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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장 31절 칼럼n - 날마다 죽는 삶, 새롭게 사는 희망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바울 사도의 이 말은 얼핏 어둡고 무거운 고백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단순한 절망이나 체념이 아니라, 신앙의 여정 속에서 매일 자신을 내려놓고 새롭게 태어나는 삶의 본질을 드러낸다. 오늘날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서,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강조한다. 그는 매일 죽는다고 말하며, 자신의 욕망, 두려움,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도 일상에서 이런 “죽음”을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시간을 희생할 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 혹은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 우리는 작은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그 죽음은 곧 새 생명으로 이어진다.

현대인은 끊임없는 경쟁과 성공의 압박 속에 산다. 우리는 더 나은 직업, 더 큰 집, 더 많은 인정받음을 향해 달린다. 하지만 이런 추구는 종종 우리를 지치게 하고, 진정한 행복을 놓치게 한다. 바울의 “날마다 죽노라”는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느냐?” 진정한 삶은 세상이 요구하는 성공이 아니라, 매일 자신을 내려놓고 사랑과 믿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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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한 어머니는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둔다. 이는 자신의 일부를 “죽이는”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희생은 아이의 웃음과 성장이라는 새 생명으로 돌아온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분노를 억누르고 화해를 선택하는 것도 작은 죽음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관계의 회복과 내면의 평화로 이어진다. 이처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문이다.

바울의 말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희망을 강조한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라는 전제를 붙이며, 이 죽음이 단순한 자기 부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혁임을 보여준다. 우리도 신앙, 사랑, 혹은 더 큰 선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때, 그 빈자리를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종교적 신념을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다. 자신을 비우고 타인을 위해 살 때, 우리는 더 깊은 기쁨과 의미를 발견한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불필요한 자존심, 과거의 상처, 혹은 편안함에 대한 집착일 수 있다. 그것을 내려놓는 순간, 당신은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얻는다. 바울의 고백은 우리에게 도전한다. 매일 죽는 삶을 통해, 우리는 매일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끝에는 희망과 부활이 기다린다.

이 칼럼은 바울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내면의 투쟁과 성장의 여정을 조명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가져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삶은 “내려놓아라”는 초대에 응하는 데 있다. 날마다 죽는 삶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더 깊은 사랑, 더 큰 평화, 그리고 더 참된 자신을 만난다. 당신도 오늘, 작은 죽음을 선택하며 새롭게 살아갈 용기를 내보지 않겠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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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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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2절 강해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제목: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본문: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권세가 부여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세 가지 요점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의 의미를 탐구하고, 성경의 다른 구절과 연결하여 그 적용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 설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할 것입니다.

1. 영접: 예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임

첫 번째 요점은 "영접"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과 삶 속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영접은 단순한 지적 동의나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전적인 신뢰와 헌신을 포함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 아래 우리의 삶을 내어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주: 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에게 영접의 기회를 주심을 보여줍니다. 문을 여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며, 이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적용: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분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이 권세를 누릴 수 없습니다. 오늘, 아직 예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그분을 영접하는 결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2. 믿음: 그 이름을 신뢰함

두 번째 요점은 "그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신성과 권위, 그리고 구원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본질과 권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를 가지며, 그분을 믿는 자들은 이 구원의 확신을 받습니다.

-관주: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님의 이름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의 노력이나 선행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세상의 부나 명예, 혹은 우리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는 그분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며, 예수님의 이름에 더욱 깊이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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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권세: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

세 번째 요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이 권세는 단순한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과 그에 따른 삶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생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관주: 로마서 8장 15-16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느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며, 성령의 증거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신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적용: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죄와 두려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녀들입니다. 이 정체성은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킵니다. 오늘 이 권세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히 살아가며,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맺는말[Conclusion]:

요한복음 1장 12절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를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그분의 이름에 믿음을 두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정체성과 권세를 받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은 분이라면, 지금 이 순간 그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리십시오. 이미 그분을 믿는 자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힘입어 세상 속에서 그분의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며, 이 세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이 권세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굳게 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갑시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결단합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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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6장 6절 묵상 -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에스겔 16장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한 여인의 비유로 묘사하시며, 그들의 죄와 은혜의 여정을 생생히 드러내시는 장면입니다. 그중 6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는 하나님의 긍휼과 생명을 주시는 은혜를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묵상하게 합니다.

1. 피투성이의 절망 속에서

본문에서 예루살렘은 갓 태어난 아기로 비유됩니다. 그런데 이 아기는 버려진 상태,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 아무런 소망도 없이 고통받는 처지를 상징합니다. 피투성이란 단어는 단순한 육체적 상태를 넘어, 죄와 절망, 죽음의 그림자를 나타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와 죄악에 빠져 있었고, 영적으로 죽음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죄의 무게, 세상의 고난, 내면의 상처로 인해 우리는 때로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연약한 존재가 됩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힘도, 희망을 붙잡을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절망의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지점임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의 긍휼하신 시선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를 강조합니다. 버려진 아기를 구원한 것은 아기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곁을 지나가시며 보신 긍휼의 시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비참한 상태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을 아시고,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피투성이 상태, 죄와 연약함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당신의 아들의 희생으로 우리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자격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오직 그분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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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명을 주시는 말씀

하나님은 단지 아기를 보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생명을 선포하십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는 명령은 단순한 소원이 아니라,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의 상황에서도 생명을 창조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의 삶이 고난과 죄로 인해 무너져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시편 119편 50절은 “이는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심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정결케 하고, 소망을 주며, 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붙잡고, 피투성이라도 살아날 수 있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4. 은혜로 살아가는 삶

하나님의 은혜는 단지 구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에스겔 16장은 이후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손으로 양육되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할 뿐 아니라,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변화시키고 거룩한 삶으로 이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이 은혜를 잊고 죄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우리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충성된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생명을 주시는 은혜를 선포합니다. 우리는 죄와 연약함으로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긍휼하신 시선과 말씀을 통해 새 생명을 얻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과거를 덮고, 현재를 붙들며, 미래를 소망으로 채웁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피투성이 상태를 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은혜로 살아가는 삶을 결단하자.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우리는 소망과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피투성이” 상태는 무엇인가요?
 - 현재 내 삶에서 죄, 연약함, 또는 고난으로 인해 절망하거나 소망을 잃은 부분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 상황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할 수 있나요?

2. 하나님의 긍휼하신 시선을 어떻게 경험했나요?
 - 과거 또는 현재,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거나 위로받은 순간은 언제였는지 떠올려보고, 그 은혜에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3. “살아 있으라”는 말씀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요?
 -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생명을 얻은 나는 오늘 어떤 구체적인 행동이나 결단으로 그 은혜에 응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저의 피투성이 상태를 아시고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살아 있으라” 말씀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연약함과 죄를 덮으시고 새 생명을 주신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 주님의 말씀을 따라 소망으로 나아가며, 주님께 충성된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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