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약속으로,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이 귀 기울이신다는 선언이다. 이 말씀은 단순히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기도의 본질과 그 힘을 되새기게 한다.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기도를 잊거나, 기도가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느낄 때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역대하 7장 15절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그에 응답하신다. 때로는 우리의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때로는 우리의 시간표와 다른 때에 응답하실지라도, 그분의 귀는 언제나 열려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소음과 혼란 속에 산다. SNS, 뉴스, 끝없는 업무는 우리의 마음을 분산시키고, 정작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환경에서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다시 이끄는 쉼터다. 기도할 때 우리는 세상의 소음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주의 깊게 들으신다는 약속을 통해 우리에게 평안과 소망을 준다.
특히 이 본문은 공동체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강조한다. 솔로몬은 개인이 아닌 백성을 대표하여 성전을 봉헌하며 기도했다. 오늘날도 교회와 가정, 지역사회에서 함께 드리는 기도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코로나 팬데믹, 경제적 불안, 사회적 갈등 속에서 공동체의 기도는 서로를 격려하고 하나 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합된 기도에 귀 기울이시며, 그 기도를 통해 역사하신다.
기도는 또한 우리를 변화시킨다.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아뢰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된다. 기도는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과정이다. 역대하 7장 15절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 아니라, 그 기도를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삶의 고난과 기쁨 속에서,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하는 끈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음을 일깨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신다. 그분의 눈은 우리를 향하고, 그분의 귀는 우리의 음성을 듣고자 열려 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기도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분의 때에 가장 선한 방식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종종 인생에서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큰 산"과 같은 장애물에 직면합니다. 이 장애물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우리의 소망을 흔들며, 하나님의 계획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스가랴 4장 7절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이 우리의 장애물을 평지로 만들고,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게 하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큰 산을 평지로 만들고,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확신을 가지길 소망합니다.
1. 큰 산의 정체: 우리의 장애물과 도전
스가랴 4장 7절에서 "큰 산"은 스룹바벨이 직면한 거대한 장애물을 상징합니다.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스룹바벨은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이끄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적들의 반대, 자원 부족, 백성들의 낙심 등 수많은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이 "큰 산"은 단순히 물리적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과 어려움을 나타냅니다.
-관주: 이사야 40장 4절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은 평탄해지며 험한 곳은 평지가 될 것이요."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길을 평탄케 하시고 장애물을 제거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은 스룹바벨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의 "큰 산"은 무엇입니까? 재정적 어려움, 가정 문제, 직장의 갈등, 믿음의 연약함, 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평지"로 변할 수 있습니다.
-적용: 우리는 삶에서 "큰 산"처럼 보이는 문제들에 직면할 때, 그것이 하나님보다 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는 이 산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선언합니다. 우리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의 장애물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작아질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총의 능력: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스가랴 4장 7절은 단순히 산이 사라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 앞에서 그 산을 "평지"로 만드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이 단순히 문제를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길을 열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앞서 스가랴 4장 6절에서 하나님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룹바벨의 성공은 인간의 힘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한 은총의 결과였습니다.
-관주: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바울은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강조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 장애물을 극복하는 힘도 하나님의 은총에서 나옵니다. 스룹바벨이 성전 재건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적용: 우리의 삶에서 "큰 산"을 마주할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은총으로 평지가 될 것이다." 오늘 여러분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기도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에 의지할 때, 그분의 은총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3. 머릿돌의 완성과 무리의 찬양: 하나님의 일의 완성
스가랴 4장 7절은 스룹바벨이 "머릿돌을 내놓을 때" 무리가 외치며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찬양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머릿돌"은 성전의 완성을 상징하며,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스룹바벨은 성전의 기초를 놓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 일을 완성했습니다. 무리의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일을 가능케 했음을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관주: 빌립보서 1장 6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완성하신다고 확신했습니다.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처럼,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도 그분의 일을 시작하셨고, 반드시 완성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분의 은총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삶에서 시작된 일을 완성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그분은 여러분의 길을 인도하시고,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시며, 그분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공과 승리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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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말[Conclusion]:
스가랴 4장 7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일을 이루시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우리의 "큰 산"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의 영에 의한 은총은 우리의 장애물을 평지로 만들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십니다. 스룹바벨이 성전 재건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우리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놓인 "큰 산"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분의 은총은 여러분의 길을 평탄케 하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그분의 계획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완성될 때, 우리는 스룹바벨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외칠 것입니다: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확신이 깊어지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그분의 은혜로 완성하실 것을 믿으며,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나아갑시다. 아멘.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필요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앞으로의 계획, 노후, 자녀 문제 등, 마음을 무겁게 하는 현실적인 염려들이 끝이 없습니다. 그런 염려는 때로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보다 세상의 염려에 붙잡힌 존재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우리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마태복음 6장 32절에서 주님은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필요와 문제에만 집중합니다.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오로지 현재의 염려에 묶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아신다”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전지하신 분으로서 정보를 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깊이 이해하시고, 돌보시는 분으로서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분은 아버지로서 자녀들의 형편을 정확히 알고 계시며, 그것에 따라 선하게 응답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염려 대신 신뢰를 선택하라고 초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라는 진리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실제 삶의 힘이 될 때, 우리는 염려에서 자유로워지고,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에 사로잡히는 삶은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면, 그분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아버지께서 아신다”는 이 한 문장을 마음에 새겨보십시오. 우리가 설명하지 않아도, 다 말하지 않아도, 깊은 탄식 가운데 있을 때에도, 아버지 하나님은 이미 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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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요즘 어떤 염려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습니까? 그 염려가 나를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까?
2. “하늘 아버지께서 아신다”는 말씀을 나는 실제 삶에서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3. 염려 대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기 위해 오늘 나는 어떤 결단을 할 수 있을까요?
기도합시다: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제 삶의 필요와 형편을 아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내 염려가 크지만, 주님의 사랑은 더 크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나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를 의지하며,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고백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다. 바울은 한때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삶을 얻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변화가 아니라, 은혜가 우리 삶을 어떻게 뒤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보편적 진리다.
은혜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받을 자격 없는 사랑, 조건 없는 용서, 그리고 새롭게 시작할 기회다. 바울은 은혜를 ‘넘치도록 풍성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 표현은 마치 강물이 둑을 넘어 흐르듯,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부족함을 덮고도 남음을 상기시킨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실패와 좌절, 부족함에 짓눌린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타인의 기대, 혹은 스스로 세운 높은 기준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러나 바울의 고백은 이런 우리에게 말한다. 은혜는 우리의 약점을 덮고, 우리를 새롭게 일으킨다고.
이 은혜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온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마음이다. 세상은 불확실로 가득하지만, 믿음은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준다. 사랑은 그 믿음의 열매다. 바울은 예수 안에서 발견한 사랑이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증언한다. 이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헌신과 용서, 그리고 공동체를 세우는 힘이다. 오늘날 우리는 분열과 갈등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 다른 의견, 가치관, 배경이 충돌하며 마음의 벽을 쌓는다. 하지만 예수의 사랑은 그 벽을 허물고, 우리를 하나로 묶는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은혜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어머니는 자녀의 잘못을 끝없이 용서하며 사랑으로 품는다. 친구는 우리의 실수를 비판하지 않고 다시 손을 내민다. 낯선 이의 작은 친절은 하루를 바꾼다. 이런 순간들은 모두 은혜의 반영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창한 기적뿐 아니라, 일상의 작은 사랑과 믿음 속에서도 나타난다.
이 칼럼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삶에서 은혜의 순간은 언제였는가? 누군가의 용서, 예상치 못한 도움, 혹은 스스로를 다시 일으킨 힘이었을지 모른다. 바울처럼 우리도 그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과 사랑으로 응답할 때, 우리의 삶은 넘치도록 풍성해진다. 은혜는 단지 받은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나누고, 베풀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오늘, 그 은혜를 당신의 이웃과 나누어보자. 그리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시편 118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찬양과 감사의 노래로 가득한 말씀입니다. 이 장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특히 마지막 구절인 시편 118편 29절은 이 모든 찬양의 정점을 이룹니다. 이 구절은 단순하지만 깊은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명령, 그분의 선하심, 그리고 그분의 영원한 인자하심은 우리 믿음의 삶의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구절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명령
시편 118편 29절ㅇ느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이 명령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필수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성경에서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의지와 결단의 행위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과 구원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시 118:21, “내가 주께 감사하오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사 나의 구원이 되셨음이니이다”). 감사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인정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관주: 데살로니가전서 5:18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구절은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강조합니다. 골로새서 3:17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의 모든 행동이 감사로 연결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적용: 우리의 삶에서 감사란 무엇입니까? 때로 우리는 좋은 일에만 감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고난 중에도, 심지어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도전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 우리는 불평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고 인도하신다고 믿는다면, 감사는 불평을 이기는 힘이 됩니다. 오늘 하루, 감사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 하나님께 드려보십시오. 그것이 작은 일이라도, 감사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심
시편 118편 29절은 “그는 선하시며”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분의 본성의 핵심입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 하나님은 선한 분으로 묘사됩니다(시 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은 단순히 도덕적 완전함을 넘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한 의도와 계획을 의미합니다. 시편 118장의 맥락에서, 이스라엘은 적들의 공격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며 그분의 선하심을 확증했습니다(시 118:10-13).
-관주: 창세기 50:20 - 요셉은 형제들의 악한 의도를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로마서 8:28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은 모든 상황을 선으로 바꾸시는 능력입니다.
-적용: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납니까? 때로 우리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지금 어려운 상황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선으로 바꾸실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예를 들어, 가정 내 갈등이 있다면, 그 갈등을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화해하는 기회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3.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
본문은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로 끝납니다. 여기서 ‘인자하심’(히브리어: 헤세드)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변함없는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이 영원한 인자하심은 시간과 상황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시편 118장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시 118:14-18), 이 모든 구원이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에서 비롯됨을 보여줍니다.
-관주: 예레미야 31:3 - “여호와께서 옛적에 나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시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요한일서 4:8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기에, 그분의 인자하심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은 우리의 믿음에 어떤 확신을 줍니까? 우리는 종종 우리의 죄와 실패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연약함을 초월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로 인해 여전히 마음의 짐을 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이 여러분을 용서하고 회복시키심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이 인자하심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도 인자함을 베풀도록 도전합니다. 이웃이나 동료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반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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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말[Conclusion]:
시편 118편 29절은 짧지만 강력한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명령, 그분의 선하심, 그리고 영원한 인자하심을 선포합니다. 이 세 가지 진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그분의 선하심은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주며, 그분의 영원한 인자하심은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 가정 내 갈등, 혹은 영적인 메마름 속에 있습니까? 시편 118편 29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이 진리를 붙잡고, 오늘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십시오.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그분의 영원한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글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있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들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은 분들은 지금 이 순간, 작은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그리고 그 감사로 시작된 변화가 여러분의 가정, 직장, 공동체로 퍼져나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요한계시록 2장은 예수님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당시 극심한 박해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공동체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그들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심을 선언하십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라는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공감과 동행, 그리고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표현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는 말입니다. 외적으로는 고통과 결핍으로 점철된 삶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볼 때 그들은 부요한 자들이었습니다. 이 말은 세상이 평가하는 기준과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땅에서 고난받는 성도들은 종종 자신이 무능하거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당하는 환난과 궁핍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과 인내를 귀히 여기시며, 진정한 부요함으로 인정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역설이며, 복음의 능력입니다.
또한 본문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인 공동체 일부는 로마 당국과 결탁하여 기독교인을 고발하고 박해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실체를 꿰뚫어 보시며, 그 행위를 “사탄의 회당”이라 규정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경각심을 줍니다. 외적인 종교적 형식이나 정체성이 곧 하나님의 인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며, 참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성도’라고 부르지만, 과연 주님 앞에서도 그러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외적인 조건으로 보면 초라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값진 보석과 같은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떤 책망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믿음과 인내를 인정하시며 위로하십니다. 이 장면은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깊은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너무 힘들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상황과 아픔을 정확히 알고 계시며, 우리가 주님을 붙들고 인내할 때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요함은 영원하며,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하늘의 상급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삶의 기준을 다시 세우길 원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닌,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부요함을 추구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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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환난이나 궁핍 속에 있습니까?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말씀을 주고 계십니까?
2. 나의 영적 부요함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누리고 있습니까?
3. 나는 겉모습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성도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기도합시다:
주님, 내 삶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나와 함께하심에 감사합니다. 외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이 인정하시는 영적 부요함을 누리게 하소서. 사람의 평가보다 주님의 시선을 붙들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두려움은 인간의 본성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특히 누군가의 비판이나 비방 앞에서 우리는 쉽게 흔들린다. 성경의 느헤미야 6장 13절은 이와 같은 인간의 연약함과 그 속에서 굳건히 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 말씀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던 중, 적들의 음모와 비방에 직면한 상황을 묘사한다. 그들은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여 그의 사명을 방해하려 했지만, 그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가정 내에서도 비판과 비방은 우리의 자신감을 흔들고, 때로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길에서 물러나게 한다. SNS와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는 익명의 비난이 더욱 쉽게 퍼진다. 누군가의 악의적인 말 한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두려움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느헤미야의 적들이 뇌물을 주며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도 비방은 종종 우리의 약점을 노린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 집중했고, 적들의 계략을 간파하며 단호히 맞섰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비방과 두려움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약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여 나를 강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6:9) 하나님께 힘을 구했다. 이 기도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두려움이 우리를 에워쌀 때, 하나님께 의지하며 내면의 평안을 찾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다.
현실적으로, 비방에 대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비판이 우리의 약점을 건드릴 때 더 아프게 느껴진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이야기는 비방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가치는 사람들의 말이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눈에 비친 모습에서 나온다. 비방에 맞서기 위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또한, 느헤미야는 공동체의 힘을 보여준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동료들과 함께 성벽을 쌓았고, 그들의 지지와 협력 속에서 사명을 완수했다. 우리도 주변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더 강해진다. 비방이 들릴 때, 우리를 격려하고 진실을 일깨워줄 친구나 가족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느헤미야의 이야기는 두려움과 비방을 이기는 믿음의 승리를 보여준다. 세상은 우리를 흔들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공동체의 지지 속에서 우리는 굳건히 설 수 있다. 오늘, 당신을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두려움 앞에서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며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
레위기 19장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따라야 할 실천적 명령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중 레위기 19장 3절은 부모에 대한 경외와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를 상기시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삶의 우선순위를 드러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세 가지 핵심 포인트를 살펴보고, 이를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1. 부모를 경외하라: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는 삶
레위기 19장 3절의 첫 번째 명령은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단순히 예의나 도덕적 의무를 넘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질서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에서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계명 중 하나로, 출애굽기 20:12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가정이 사회의 기초임을 보여줍니다.
-관주: 에베소서 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은 부모 공경이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잠언 23: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부모에 대한 존중은 나이 들수록 더욱 중요한 태도입니다.
-적용: 오늘날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봉양을 넘어 그들의 삶과 가르침을 존중하고, 가정 안에서 화목을 이루는 것을 포함합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용서와 화해를 추구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경건한 본을 보이는 것도 이 계명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세워질 때, 그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2. 안식일을 지키라: 하나님의 시간을 구별하라
레위기 19장 3절의 두 번째 명령은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완성과 휴식을 기념하며 주신 거룩한 날입니다(창세기 2:2-3).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은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는 표징이었으며(출애굽기 31:13),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아가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신뢰하며 시간을 구별하는 행위입니다.
-관주: 출애굽기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일곱째 날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 말씀은 안식일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시간임을 강조합니다. 이사야 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거룩한 날에 네 쾌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 안식일을 즐거움으로 지킬 때 하나님의 기쁨과 축복을 누립니다.
-적용: 현대 사회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고,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시간을 소홀히 하거나 세속적인 일로 채웁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우선순위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주일을 예배와 휴식, 말씀 묵상으로 채운다면, 우리의 영혼은 새 힘을 얻고 하나님의 평안을 경험할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의 정신을 일상으로 확장하여 매일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
레위기 19장 3절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로 마무리됩니다. 이 선언은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명령의 근거가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창조주이자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이 계명들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삶 전반을 그분의 뜻에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주: 이사야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의 삶과 구원의 유일한 근거입니다. 요한일서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곧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적용: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뜻을 구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직장, 가정,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세상의 압박과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기억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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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말[Conclusion]:
레위기 19장 3절은 단순한 두 가지 명령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과 주권을 구별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명령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는 선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그분의 계명을 지킬 때 참된 축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지,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삶 전반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순위로 삼고, 그분의 계명을 기쁨으로 지킬 때, 우리의 가정과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며, 그분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