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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2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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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6장 11절 묵상 -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하라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이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며 드린 찬양과 감사의 맥락 속에서 나옵니다. 역대상 16장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기뻐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권면을 넘어,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고 끊임없이 그분을 바라보라는 깊은 초대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구하다’와 ‘찾다’라는 동사의 능동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소원을 빌거나 필요를 채워달라고 요청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이는 마음을 다해 그분의 본질, 성품, 그리고 뜻을 알아가려는 열망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을 구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이루실 수 있음을 믿는 행위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로 삼고, 그분과의 깊은 교제를 갈망해야 함을 일깨웁니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라는 표현은 더욱 강렬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무르며,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얼굴은 사람의 정체성과 감정을 드러내는 가장 개인적인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그분의 마음을 알고, 그분의 기뻐하시는 바를 구하며, 그분의 뜻에 우리의 삶을 정렬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항상’이라는 단어가 말하듯, 끊임없는 여정이자 삶의 습관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분주함과 세상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스마트폰 알림, 끝없는 할 일 목록, 그리고 세속적인 성공을 향한 압박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멈추고 방향을 재정립하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의 얼굴을 찾는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며 드리는 기도, 하루 중 잠시 멈춰 말씀을 읽는 시간,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마음 -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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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질병, 상실, 두려움, 그리고 죄의 유혹은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한계를 초월합니다. 다윗은 이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 수많은 적들로부터 지키신 능력을 기억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행하신 일들을 떠올리며, 그분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항상’이라는 단어는 이 말씀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일은 특정한 순간이나 위기의 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풍요로운 때나 부족한 때,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는 영적인 훈련입니다. 기도와 말씀, 예배와 순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깊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마치 나침반이 항상 북쪽을 가리키듯, 우리의 마음도 항상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다윗의 삶을 돌아봅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죄를 짓고, 실수하며,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시편은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의 얼굴을 찾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연약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구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분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의 얼굴을 찾는 자에게 그분은 결코 숨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55:6에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고 하셨지만, 역대상 16:11은 그 ‘때’가 바로 지금, 항상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우리의 갈망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능력은 우리를 새롭게 하고, 그분의 얼굴은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의 얼굴을 찾는 여정으로 다시 정렬되길 소망합니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이 항상 여호와를 향하도록 하소서. 그분의 능력을 구하며,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하는 삶 - 그것이 참된 기쁨과 평안의 길인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그분의 임재를 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2. 현재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할 구체적인 어려움이나 필요는 무엇인가?  
3. ‘항상’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영적 훈련은 무엇인가?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를 향한 주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을 찬양합니다. 제 마음이 항상 주님을 구하고, 주님의 얼굴을 찾게 하소서.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주님을 우선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저의 연약함을 아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저를 붙드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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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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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6장 10절 칼럼n - 돈의 유혹과 진정한 행복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현대 사회에서 돈은 생존의 필수 요소로 여겨진다. 우리는 먹고, 입고,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경고한다. 이 말씀은 돈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잘못된 태도가 우리를 파괴로 이끌 수 있음을 깨우쳐 준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미묘하게 우리 삶에 스며든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하거나, 부를 과시하며 타인을 깎아내리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는 값비싼 명품이나 화려한 여행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이미지들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소유가 아니라, 관계와 내면의 평화에서 온다.

돈을 탐하는 이들은 종종 ‘미혹’에 빠진다. 이 미혹은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거짓 믿음이다. 하지만 돈은 건강, 사랑, 신뢰를 살 수 없다. 한 예로, 고액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 과로로 건강을 잃거나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돈은 잠시 위안을 줄지 몰라도, 근본적인 공허함을 채우지 못한다. 성경은 이러한 탐욕이 결국 “많은 근심”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는 돈을 쫓던 이들이 마주하는 불안, 스트레스, 그리고 영적 갈증을 정확히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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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돈과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먼저, 돈을 삶의 도구로 보고, 그것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돈은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수단일 뿐, 삶의 목적이 아니다. 둘째,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자. 연구에 따르면, 타인을 위해 돈을 사용할 때 우리는 더 큰 행복을 느낀다. 작은 기부나 이웃을 위한 선행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마지막으로, 내면의 믿음과 가치를 우선시하자. 가족, 친구, 그리고 신앙은 돈이 줄 수 없는 깊은 만족을 선사한다.

돈은 유용한 도구지만, 그것을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길을 잃는다. 디모데전서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돈을 쫓는 대신, 사람과 신뢰, 그리고 진정한 기쁨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비로소 근심이 아닌 평화로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지갑이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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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4.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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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장 12절 강해 -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의 온전한 앎

제목: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의 온전한 앎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12절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 장'으로 불리며, 바울이 사랑의 본질과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중 12절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 부분적인 앎과 온전한 앎을 대비하며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우리 믿음의 여정을 묘사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서 제한된 시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바라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한 이해와 친밀함을 누릴 것임을 약속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핵심 포인트를 살펴보고, 이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겠습니다.

1. 현재의 희미한 앎: 거울을 통한 제한된 시각

  바울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라고 말합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의 거울은 오늘날의 선명한 거울과 달리, 광택을 낸 금속으로 만들어져 흐릿한 이미지만을 비췄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의 현재 신앙 여정이 제한적이고 불완전함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하나님을 알지만, 죄와 인간적 한계로 인해 그분의 온전한 영광과 계획을 다 알지 못합니다. 이 희미한 앎은 우리의 지식, 믿음,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납니다.

-관주: 이사야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나의 길이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이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이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며, 우리의 앎은 제한적입니다. 요한일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현재는 하나님의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그분의 재림 시에 그분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적용: 우리의 제한된 앎은 좌절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는 겸손의 기회입니다. 우리는 모든 답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지하며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모든 결과를 알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기도와 말씀에 근거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2. 미래의 온전한 앎: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바울은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직접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미래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얼굴을 대하여' 이야기했지만(출 33:11), 그조차 하나님의 온전한 영광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출 33:20).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직접 보며 완전한 친교를 누릴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로 가득한 관계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관주: 계시록 22:4 "그들이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얼굴을 직접 보며 영원한 친교를 누립니다. 시편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깨어날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와의 만남이 궁극적 만족임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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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이 약속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현재의 고난, 혼란, 또는 관계의 갈등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친교를 기대하며 인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해나 갈등이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용서와 화해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의 완전한 이해

  바울은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라고 결론짓습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아십니다(시 139:1-4). 우리의 생각, 행동, 심지어 숨겨진 죄까지 아시지만, 그분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미래에는 우리도 하나님과 이웃을 이와 같은 완전한 사랑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이는 지식의 완성뿐 아니라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며, 고린도전서 13장의 주제인 사랑과 연결됩니다.

-관주: 시편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사 아셨나이다…내가 혀로 말하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하나님의 완전한 아심은 우리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요한복음 17: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사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도록 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이웃을 판단하거나 정죄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신 것 같이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등이 생길 때, 상대방의 입장을 듣고 공감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수록 우리는 자신을 용납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그분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맺는말[Conclusion]:

고린도전서 13:12은 우리의 신앙 여정이 희미한 거울에서 시작되어 하나님과의 얼굴 대 얼굴의 친교로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현재 우리는 제한된 앎으로 인해 좌절하거나 혼란을 겪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미래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며 그분과의 온전한 친교를 누릴 소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안에서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아신 것 같이 이웃과 자신을 사랑하며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겸손, 소망, 그리고 사랑의 삶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기도와 말씀에 뿌리박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영원한 친교를 기대하며 고난과 갈등 속에서도 인내와 용서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이웃을 품고, 자신을 용납하며,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희미한 앎이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으로 채워지며, 그 사랑이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통해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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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25.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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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 18절 묵상 -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이 말씀은 단순히 들으면 평화롭게 살라는 가벼운 조언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깊고도 실천적인 도전을 줍니다. 이 구절은 우리 삶 속에서 관계의 소중함과 화목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며, 동시에 그 한계를 인정하는 현실적인 지혜를 보여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화목의 의미와 중요성

"화목하라"는 단어는 단순히 다투지 않는 것을 넘어 서로 조화를 이루고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평화는 하나님의 본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으리라"(마태복음 5:9)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화목을 추구하는 삶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삶이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현대 사회를 보면, 갈등과 분열이 곳곳에 만연해 있습니다. SNS에서 벌어지는 말다툼, 정치적 대립, 심지어 가정 내의 불화까지, 우리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화목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노력과 희생, 그리고 사랑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할 수 있거든"의 현실적 지혜

흥미롭게도 이 구절은 "할 수 있거든"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화목이 언제나 우리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평화를 원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거부하거나 갈등을 조장한다면 화목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너희로서는"이라는 단서를 통해 우리의 책임과 한계를 분명히 합니다. 즉,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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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완벽주의적인 부담을 덜어줍니다. 모든 사람과 항상 평화롭게 지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우리의 태도, 말, 행동-을 통해 화목을 추구하라는 지침을 줍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때, 보복하거나 화를 내는 대신 침묵하거나 용서하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을 향한 열린 마음

"모든 사람과 더불어"라는 표현은 우리의 화목의 범위가 특정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친구, 가족, 교회 공동체를 넘어, 심지어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적대적인 사람들까지 포함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모범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한 유다에게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에게도 원망 대신 용서를 구하셨습니다(누가복음 23:34). 이 놀라운 사랑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과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목이 반드시 상대방과의 깊은 우정이나 합의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화목을 위한 실천

이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면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합니다. 첫째, 우리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잠언 15장 1절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합니다. 화목을 깨뜨리는 가장 큰 요인은 거친 말입니다. 둘째,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원수를 갚으려 하기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마태복음 5:44). 셋째, 겸손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서 바울은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라고 권면합니다. 교만은 갈등을 낳지만, 겸손은 화목을 만듭니다.

하나님의 평화 안에서

결국,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려는 노력은 우리 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 때문에 좌절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빌립보서 4장 7절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약속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관계를 맡기고 기도할 때, 그분의 평화가 우리를 인도합니다.

로마서 12장 18절은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소명입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하루 우리의 말과 행동을 돌아봅시다. 내가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화목을 세우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최근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평화를 깨뜨린 적이 있나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거든" 화목을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일까요?
 - 이 질문은 우리의 행동과 태도를 돌아보며, 화목을 위한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2. "모든 사람"을 향한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 내가 용서하거나 포용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 이 질문은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랑과 용서의 실천을 도전합니다.

3. 내 삶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 평화를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일까요?
 - 이 질문은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묵상하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말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연약함으로 갈등을 일으킬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제 안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게 하시고, 그 평화를 제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세요. 특별히 용서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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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2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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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2장 2절 칼럼n - 나의 반석, 나의 요새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삶은 때로 거친 파도가 되어 우리를 덮칩니다. 예상치 못한 시련, 끝없이 이어지는 불확실성, 그리고 마음을 짓누르는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풍경입니다. 이런 순간,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사무엘하 22장 2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이 짧은 구절은 깊은 위로와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누구나 폭풍 속에서 흔들릴 때, 굳건한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자였지만, 사울의 추격, 전쟁의 소용돌이, 그리고 개인적인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을 “반석”과 “요새”로 묘사합니다.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기초, 요새는 안전한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단순한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힘이었습니다. 이 고백은 특정 신앙을 가진 이들뿐 아니라, 삶의 무게를 느끼는 모든 이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폭풍을 마주합니다. 누군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누군가는 관계의 갈등으로, 또 다른 이는 건강 문제나 내면의 불안으로 고통받습니다. 이런 순간, 우리는 무엇을 반석으로 삼고 있나요? 돈, 성공, 인간관계, 혹은 자기 자신? 이들은 소중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돈은 고갈되고, 성공은 덧없으며, 사람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말하는 반석은 다릅니다. 그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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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건지시는 자”라는 표현은 특히 강렬합니다. 이는 단순히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넘어, 우리를 붙잡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이는 종교적 신념을 떠나, 우리 모두가 바라는 희망의 본질입니다. 누군가는 가족의 사랑에서, 또 다른 이는 우정이나 삶의 목적에서 이 “건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넘어지게 두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절망 속에서도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이 구절은 또한 우리의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를 줍니다. 다윗은 강한 전사였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움을 청했고, 그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증거입니다. 친구에게 마음을 열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거나, 혹은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 단단한 반석 위에 세웁니다.

사무엘하 22장 2절은 단순한 종교적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외침입니다. 삶의 폭풍 속에서 우리는 모두 안정과 보호, 그리고 구원을 갈망합니다. 다윗의 고백은 그 갈망에 응답합니다. 당신의 반석은 무엇입니까? 당신을 지켜주는 요새는 어디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며, 우리는 각자의 피난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파도라도 이겨낼 힘을 찾을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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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4. 2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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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38절 강해 - 새 포도주와 새 부대: 변화와 순종의 삶

제목: 새 포도주와 새 부대: 변화와 순종의 삶
본문: 누가복음 5장 38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누가복음 5장 38절에서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포도주 저장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가져오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영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전통과 율법주의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새로운 변화에 열려 있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본 설교는 누가복음 5장 38절을 중심으로 세 가지 요점을 통해 이 말씀의 의미를 탐구하고, 성경의 다른 구절과 연결하여 실제 삶에 적용하며, 서술적 결론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 새 포도주: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와 은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포도주”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새 포도주는 발효 과정에서 생동감과 힘을 가지며,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가져오는 생명력과 변혁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율법과 전통에 얽매여 있었고,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며(눅 5:33), 자신들의 종교적 틀 안에 예수님을 맞추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복음이 기존의 율법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관주: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나님은 항상 새롭고 놀라운 일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 새 일의 정점입니다. 요한복음 2:1-11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사건은 새 포도주가 주는 기쁨과 풍성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예수님의 복음이 주는 생명과 기쁨을 상징합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포도주,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과거의 습관이나 전통에 갇혀 있다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경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새로운 예배 방식이나 사역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도전받는 새로운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새 부대: 변화된 마음과 삶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여기서 “새 부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된 마음과 삶을 의미합니다. 낡은 부대는 굳어지고 유연성을 잃은 상태로, 새 포도주의 발효 과정에서 터져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고정관념이나 죄로 굳어 있다면,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담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며 그들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셨습니다. 예를 들어, 세리 레위(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눅 5: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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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주: 에스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리니.” 하나님은 우리의 낡은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그분의 뜻을 따를 수 있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새 부대와 같은 새 삶을 살아갑니다.

-적용: 우리의 삶이 새 부대가 되기 위해서는 회개와 갱신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일상에서 분노, 시기, 혹은 세속적 욕망이 우리의 마음을 낡은 부대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채워질 때, 우리는 그분의 복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3. 순종의 삶: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실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는 것은 단순히 마음의 준비뿐 아니라 실제적인 순종의 삶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새 포도주는 정체되어 있지 않고, 부대 안에서 발효하며 생명력을 발휘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 속에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죄인을 불러 제자로 삼으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관주: 야고보서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듣는 것뿐 아니라 실천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7:24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리라.” 순종의 삶은 우리의 신앙을 견고히 합니다.

-적용: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정직함을 실천하거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것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실천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새로운 사역이나 봉사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한 적용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새 포도주와 새 부대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담는 우리의 삶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은혜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삶이 새롭게 준비되어야 합니다. 낡은 부대와 같은 고정관념, 죄,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새 부대가 될 때,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풍성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과 소망을 동시에 줍니다. 도전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변화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소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을 풍성하게 채우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삶이 새 부대가 되기를 소망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이웃과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 순종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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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24.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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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장 12절 묵상 -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창세기 32장 12절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간구하며 과거의 약속을 상기합니다. 이 말씀은 야곱이 에서와의 재회를 앞두고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즉 "네 씨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는 말씀을 붙들며 기도합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과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언약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 12:2)고 약속하셨고, 이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 이어졌습니다. 야곱이 이 약속을 인용하며 기도할 때,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환경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후손을 주겠다는 약속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말씀은 우리의 삶에 확실한 기초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약속, 또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마 5:10)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야곱처럼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나아가라

야곱은 에서와의 만남을 앞두고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과거에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았고, 그로 인해 에서의 분노를 피해 도망친 경험이 있었습니다(창 27장). 이제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은 야곱에게 큰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두려움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약속을 상기했고,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은혜를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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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우리의 삶과도 연결됩니다. 우리는 종종 두려움과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건강, 재정, 관계, 미래에 대한 염려가 우리를 짓누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기도는 우리에게 믿음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도전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이 이루어진다

야곱의 기도에서 주목할 점은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단순한 계획이 아니라 은혜의 약속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속임수로 장자권을 얻었고, 라반과의 관계에서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시고 약속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 은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죄와 연약함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부족함을 덮고, 약속을 성취하시는 원동력입니다.

적용: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라

야곱의 기도는 우리에게 실질적인 적용점을 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약속들은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합니다. 둘째,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올 때 기도로 나아가십시오. 야곱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셋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십시오. 바다의 모래와 같은 약속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새롭게 붙들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고 불확실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인도하는 등불입니다. 야곱이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듯, 우리도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시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 야곱은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며 기도했습니다. 현재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의지하며 기도하고 있는 구체적인 상황은 무엇인가요?
2. 은혜에 대한 인식: 야곱은 자신의 부족함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이 이루어짐을 알았습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이며, 이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와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을까요?
3. 두려움과 믿음의 균형: 야곱은 에서와의 만남을 앞두고 두려웠지만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내가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고 있는 상황은 무엇이며, 이를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요?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야곱처럼 두려움과 연약함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주님의 은혜로 저를 인도하시고,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님의 약속이 제 삶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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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2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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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9장 2절 칼럼n - 하나님의 동행이 가져오는 형통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종종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시련을 마주한다. 때로는 우리의 계획이 어긋나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성경 구절인 창세기 39장 2절은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소망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동행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요셉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형들에게 배신당해 노예로 팔려가고,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요셉이 처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요셉에게 단순한 위로를 넘어 그의 삶을 형통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형통'은 단순히 물질적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열매를 맺는 것을 포함한다.

오늘날 우리도 요셉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가정에서 갈등을 겪거나, 건강이나 재정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외로움과 절망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요셉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의 동행은 우리의 상황을 바꾸는 기적을 일으킬 뿐 아니라, 우리에게 그 어려움을 이겨낼 힘과 지혜를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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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형통은 그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노예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주인을 섬겼고, 그 결과 보디발의 신뢰를 얻었다. 이는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지 하나님께 충실히 반응할 때, 그분이 우리의 삶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작은 충실함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큰 열매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말씀은 또한 하나님의 동행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음을 말해준다. 요셉은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미친다.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일하시길 원하신다. 어려운 순간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

결국, 요셉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동행을 믿고 있는가?" 우리의 삶이 혼란스럽고 불확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은 우리를 형통의 길로 인도한다. 그분의 손길은 우리의 실패를 성공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꾼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동행을 구해보자. 그분은 이미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형통한 삶으로 이끌 준비가 되어 계신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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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