제목: 겸손의 길: 시편 131:1을 통한 영적 성찰
본문: 시편 131편 1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편 131편 1절은 다윗의 겸손한 고백을 담고 있으며, 이는 우리 신앙 여정에서 중요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단순함을 강조합니다. 본 설교는 이 구절을 세 가지 요점으로 나누어 해석하고, 성구들을 통해 성경적 맥락을 더하며, 현대적 적용을 제시한 뒤 서술적 결론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 겸손한 마음: 교만의 거부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라는 다윗의 고백은 그의 내면이 하나님 앞에서 낮아진 상태를 나타냅니다. 교만은 인간이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높이려는 태도이며, 이는 죄의 근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자신을 복종시킵니다.

-관주: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이 파괴로 이끄는 길임을 경고하며, 다윗의 겸손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빌립보서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신약에서도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핵심 덕목으로 강조됩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성공과 인정에 집착하며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SNS에서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거나 남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모습은 현대적 교만의 예입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우리의 마음을 점검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승진을 위해 동료를 깎아내리려 할 때, 잠시 멈추고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2. 낮아진 시선: 오만의 배제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라는 표현은 다윗이 외적인 태도에서도 겸손을 유지했음을 보여줍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불리며, 오만한 시선은 다른 이를 무시하거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높은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오만을 버렸습니다.

-관주: 마태복음 7:3-5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오만한 판단을 경계하며 겸손한 자기 성찰을 촉구하십니다. 이사야 2:11 "그 날에 오만한 자의 눈이 낮아지고 교만한 자가 굴복하리니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실 분임을 상기시킵니다.

-적용: 우리는 종종 남을 평가하거나 비판하며 오만한 시선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다른 성도의 헌신을 비판하거나, 가난한 이를 업신여기는 태도는 오만의 눈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로 바라보는 겸손한 시선을 훈련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판단하려 할 때, "내 눈이 오만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시선을 낮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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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단순한 소망: 분수에 맞는 삶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는 다윗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에 만족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왕으로서 큰 업적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지 않은 일에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는 단순함과 평안의 삶을 선택한 태도입니다.

-관주: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며 불필요한 욕심을 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에 맞춰 이루어짐을 상기시킵니다.

-적용: 현대인은 끝없는 성취와 야망을 추구하며 자신을 소진시킵니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 애쓰는 모습은 다윗의 고백과 대조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분수에 만족하며, 그분의 뜻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정적 부담을 안고 과도한 소비를 추구하기보다, "내게 주신 것으로 만족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단순한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맺는말[Conclusion]:

시편 131편 1절은 우리에게 겸손의 길을 제시합니다. 다윗은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오만한 시선을 낮추며, 분수에 맞는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경쟁과 욕망의 소용돌이로 몰아가지만, 이 구절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하나님 앞에 서도록 초대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할 때 교만이 고개를 들고, 타인의 실수를 볼 때 오만한 판단이 앞서며,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을 때 욕심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매일 아침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여호와여, 제 마음과 눈을 겸손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신 삶에 만족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점차 이 말씀을 삶 속에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시편 131:2에서 이어지는 "젖 뗀 아이와 같은 평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겸손의 길이 우리를 하나님의 품으로 더 가까이 인도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여호와여, 제 마음이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제 눈이 오만하지 않게 지켜주소서. 큰 일과 감당할 수 없는 일에 욕심내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신 삶에 만족하며 겸손히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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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3. 26.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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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0편 12절 묵상 - 하나님의 변호와 정의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불의한 세력 앞에서 힘없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악한 사람들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시편 140편 12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하나님이 고난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변호: 억울한 자의 편이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억울한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힘을 이용하여 약한 자들을 억누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다윗 역시 억울한 일을 당한 경험이 많았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기며, 무고한 핍박을 당하고, 거짓 증언과 음모 속에서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억울함을 아시고, 결국 공의롭게 판단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억울한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또는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변호자가 되십니다. 세상의 법정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억울한 자들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2. 하나님의 정의: 궁핍한 자를 위한 공의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 억눌리고 소외된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정의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종종 부유한 자들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돌아갑니다. 가난한 자들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우며, 불의한 상황에서도 보호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궁핍한 자들을 돌보시며, 억울함을 당한 자들에게 정의를 이루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말씀도 이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셨으며, 소외된 자들에게 사랑과 정의를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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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다윗은 하나님께서 변호하시고 정의를 베푸시는 분임을 "내가 알거니와"라고 확신하며 선포합니다. 이는 단순한 희망적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경험한 자로서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불의가 계속되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이 정말 정의를 이루실까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의를 행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아시는 하나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결코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이 믿음을 붙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억울함을 당한 자리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변호와 정의를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의한 일이 가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난당하는 자를 변호하시고,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하며 확신을 가졌고, 우리도 그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합시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변호하시며, 정의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공의로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최근 억울한 상황이나 불의한 일을 경험했을 때, 하나님의 변호하심을 신뢰했는가?
2.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정의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내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3. 지금 내가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며 인내해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세상은 종종 불의하고 억울한 일들로 가득하지만, 주님께서 고난당하는 자를 변호하시고,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나의 억울함을 아시는 주님, 내가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공의를 신뢰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또한 나도 주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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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3. 2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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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3장 2절 칼럼n - 온유함과 관용의 힘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성경 디도서 3장 2절에 담긴 이 말씀은 단순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종교적 배경을 떠나, 이 구절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람들과 맺는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비방과 다툼을 피하고, 관용과 온유함으로 사람들을 대하라는 이 조언은 오늘날 혼란스럽고 갈등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현대 사회는 경쟁과 비교의 연속이다. 소셜 미디어는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논쟁을 벌이는 공간으로 변질되곤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결국 상처와 분열을 낳을 뿐이다. 디도서의 이 구절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과연 내가 내뱉는 말이, 내가 취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보라고.

비방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들의 결점이나 실수를 너무 쉽게 단죄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를 비난하며 소문을 퍼뜨리는 대신 조용히 도움을 제안하는 태도는 비방을 피하는 온유함의 실천이다. 이런 작은 행동 하나가 관계를 회복하고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다투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도전이다. 우리는 의견이 다를 때마다 방어적이 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하지만 다툼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큰 갈등을 만든다. 최근 한 친구와 정치적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다 관계가 어색해진 경험을 떠올려보자. 그때 한쪽이 “네 생각도 일리가 있다”며 한 발 물러섰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관용은 완벽한 동의를 뜻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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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은 약함과 혼동되곤 하지만, 사실 그것은 강함의 표현이다.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을 다스리며 부드럽게 대응하는 것은 내면의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역사 속 인물인 마하트마 간디는 폭력 대신 온유함과 관용으로 인도를 독립으로 이끌었다. 그는 적을 비방하거나 다투는 대신, 그들을 이해하고 설득하려 했다. 그의 삶은 이 구절이 가진 힘을 증명한다.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나타내라는 말은 특히 강조할 만하다. 여기에는 가족, 친구뿐 아니라 낯선 사람, 심지어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까지 포함된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무례한 운전자, SNS에서 공격적인 댓글을 단 익명의 누군가에게도 관용을 베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온유함을 선택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이는 상대방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말씀은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으로 공감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실수하고, 상처받고, 화가 나는 순간을 겪는다. 그럴 때마다 비방과 다툼 대신 관용과 온유함을 선택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 한 사람의 작은 변화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듯, 이 단순한 원칙은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

결국, 디도서 3장 2절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누구에게 어떤 말을, 어떤 태도로 전할 것인가? 그 답은 우리의 손에 달렸다. 온유함과 관용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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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3. 2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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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장 11절 강해 -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확장

제목: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확장
본문: 신명기 1장 11절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신명기 1장 11절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이 구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천 배나 번성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약속하신 복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약속의 성취, 그리고 그분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기도

신명기 1:11에서 모세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는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는 간구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번성하게 하실 것을 확신하며 기도합니다.

-관주: 창세기 12:2-3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를 축복하리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까지 이어졌으며, 신명기 1:11은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또한 시편 115:14에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더하며 더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노래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해서 확장됨을 보여줍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 공동체가 숫자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간구할 때, 모세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어렵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천 배로 바꾸실 능력이 있으심을 기억합시다.

2.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모세는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단순한 말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신명기 1:8),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분의 말씀의 확실성을 드러냅니다.

-관주: 여호수아 21:43-45는 이 약속의 성취를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집에 주리라고 맹세하신 온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 땅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니…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마 하신 모든 좋은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응하였더라." 또한 히브리서 10:23에서는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음의 소망을 굳게 잡으라"고 권면합니다.

-적용: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영생의 약속(요한복음 3:16)과 성령의 내주하심(요한복음 14:16-17)은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분이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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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복 주심에 대한 소망

마지막으로 모세는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복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평화, 그리고 영적인 충만함을 포함하는 전인적인 축복입니다.

-관주: 에베소서 1:3에서 바울은 "하늘에 있는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는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복을 보여줍니다. 또한 민수기 6:24-26의 아론의 축복("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복의 본질을 잘 나타냅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물질적인 필요뿐 아니라, 영적인 성장과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가 받은 복을 이웃과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맙시다.

맺는말[Conclusion]:

신명기 1장 11절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 그리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담은 귀한 말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천 배의 번성과 복을 구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모세처럼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작고 연약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천 배로 늘리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우리는 그 약속을 붙잡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복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그분이 주시는 복을 기대하며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 나아가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모든 것이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우리의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됨을 잊지 말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신명기 1장 11절의 말씀을 통해 주신 약속과 축복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를 천 배나 많게 하시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복으로 채워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어려운 순간에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주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 삶 속에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게 하시고, 받은 복을 이웃과 나누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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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3. 25.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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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장 9절 묵상 - 하늘보다 높은 하나님의 길과 생각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 55장 9절은 인간과 하나님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길과 생각이 우리의 길과 생각을 초월함을 선언합니다. 우리의 제한된 사고방식과 이해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겸손과 신뢰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1. 하나님의 길은 인간의 길보다 높다

성경에서 "길"이라는 표현은 삶의 방식과 방향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길을 정하고 계획하며 나아가지만, 그 길이 언제나 옳거나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길은 종종 불완전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때로는 죄로 인해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거룩하고 완전하며,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잠언 3:6).

하나님의 길이 우리의 길보다 높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길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차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요셉의 삶을 보면,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고, 그를 통해 많은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창세기 50:20). 요셉이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길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길을 걷게 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더디거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뢰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보다 더 높고 완전한 길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계획이 실패할 때, 하나님의 길이 여전히 우리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예레미야 29:11).

2.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보다 높다

인간의 생각은 제한적이고 감정에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죄로 인해 왜곡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거룩하며 완전하고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선한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제자들과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강력한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군사적인 왕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였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실패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생각 안에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는 승리였습니다(고린도전서 1:18-25).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욥이 겪었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이 왜 고난을 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생각을 초월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욥기 42장 2절에서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우리의 생각이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언 3:5)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 때 우리는 참된 평안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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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의 반응: 하나님의 길과 생각을 신뢰하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계획을 고집하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이 더 높고 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둘째,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하나님의 길과 생각을 따라가는 삶

이사야 55장 9절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의 길과 생각이 우리의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평안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길이 막힐 때, 우리의 생각이 흔들릴 때, 하나님을 더욱 신뢰합시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보다 더 높은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은 때때로 이해되지 않는 과정이지만, 결국에는 가장 완전한 길로 인도받는 축복이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길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삶을 살아갑시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지금까지 내 생각과 계획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의 길을 인정하고 순종해야 하는가?
2. 하나님의 길이 내 길보다 높다는 것을 깨달았던 경험이 있는가? 그때 나는 어떤 태도를 보였으며, 무엇을 배웠는가?
3. 현재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생각이 나보다 높음을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결단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때때로 제 생각과 계획을 더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길과 생각이 저보다 높고 완전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제 삶의 모든 순간을 주님께 맡기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신뢰하며 나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제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믿음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Cg.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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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3. 2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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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24절 칼럼n - 한 알의 희생, 모두의 열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성경 구절은 예수께서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오실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단순히 종교적 맥락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 때로는 우리의 작은 희생이 더 큰 가치를 창조한다는 메시지는 삶의 여러 장면에서 울림을 준다.

생각해보자.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한다. 늦은 밤까지 깨어 아이의 숙제를 돕고, 주말의 휴식을 포기해 가족과의 추억을 쌓는다. 그 순간에는 피로와 고단함이 따를지라도, 자식이 성장해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면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묻히듯, 부모의 헌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결국 풍성한 열매로 돌아온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팀 프로젝트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공을 덜 드러내며 동료를 돕는다. 야근을 감수하며 자료를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해 전체의 성공을 이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시간과 노력이 ‘죽는’ 듯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팀이 목표를 달성하고 모두가 그 성과를 나눌 때, 그 희생은 결코 한 알로 끝나지 않고 더 큰 결실로 피어난다.

자연에서도 이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씨앗은 단단한 껍질을 깨고 흙 속에서 썩어야 싹을 틔운다. 겉으로 보면 씨앗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씨를 흩뿌리고, 그 씨가 땅에 떨어져 또 다른 숲을 이루듯, 자연은 끊임없이 희생과 생성의 순환을 반복한다. 이는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무언가를 잃는다고 느낄 때, 그것이 때로는 더 큰 무언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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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도 이 진리가 빛난다. 수많은 혁신가와 개혁가는 당장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그의 희생은 인종차별 철폐라는 열매를 맺었다. 한 사람의 용기와 결단이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세상을 바꾼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은 것처럼 보였던 순간이, 결국 인류의 풍성한 수확으로 이어졌다.

물론 희생은 쉽지 않다. 당장의 손실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에 우리는 망설이고 주저한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이 구절은 우리에게 묻는다. “한 알 그대로 머물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에도 적용된다. 내가 조금 양보하고, 내가 조금 더 나누고, 내가 조금 더 참을 때, 그 작은 죽음은 더 큰 생명으로 되살아난다.

오늘날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각자의 이익을 좇기 바쁘다. 그러나 이 말씀은 잠시 멈춰 생각하게 한다. 내가 가진 한 알을 꼭 쥐고 있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내려놓고 땅에 심을 때, 예상치 못한 열매가 자랄 수 있다. 이웃을 위해 시간을 내고, 환경을 위해 편의를 줄이고,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의 욕심을 덜어낸다면, 우리는 더 풍요로운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구절은 희생의 가치를 말한다. 한 알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것은 사랑, 헌신, 그리고 더 큰 목적을 위한 첫걸음이다. 종교를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진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미 수없이 경험하고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 나만의 한 알을 땅에 심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작은 선택이 어떤 열매로 돌아올지, 그 기적을 기대하며 말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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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3. 2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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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27절 강해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귀함

제목: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귀함
본문: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통해 인간의 기원과 가치를 분명히 제시합니다. 이 구절은 인간이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과 형상을 반영하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탐구하고, 이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며, 결론적으로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본질과 정체성

창세기 1장 27절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히 외적인 모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반영하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능력을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이성, 창의력, 도덕적 판단력, 그리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관주: 골로새서 3장 10절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갱신과 회복의 목표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24절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권면합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그분의 사랑, 공의, 그리고 거룩함을 반영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분노나 이기심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2.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창조: 다양성과 통일성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두 가지 성별로 창조하셨음을 명확히 합니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차이를 넘어,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가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함께 드러냅니다.

-관주: 갈라디아서 3장 28절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고 선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차별이 초월되고 동등성이 회복됨을 보여줍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1장 11-12절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의존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강조합니다.

-적용: 이 진리는 가정, 교회,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서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하나님의 창조 의도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섬기고 사랑할 때, 하나님의 형상이 더욱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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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의 존귀함과 책임: 창조의 목적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귀함을 지닙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이어지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할 의무를 동반합니다.

-관주: 시편 8장 4-5절은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노래하며 인간의 존귀함을 찬양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22장 37-39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시며, 이 책임의 핵심을 제시하십니다.

-적용: 우리는 이 존귀함을 인식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이웃을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환경을 돌보고, 약한 자를 보호하며,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길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창세기 1장 27절은 단순한 창조의 기록을 넘어, 인간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깊은 신학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반영하며 살아가야 할 소명을 받았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동등한 존엄성을 바탕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또한 이 특별한 지위는 우리에게 창조 세계를 책임 있게 다스릴 의무를 부여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얼마나 반영하며 살아왔는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는가? 나에게 맡겨진 시간과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도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로서, 우리는 매일 그분께 나아가 은혜를 구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 진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여,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 주신 이 놀라운 정체성과 책임을 기억하며, 날마다 그분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합시다.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저희를 주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주님의 성품을 반영하며, 남녀 모두 동등한 존귀함을 인정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주신 책임을 기억하며 창조 세계를 잘 돌보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게 하시고, 일상에서 주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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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