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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에세이2025. 3. 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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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미가 6장 8절 에세이

제목: 계엄과 국가 지도자의 권한: 성경적 관점에서 본 고찰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엄이 선포된 후,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이 제기된다면 이는 국가 운영 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시사할 수 있다. 본 에세이에서는 계엄의 법적 정당성과 지도자의 권한이 성경적 원리에 부합하는지 고찰하고, 성경적 지도자의 역할과 책임을 조명하여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논하고자 한다.

1. 계엄과 국가 지도자의 권한

대한민국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국가의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경우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이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고유 권한이며,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러나 계엄이 국가의 안정을 위한 조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이는 권력의 균형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국가 지도자는 특정 상황에서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며, 이러한 결정을 정치적 이유로 탄핵하는 것은 헌법적 질서를 흔들 수 있다.

2. 성경적 관점에서 본 국가 지도자의 권한

성경은 국가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들이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받았음을 강조한다. 로마서 13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이 말씀에 따르면, 국가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로 통치하며, 국민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 특히 지도자가 국가의 안정을 위해 계엄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이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도 국가 지도자의 역할이 강조된다. 신명기 17장 14-20절에서는 왕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의로운 통치를 해야 하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또한, 다윗과 솔로몬과 같은 성경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렸으며, 때로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3. 계엄과 성경적 지도자의 책임

성경적 지도자는 국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행해야 한다. 잠언 29장 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이 말씀은 지도자가 국민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국가의 위기가 닥쳤을 때, 지도자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계엄은 국가가 심각한 위험에 처했을 때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므로, 이를 적절하게 시행하는 것은 지도자의 책임이다.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요구하시는 핵심 가치는 ‘공의’와 ‘질서’이다. 미가 6장 8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을 적용하면, 지도자는 국가의 위기에서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계엄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지도자는 이를 책임감 있게 시행해야 하며, 국민과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계엄과 탄핵: 정당한가?

만일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계엄을 선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탄핵된다면, 이는 법적·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성경에서도 정당한 권위를 불법적으로 전복하는 것은 죄악으로 간주된다.

사무엘상 24장에서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해치는 것을 거부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함부로 제거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성경적 원리를 보여준다.

물론, 지도자가 부패하거나 불의한 통치를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신다. 그러나 계엄이 법적으로 정당하게 이루어졌다면, 이는 탄핵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적 원리에 따르면, 국민과 지도자는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국가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맺는말[Conclusion]:

계엄은 대통령이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행사할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이다. 성경은 국가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며, 그들이 하나님께서 부여한 권세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일 정당한 절차에 따라 시행된 계엄이 정치적 이유로 인해 지도자를 탄핵하는 근거가 된다면, 이는 국가의 질서를 위태롭게 하고 법적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

따라서 성경적 원리와 헌법적 질서를 고려할 때,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이며, 이는 성경적 정의와 공의의 원칙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모든 국가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공의롭게 통치해야 하며, 국민 또한 법적 질서를 존중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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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에세이2025. 2. 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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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히브리서 11장 1절 에세이

 

제목: 믿음의 본질과 현대적 적용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이 구절은 성경에서 믿음에 대해 가장 명확하고 심오하게 설명하는 구절 중 하나로, 많은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 전체는 신앙의 역사적 인물들이 어떻게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 믿음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까요? 본 글에서는 히브리서 11:1의 의미를 깊이 살펴보고, 그것이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자 합니다.

믿음의 본질: 바라는 것들의 실상

히브리서 11:1에서 언급하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은 믿음이 단순히 바라는 소망을 넘어서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실상’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hupostasis" (후포스타시스)로, 직역하면 ‘기초’ 또는 ‘근본’을 뜻합니다. 이는 믿음이 단순히 상상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바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확실하게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된다는 뜻입니다. 즉,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고한 실체를 확신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물질적인 것들이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진리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과는 다릅니다. 믿음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확신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우리가 물리적으로 볼 수 없고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실체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본질: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히브리서 11:1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표현입니다. ‘증거’라는 단어 역시 헬라어로 "elegchos" (엘렝코스)로, 이는 법적 용어로 ‘확실한 증거’, 즉 법정에서 진실을 입증하는 역할을 하는 증거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믿음이 단순한 추측이나 불확실한 기대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를 확신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단순히 내면적인 확신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그 증거가 드러나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신앙의 증거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는 행동을 통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웃에게 사랑과 배려를 실천하는 삶을 통해 믿음의 증거가 드러납니다. 이러한 삶의 증거는 단지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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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실제적 적용: 신뢰와 희망의 삶

현대 사회에서 믿음의 실제적 적용은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나 섭리보다도 눈에 보이는 현실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1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이 단순히 현재의 상황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첫 번째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나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어려운 상황이나 가정 내 갈등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어떻게 이끄실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믿음은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신앙인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단지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안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며, 그 희망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니다. 이는 단순히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신앙적인 태도입니다.

믿음의 실천: 현대적 관점에서의 도전과 응답

현대 사회에서 신앙의 실천은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큰 도전을 안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휘둘리며, 믿음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믿음과 충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여전히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주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하는 중요한 도전 과제를 던져 줍니다.

우리가 믿음을 실천하는 첫 번째 방법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신뢰를 두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묻고 따르는 삶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믿음은 공동체 안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신앙 생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공동체적인 삶이 중요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히브리서 11:1은 믿음의 본질을 명확하게 정의해 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이 구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믿고 살아가는 삶의 기초가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 믿음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이 믿음이 주는 힘을 통해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믿음을 고백하고, 그 믿음을 통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자 응답인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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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에세이2025. 1. 3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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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베드로전서 2장 9절 에세이

 

제목: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부르심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구절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이 구절은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신분을 깨닫게 하고, 그들의 삶의 목적과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본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개역개정)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백성이라는 사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에세이에서는 1)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의미, 2) 성도로서의 정체성, 3)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 4) 오늘날의 적용 등을 중심으로 이 구절을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의미

먼저,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말하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리고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표현들은 구약 성경에서 사용된 신앙의 언어입니다. 이 표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들의 특권과 책임을 강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택하신 족속: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던 것처럼,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백성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가운데서 불러내어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 왕 같은 제사장: 구약에서는 제사장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을 통해 성도들은 더 이상 다른 중재자가 필요 없으며,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그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맡고 있습니다.

- 거룩한 나라: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거룩'은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의미하며,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 소유가 된 백성: 성도들은 하나님의 소유로 불려졌습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삶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실 것임을 뜻합니다.

이처럼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성도들이 갖는 특권과 함께 그들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해 줍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시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며, 그들의 삶을 통해 그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2. 성도로서의 정체성

베드로전서 2:9의 핵심은 바로 성도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더 이상 세상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며, 또한 이 선택은 그들에게 명확한 정체성을 부여합니다. 

이 정체성은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이는 단순히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그들의 모든 삶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내포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세상에서 선택하여 그들의 삶을 통해 그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 세상과 구별된 삶: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요구합니다. 이는 단순히 외적 행동에서 구별되는 것을 넘어, 내면적인 변화와 하나님을 향한 깊은 헌신을 포함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삶: 성도들은 이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였듯이,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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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구절은 성도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자신만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덕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 주요한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말씀을 통한 선포: 성도들은 말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사실을 매일의 삶 속에서 고백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덕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 행동을 통한 선포: 성도들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의 삶을 보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는 방법입니다. 성도들은 구별된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4. 오늘날의 적용

오늘날 성도들이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하며, 그 자체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둘째, 성도들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사명에 대해 깊은 자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구원하시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세상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도록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셋째,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우리는 지속적으로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구원의 기쁨을 세상과 나누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결론[Conclusion]: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성도들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으로서,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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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에세이2025. 1. 1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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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Essay]
제목: 아버지의 뜻(Father Will) -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우리는 흔히 “아버지의 뜻”이라는 표현을 듣는다. 그러나 이 문구는 삶 속에서 너무 자주 쓰이다 보니 그 본질적 의미를 잊곤 한다. 오늘날 우리는 ‘뜻’이라는 단어를 듣고도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아버지의 뜻을 자신의 의지와 동일시하며 왜곡할 때도 있다. 과연 성경이 말하는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예수님은 명확히 선언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단순히 종교적 행위나 외적인 고백으로는 부족하다는 경고다. 하늘 아버지의 뜻은 단지 입술의 찬송이 아닌, 실제적인 순종과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믿음을 단순한 명목상의 표현에서 벗어나 삶 속에서 살아내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50절에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예수님의 가족으로 묘사하신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넘어, 예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특별한 관계를 약속받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약속은 책임을 동반한다. 가족은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관계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형제자매로서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아버지의 뜻은 단순히 개인적인 경건을 넘어, 공동체 안에서 실천되는 사랑과 나눔의 삶이다.

또한 마태복음 18장 14절에서 예수님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모든 영혼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현대 사회는 경쟁과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약자를 쉽게 잊어버린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은 이와 반대다.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돌아보며 그들을 잃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순종이다. 우리는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 잊힌 이웃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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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뜻은 때로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누가복음 22장 42절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아버지께 간구하신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이 아님을 배운다. 그것은 때로 우리의 의지와 충돌하고, 고통과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우리의 삶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나의 계획과 충돌할 때가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요한복음 6장 40절에서는 아버지의 뜻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아버지의 뜻은 단순히 이 세상의 복지나 안락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초대다. 우리는 이 초대를 받은 자로서, 이 소식을 세상에 전할 책임이 있다. 아버지의 뜻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미치기 위해 우리를 통로로 사용하시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뜻은 종종 개인적인 야망이나 욕망에 가려지기 쉽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1장 4절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다고 증언한다. 이는 아버지의 뜻이 단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랑임을 보여준다. 우리도 이 사랑에 응답하며 살아가야 한다.

결국 아버지의 뜻은 하나의 행위나 단일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우리는 그 뜻을 따르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야 한다. 성경과 기도를 통해, 그리고 공동체와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은 쉬운 길은 아닐지라도, 가장 풍성하고 의미 있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ps: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진주 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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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에세이2024. 12. 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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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에세이] 제목: 자유의 율법: 야고보서 2:12을 중심으로 한 현대적 성찰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야고보서 2:12)

이 구절은 성경적 신앙을 삶의 실천으로 연결시키는 데 있어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서 “자유의 율법”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야고보서 2:12의 의미를 탐구하며 이를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자유의 율법이란 무엇인가?

 

“자유의 율법”이라는 표현은 언뜻 보기에는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율법은 규율과 제한을 의미하는 반면, 자유는 그 제한에서 벗어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자유는 단순히 모든 구속에서 해방된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 안에서 우리의 본래 목적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즉, 자유의 율법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랑으로 행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율법은 사람을 억압하는 규율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진정한 자유로 인도하는 원칙입니다.

야고보는 이 자유의 율법을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의 기준으로 제시합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 전반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라는 요청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유의 율법 - 오늘날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식의 자유가 이상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는 종종 다른 사람의 권리와 충돌하며 갈등을 야기합니다. 자유의 율법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요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자유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윤리적 딜레마를 생각해 봅시다. 효율성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현대의 기업 문화 속에서, 동료나 고객을 배려하는 선택은 때로는 약점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의 율법은 우리에게 물질적 이익을 넘어서는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선택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반영하는지 고민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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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의 일치 - 야고보서 2:12은 또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현대 사회는 소셜 미디어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에게 쉽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말이 실제 삶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환경 보호를 외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일상에서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면, 그 말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자유의 율법은 우리의 말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우리가 속한 가정, 직장, 교회,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신뢰와 변화를 만들어 내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심판을 염두에 둔 삶 - 야고보는 우리가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들처럼 말하고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에서 심판은 단순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산다는 것은 단순히 형벌을 피하기 위해 두려움에 떠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우리의 삶을 정렬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사는 삶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결과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의 율법은 과정 자체를 중요시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이 사랑과 정의를 반영하는가? 우리의 선택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의 율법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야고보서 2:12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도전과 영감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자유의 율법은 억압적인 규율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도록 이끄는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우리는 이 율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단순히 개인적인 자유를 넘어, 다른 이들과 함께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분주함과 혼란 속에서도, 자유의 율법은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이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이 율법에 부합하는지 깊이 성찰하며 살아갑시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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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에세이2024. 9. 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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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에세이]

제목: 마태복음 7장 14절 - 좁은 길의 선택 - 진정한 삶의 길을 찾다

인생의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때로는 넓고 평탄해 보이는 길이 유혹적입니다. 그 길은 편안하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며 당장 눈앞의 어려움이 없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14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전혀 다른 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이 구절은 좁은 길의 중요성과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좁은 길이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을 주는 길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좁은 길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선택으로 나타납니다. 이 길은 외롭고 힘들며 때로는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넓은 길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쉽고 즉각적인 만족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좁은 길은 영혼을 살찌우고,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 좁은 길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흔히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을 좇아가며 바쁘게 살아갑니다. 좋은 직장, 많은 돈, 높은 지위가 인생의 목표가 됩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종종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갑니다. 넓은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넓은 길은 외부의 인정과 찬사를 얻기 쉽지만, 그 끝에는 허무함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진정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우리는 결국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반면에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현대 사회에서 좁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타인의 기대보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영적인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 성공보다는 관계의 깊이, 외적인 성과보다는 내적인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좁은 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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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은 자기 희생과 섬김의 길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자기 계발과 개인의 성취를 강조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와 대조적으로 타인을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제시합니다. 좁은 길을 걷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겸손하게 타인을 위하고,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헌신합니다. 이 길은 때로는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깊은 만족과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또한, 좁은 길은 정직과 도덕적 용기를 요구합니다. 현대 사회는 종종 타협을 요구합니다. 이익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때로는 편리함을 위해서 우리는 쉽게 진리를 외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좁은 길을 걷는 사람은 진리를 붙들고, 도덕적 기준을 지킵니다. 이러한 선택은 때로는 외롭고, 많은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길의 끝에는 진정한 자유와 평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것은 곧 주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넓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가지만, 좁은 길을 걷는 사람은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이러한 삶은 때로는 불확실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며 주의 뜻을 따를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더 큰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좁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생명은 바로 그 길에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기대에 맞추기보다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을 찾는 길입니다. 좁은 길은 어려운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바로 우리를 진정한 삶으로 인도하는 문이 됩니다.

결국,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쉽게 갈 수 있는 넓은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주님께서 가르치신 좁은 길을 선택할 것인지 말입니다.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그 길을 피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길을 선택할 때 우리는 진정한 생명을 얻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각자가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좁은 길을 선택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용기가 있습니까? 그 길이 비록 협착하고 찾는 이가 적지만, 그 끝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길을 선택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얻는 기쁨과 평안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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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에세이2024. 8. 2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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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에세이] 제목: 회개의 의미와 오늘의 삶

마태복음 3장 2절에서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칩니다. 이 짧고 강력한 메시지는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의미를 던집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종교적인 선언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중요한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회개란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우선, 회개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회개란 단순히 죄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로 '회개하다'라는 단어는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로, 이는 '생각을 바꾸다' 또는 '마음을 돌리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회개는 단순히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는 일종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3장 2절에서 세례 요한이 회개를 외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억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의미를 잃고, 신앙 역시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것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영적인 무감각함을 깨우고, 사람들에게 진정한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진정한 신앙을 회복하라는 의미에서 회개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오늘날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면, 세례 요한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고, 종종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회개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편의와 욕심을 위해 타인을 무시하거나, 윤리적인 기준을 저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방식은 결국 우리를 공허하게 만들고, 인간 관계를 파괴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회개는 이러한 잘못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첫걸음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때로는 고통스럽고,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우리가 진정으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회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화해와 용서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의 외침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단순히 죽음 이후에 우리가 가는 장소로 생각될 수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 즉 하나님이 우리의 삶과 마음을 주관하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천국의 도래를 기다리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회개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바로잡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 이루어집니다. 사랑, 정의, 자비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의 일부분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회개는 단지 과거의 죄를 씻어내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길입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과 변화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맞추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 3장 2절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단순한 종교적 구호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요청이며, 오늘날 우리의 신앙 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 나가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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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에세이2024. 6. 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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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 에세이] 제목: 다시 찾은 길 - 신명기 30장 11절의 현대적 의미

신명기 30장 11절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삶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따라잡으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종종 본질적인 것들을 잊고 살게 됩니다. 신명기 30장 11절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매는 현대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가치와 중요한 것들은 사실 우리 곁에 늘 존재하며, 그것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 삶의 본질을 다시 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대한 계획이나 기술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것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 30장 11절은 우리에게,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들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며,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먼 곳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는 흔히 "더 나은 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등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30장 11절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중요한 것들은 우리 곁에 늘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친구와의 대화, 자연 속에서의 산책 등은 모두 우리의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작은 순간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본질을 다시 찾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현재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자동차 등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은 인간적인 가치입니다. 신명기 30장 11절은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필요한 지혜와 가치는 기술이 아닌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인간적인 관계와 본질적인 가치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술을 통해서도 이러한 가치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자연을 보호하는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신명기 30장 11절이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찾고자 하는 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명기 30장 11절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며,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먼 곳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본질을 다시 찾도록 도와줍니다.

이 구절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보면,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도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환경 문제, 사회적 갈등, 개인적인 고민 등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사실 우리 주변에 있으며,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명기 30장 11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답은 멀리 있지 않으며, 그것은 우리 일상 속에서, 우리 곁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가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고, 중요한 가치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발견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 30장 11절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현대적 교훈이며, 우리가 다시 찾은 길인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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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