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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2장 19-20절 칼럼n - 너희는 나의 기쁨이니라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삶은 때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깊은 의미를 드러낸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한지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누군가의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 함께 나눈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삶에 기쁨을 더한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20절 말씀은 단순히 신앙의 맥락을 넘어,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바울의 말은 사람들과의 연결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테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그들이 자신의 소망이자 기쁨,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한 믿음의 여정과 사랑의 교제가 그의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음을 나타낸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공감된다. 가족, 친구, 동료, 심지어 우연히 만난 이웃까지 - 이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때로는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주는 존재들이다.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와 경쟁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성공과 성취를 좇으며, 종종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다. 하지만 진정한 기쁨은 물질이나 명예가 아닌, 사람들과의 진실한 교감에서 온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친구와 나눈 깊은 대화, 가족과 함께한 소박한 식사,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받은 따뜻한 감사 인사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런 순간들은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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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테살로니가 교인들을 “영광이요 기쁨”이라 불렀다. 이는 그들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들과의 관계가 진실하고 사랑으로 맺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과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의 단점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성장할 때 우리는 삶의 참된 가치를 발견한다.

이 말씀은 또한 미래에 대한 소망을 준다.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을 언급하며, 그때 테살로니가 교인들이 자신의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 맺는 관계가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에게 베푼 사랑과 친절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빛날 것이다.

결국, 이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 삶의 소망과 기쁨은 무엇인가? 바울처럼 우리도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그들이 우리의 기쁨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면류관이자 영광이다. 그러니 오늘, 소중한 이들에게 한 번 더 연락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며,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 그들이 바로 우리의 기쁨이니라.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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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장 9절 강해 - 환난 속의 부요함

제목: 환난 속의 부요함
본문: 요한계시록 2장 9절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계시록 2:9은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보내신 편지로, 이 말씀은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이 구절은 환난과 궁핍을 겪고 있는 서머나 교회에 대해, 그들의 실질적인 가난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함을 강조하며, 거짓된 자들의 비방을 지적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핵심 포인트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성경의 다른 구절과 연결하며,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환난과 궁핍 속의 신앙

계시록 2장 9절에서 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서머나 교회는 물질적으로 가난했고, 로마 제국의 박해와 사회적 압박 속에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상황을 정확히 아시고 위로하십니다.

-관주: 야고보서 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이 구절은 고난이 믿음을 연단하여 인내와 성숙을 가져온다고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라." 예수님은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하늘의 상급을 약속하십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 사회적, 또는 영적인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아시고, 그 속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2. 실상은 부요한 자

서머나 교회는 세상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부요한 자"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그들의 영적 부요함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의 확신, 성령의 내주,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소망으로 인해 참된 부자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관주: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가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에게 영적 부요함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적용: 세상은 부요함을 물질로 측정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그리스도 안의 소망을 통해 부요함을 정의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난하거나 부족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영적 유산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부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영원한 생명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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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탄의 회당과 거짓된 비방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서머나 교회를 비판하고 박해하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했습니다.

-관주: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이루고자 하느니라." 예수님은 거짓된 자들이 사탄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디모데후서 3:12-13: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고 속임을 받으리라." 신앙 생활에는 반대와 비방이 따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적용: 오늘날도 우리는 믿음 때문에 비판이나 비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을 비웃거나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비방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굳건히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시며, 거짓된 자들의 비방을 이기게 하십니다.

맺는말[Conclusion]:

계시록 2장 9절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서머나 교회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환난과 궁핍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아시고 위로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가난하다고 평가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부요한 자들입니다. 또한, 거짓된 비방과 박해 앞에서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과 위로를 동시에 줍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영적 부요함을 소중히 여기고, 세상의 비방에 맞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환난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며, 영적 부요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전진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아시고, 우리의 믿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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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5절 묵상 -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장 5절은 인류의 타락 이야기를 다루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속삭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유혹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이 본문을 통해 인간의 욕망, 하나님의 뜻, 그리고 순종의 중요성을 묵상해 봅니다.

첫째, 뱀의 말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자극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을 차지하려는 교만한 열망을 드러냅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려는 죄의 씨앗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성공, 지식, 권력, 혹은 자율성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유혹에 직면합니다. 세상의 달콤한 유혹이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 뱀의 유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창 2:17). 그러나 뱀은 하나님의 명령을 의심하게 만들고, 그분의 의도를 악의적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지혜를 얻는 것을 질투하신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왜곡하는 거짓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우리의 욕망에 맞게 재해석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고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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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이 본문은 순종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열매를 먹었으며, 아담도 이를 따랐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창 3:16-1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예고된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이기시고(마 4:1-11), 십자가에서 죄를 대속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불순종의 결과로부터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본문은 우리에게 겸손과 믿음의 삶을 촉구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은 교만의 뿌리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됩니다(잠 9:10).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너희 눈이 밝아질 것”이라며 유혹하지만, 진정한 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요 8:12). 그분을 따르는 자만이 참된 생명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5절은 유혹의 위험성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뱀의 속삭임처럼 포장된 거짓에 속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분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며 순종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참된 지혜와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삶에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를 어떻게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2.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내 욕망에 맞게 해석한 적이 있나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요?
3. 예수님의 순종과 구속 사역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이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까요?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과 교만한 욕망을 아시고도 끝없는 은혜로 우리를 품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유혹과 거짓 속삭임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겸손과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시고, 주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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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장 31절 칼럼n - 날마다 죽는 삶, 새롭게 사는 희망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바울 사도의 이 말은 얼핏 어둡고 무거운 고백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단순한 절망이나 체념이 아니라, 신앙의 여정 속에서 매일 자신을 내려놓고 새롭게 태어나는 삶의 본질을 드러낸다. 오늘날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서,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강조한다. 그는 매일 죽는다고 말하며, 자신의 욕망, 두려움,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도 일상에서 이런 “죽음”을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시간을 희생할 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 혹은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 우리는 작은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그 죽음은 곧 새 생명으로 이어진다.

현대인은 끊임없는 경쟁과 성공의 압박 속에 산다. 우리는 더 나은 직업, 더 큰 집, 더 많은 인정받음을 향해 달린다. 하지만 이런 추구는 종종 우리를 지치게 하고, 진정한 행복을 놓치게 한다. 바울의 “날마다 죽노라”는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느냐?” 진정한 삶은 세상이 요구하는 성공이 아니라, 매일 자신을 내려놓고 사랑과 믿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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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한 어머니는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둔다. 이는 자신의 일부를 “죽이는”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희생은 아이의 웃음과 성장이라는 새 생명으로 돌아온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분노를 억누르고 화해를 선택하는 것도 작은 죽음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관계의 회복과 내면의 평화로 이어진다. 이처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문이다.

바울의 말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희망을 강조한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라는 전제를 붙이며, 이 죽음이 단순한 자기 부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혁임을 보여준다. 우리도 신앙, 사랑, 혹은 더 큰 선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때, 그 빈자리를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종교적 신념을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다. 자신을 비우고 타인을 위해 살 때, 우리는 더 깊은 기쁨과 의미를 발견한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불필요한 자존심, 과거의 상처, 혹은 편안함에 대한 집착일 수 있다. 그것을 내려놓는 순간, 당신은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얻는다. 바울의 고백은 우리에게 도전한다. 매일 죽는 삶을 통해, 우리는 매일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끝에는 희망과 부활이 기다린다.

이 칼럼은 바울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내면의 투쟁과 성장의 여정을 조명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가져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삶은 “내려놓아라”는 초대에 응하는 데 있다. 날마다 죽는 삶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더 깊은 사랑, 더 큰 평화, 그리고 더 참된 자신을 만난다. 당신도 오늘, 작은 죽음을 선택하며 새롭게 살아갈 용기를 내보지 않겠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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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2절 강해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제목: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본문: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권세가 부여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세 가지 요점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의 의미를 탐구하고, 성경의 다른 구절과 연결하여 그 적용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 설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할 것입니다.

1. 영접: 예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임

첫 번째 요점은 "영접"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과 삶 속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영접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전적인 신뢰와 헌신을 포함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 아래 우리의 삶을 내어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주: 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에게 영접의 기회를 주심을 보여줍니다. 문을 여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며, 이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적용: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분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이 권세를 누릴 수 없습니다. 오늘, 아직 예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그분을 영접하는 결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2. 믿음: 그 이름을 신뢰함

두 번째 요점은 "그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신성과 권위, 그리고 구원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본질과 권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를 가지며, 그분을 믿는 자들은 이 구원의 확신을 받습니다.

-관주: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님의 이름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의 노력이나 선행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세상의 부나 명예, 혹은 우리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는 그분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며, 예수님의 이름에 더욱 깊이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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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권세: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

세 번째 요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이 권세는 단순한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과 그에 따른 삶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생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관주: 로마서 8장 15-16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느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며, 성령의 증거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신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적용: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죄와 두려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녀들입니다. 이 정체성은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킵니다. 오늘 이 권세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히 살아가며,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맺는말[Conclusion]:

요한복음 1장 12절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를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그분의 이름에 믿음을 두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정체성과 권세를 받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은 분이라면, 지금 이 순간 그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리십시오. 이미 그분을 믿는 자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힘입어 세상 속에서 그분의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며, 이 세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이 권세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굳게 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갑시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결단합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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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6장 6절 묵상 -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에스겔 16장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한 여인의 비유로 묘사하시며, 그들의 죄와 은혜의 여정을 생생히 드러내시는 장면입니다. 그중 6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는 하나님의 긍휼과 생명을 주시는 은혜를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묵상하게 합니다.

1. 피투성이의 절망 속에서

본문에서 예루살렘은 갓 태어난 아기로 비유됩니다. 그런데 이 아기는 버려진 상태,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 아무런 소망도 없이 고통받는 처지를 상징합니다. 피투성이란 단어는 단순한 육체적 상태를 넘어, 죄와 절망, 죽음의 그림자를 나타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와 죄악에 빠져 있었고, 영적으로 죽음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죄의 무게, 세상의 고난, 내면의 상처로 인해 우리는 때로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연약한 존재가 됩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힘도, 희망을 붙잡을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절망의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지점임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의 긍휼하신 시선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를 강조합니다. 버려진 아기를 구원한 것은 아기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곁을 지나가시며 보신 긍휼의 시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비참한 상태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을 아시고,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피투성이 상태, 죄와 연약함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당신의 아들의 희생으로 우리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자격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오직 그분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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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명을 주시는 말씀

하나님은 단지 아기를 보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생명을 선포하십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는 명령은 단순한 소원이 아니라,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의 상황에서도 생명을 창조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의 삶이 고난과 죄로 인해 무너져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시편 119편 50절은 “이는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심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정결케 하고, 소망을 주며, 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붙잡고, 피투성이라도 살아날 수 있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4. 은혜로 살아가는 삶

하나님의 은혜는 단지 구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에스겔 16장은 이후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손으로 양육되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할 뿐 아니라,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변화시키고 거룩한 삶으로 이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이 은혜를 잊고 죄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우리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충성된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생명을 주시는 은혜를 선포합니다. 우리는 죄와 연약함으로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긍휼하신 시선과 말씀을 통해 새 생명을 얻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과거를 덮고, 현재를 붙들며, 미래를 소망으로 채웁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피투성이 상태를 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은혜로 살아가는 삶을 결단하자.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우리는 소망과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피투성이” 상태는 무엇인가요?
 - 현재 내 삶에서 죄, 연약함, 또는 고난으로 인해 절망하거나 소망을 잃은 부분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 상황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할 수 있나요?

2. 하나님의 긍휼하신 시선을 어떻게 경험했나요?
 - 과거 또는 현재,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거나 위로받은 순간은 언제였는지 떠올려보고, 그 은혜에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3. “살아 있으라”는 말씀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요?
 -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생명을 얻은 나는 오늘 어떤 구체적인 행동이나 결단으로 그 은혜에 응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저의 피투성이 상태를 아시고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살아 있으라” 말씀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연약함과 죄를 덮으시고 새 생명을 주신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 주님의 말씀을 따라 소망으로 나아가며, 주님께 충성된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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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5절 칼럼n - 회개의 기회: 마음을 바꾸는 용기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때로는 잘못된 길을 걸었음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그 길을 고수할 때가 있다. 성경 로마서 2장 5절은 이렇게 말한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이 말씀은 우리의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태도가 결국 스스로에게 무거운 짐을 쌓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본문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바로 회개의 기회다.

회개란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바꾸고, 방향을 돌이켜 새로운 길을 걷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실수를 숨기거나 변명으로 덮으려 한다. SNS에 완벽한 삶만을 전시하고, 실패는 감춰야 할 치부로 여긴다. 하지만 로마서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할 기회를 붙잡으라고 촉구한다.

예를 들어, 한 직장인은 동료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미룬다. 시간이 지나며 그 갈등은 더 깊은 오해로 커지고, 결국 팀 전체의 분위기를 망친다. 이처럼 고집은 우리를 더 큰 후회로 이끌 수 있다. 반면, 용기를 내어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는 예상치 못한 화해와 평화를 가져온다. 회개는 이렇게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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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은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며, 우리의 선택이 영원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 심판은 두려움만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돕는 경고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공평하며, 그분은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신다. 이는 마치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며 인내하는 모습과 같다.

오늘날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잃기 쉽다. 하지만 로마서 2장 5절은 잠시 멈춰 서서 내 마음의 고집을 점검하라고 말한다. 내가 놓치고 있는 사과, 용서, 혹은 변화의 기회는 무엇인가? 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두렵더라도, 회개는 결코 늦지 않았다. 한 사람의 변화는 가족, 친구, 나아가 세상에까지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회개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고집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다. 지금, 마음을 바꾸는 용기를 내보자. 그 길 끝에는 참된 자유와 평안이 기다리고 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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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 5절 강해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몸

 

제목: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몸

본문: 로마서 12장 5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장 5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의 연합과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는 강력한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는 말씀은 교회가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서로 연결된 유기적인 몸임을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세 가지 주요 포인트로 나누어 살펴보고, 성경의 다른 구절과 연계하여 그 의미를 탐구하며,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

로마서 12장 5절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의 연합이 단순한 인간적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영적 연합임을 강조합니다. 이 연합은 우리의 신앙의 기초이며, 교회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며, 성도들이 각기 다른 역할을 하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움직인다고 설명합니다.

-관주: 고린도전서 12:12-1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다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었느니라.” 이 구절은 모든 성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에베소서 4:4-6: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니…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이는 교회의 연합이 신앙의 일치와 하나님의 단일성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적용: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배경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예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은 우리의 차이를 초월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봉사할 때, 우리의 역할이 다르더라도 같은 목표—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서로를 비판하거나 비교하기보다는,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 소중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2. 서로 지체로서의 상호 의존성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는 표현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가야 함을 나타냅니다. 바울은 각 지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유기적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가 사랑과 협력으로 기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관주: 고린도전서 12:21: “눈이 손에게 이르기를 내가 너를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 하거나….” 이 구절은 각 지체가 서로에게 필수적이며, 어느 하나가 없어도 몸이 온전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빌립보서 2:3-4: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각 사람이 자기 일을 돌아볼 뿐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야 하리라.” 이는 성도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섬기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가르칩니다.

-적용: 교회 안에서 우리는 때로 자신의 역할만을 강조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여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에게 겸손과 섬김의 자세를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예배팀은 설교자에게, 청소팀은 어린이 사역자에게 의존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약점을 채워주고 강점을 북돋우며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오늘, 교회에서 누군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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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사명

로마서 12장 5절은 교회가 단순히 모여서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암시합니다. 각 지체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공유합니다. 이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관주: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함을 보여줍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가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적용: 교회는 세상과 분리된 섬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정직과 성실로 하나님을 드러내거나,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며 복음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에서 한 가지 선한 일을 계획하고 실천해 봅시다.

맺는말[Conclusion]:

로마서 12장 5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교회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서로 지체로서 의존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교회 안에서의 화합과 섬김, 그리고 세상 속에서의 선한 영향력을 촉구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교회에서 얼마나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우리의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겸손으로 서로를 섬기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실천이 모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충실히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단을 축복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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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