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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1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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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2장 26절 묵상 - 의인의 인도와 악인의 미혹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잠언 12장 26절은 의인과 악인의 삶의 태도와 그 결과가 얼마나 극명하게 대비되는지를 단 한 구절로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선택을 넘어, 우리가 이웃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결과까지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라는 전반부와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라는 후반부는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며,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먼저,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된다"는 말씀을 묵상하며 의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의인이란 단순히 개인적으로 선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며 그 선함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인도자"라는 단어는 방향을 제시하고, 길을 열어주며, 때로는 희생적으로 앞서가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의인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삶을 삽니다. 이는 예수님의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죄인을 품으셨습니다. 그분은 참된 인도자로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 사람의 작은 친절, 진실한 조언, 또는 따뜻한 위로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반면,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는 후반부는 악인의 비극적인 결말을 단호하게 드러냅니다. 여기서 "소행"은 그들의 행위와 습관, 삶의 패턴을 의미합니다. 악인은 겉으로는 자신을 위해 사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 선택이 스스로를 속이고 파괴하는 덫이 됩니다. 미혹이란 진실을 보지 못하고 거짓된 길에 빠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마치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돈을 좇다가 가족을 잃고, 거짓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은 결국 신뢰를 잃습니다. 악인의 삶은 일시적인 만족을 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공허와 파괴로 이어집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내가 지금 걷는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내 선택이 나를 살리는 길인지 망치는 길인지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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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또한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의인은 혼자 잘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이웃을 인도하며 더불어 살아갑니다. 반면 악인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망가뜨립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원리는 여전히 적용됩니다. 우리는 경쟁과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살며, 때로는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말합니다. 진정한 행복과 평화는 이웃과 함께 나누고, 서로를 세워줄 때 찾아온다고.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악한 선택은 그 반대의 결과를 낳습니다.

이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며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인도자가 되고 있는가? 나의 말과 행동이 그들을 선한 길로 이끄는가, 아니면 혼란과 실망을 주는가? 또한, 나의 소행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내가 좇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나를 미혹하는 덧없는 욕망인지 돌아봅니다. 이 질문들은 결코 쉽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바로 세우는 데 꼭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잠언 12장 26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 길을 보여줍니다. 의인의 길은 이웃을 살리고, 자신도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는 길입니다. 악인의 길은 자신을 속이며 결국 파멸로 이끄는 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할지, 어떤 인도자가 될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의인의 길을 걷고,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나와 이웃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인도자가 되고 있는가?
 - 나의 말과 행동이 이웃을 선한 길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혼란과 실망을 주는지를 돌아봅시다.

2. 나의 소행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 내가 지금 추구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나를 미혹하는 덧없는 욕망에 끌려가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3.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가?
 - 개인적인 이익만을 좇기보다는 공동체를 세우고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잠언의 말씀을 통해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를 지혜로 이끄시어 이웃에게 선한 인도자가 되게 하시고, 제 소행이 주님의 뜻을 따르며 저를 미혹에서 지켜주시길 간구합니다. 오늘도 공동체 안에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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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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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장 22절 칼럼n - 네 길을 가라, 남의 길은 신경 쓰지 말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삶은 때로 우리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듭니다. 친구가 더 좋은 직장을 얻었을 때, 동료가 더 빠르게 승진했을 때, 혹은 누군가가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일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질투나 불안이 고개를 듭니다. 성경 구절인 요한복음 21:22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 은 이런 인간적인 감정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줍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타인의 삶이 아닌, 우리 자신의 길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구절의 배경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요한에 대해 묻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다졌던 터라, 다른 제자의 운명이 궁금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요한이 어떤 삶을 살든, 그것은 베드로의 길과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베드로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라는 초대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합니다. 누군가의 화려한 여행 사진, 성공 스토리, 완벽해 보이는 가정은 우리의 부족함을 부각시키곤 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21:22은 묻습니다.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타인의 삶은 그들의 것이고,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입니다. 남의 길을 부러워하거나 판단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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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또한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다른 사람의 기대나 판단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누군가는 일찍 결혼하고, 누군가는 늦게 경력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평생 한 가지 일을 고집하고, 어떤 이는 여러 길을 탐색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며, 우리에게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다독입니다.

종교적인 맥락을 떠나서도 이 구절은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비교는 행복을 앗아가고, 집중은 평화를 가져옵니다. 철학자 니체는 “너 자신에게 충실하라”고 했고, 동양의 도가사상 역시 “자연의 흐름을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요한복음 21:22은 이런 지혜와 맞닿아 있습니다. 남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데 집중할 때, 우리는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경쟁을 부추기고,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다시 중심으로 돌려놓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라는 부분은 타인의 삶이 우리 이해를 넘어설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들의 길이 길든 짧든, 빛나든 어둡든, 그것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우리 앞에 놓인 길을 성실히 걷는 것뿐입니다.

결국, 요한복음 21:22은 우리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비교와 질투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만의 소명을 발견하고 따르라는 초대입니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우리는 각자 삶의 주인공입니다. 남의 이야기에 연연하기보다, 내 이야기를 쓰는 데 집중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 순간, 한 번 물어보세요. “나는 내 길을 가고 있는가?” 그 대답이 당신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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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4. 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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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4장 4절 강해 - 순결한 자들의 첫 열매

 

제목: 순결한 자들의 첫 열매

본문: 요한계시록 14장 4절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성경 말씀인 요한계시록 14장 4절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놀라운 묘사와 그들의 신앙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마지막 때에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의 특징을 설명하며, 그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특별한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세 가지 핵심 포인트로 나누어 살펴보고, 관련 성경 구절을 통해 더 깊은 이해를 얻으며,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을 찾아보겠습니다.

1. 순결함: 세상과 구별된 삶

요한계시록 14장 4절은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다"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의 육체적 순결을 넘어, 영적인 순결과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삶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여자"는 종종 우상 숭배나 세속적인 타락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며(예: 계 17:1-5의 "큰 음녀"), 이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더러움과 타협하지 않고 거룩함을 유지했음을 보여줍니다.

-관주: 디모데후서 2장 22절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강을 좇으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순결함이 단순히 죄를 피하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적극적인 헌신임을 나타냅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유혹 - 물질주의, 쾌락, 타협 - 속에서 순결한 믿음을 지킬 수 있는가 자문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 순종: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

두 번째로, 이 말씀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묘사합니다.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요 1:29), 그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냅니다. 이는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라, 신뢰와 사랑에서 비롯된 헌신입니다. 어린 양이 가는 길은 때로 고난과 희생의 길일 수 있지만(마 16:24), 그 길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동참합니다.

-관주: 요한복음 10장 27절에서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내가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어린 양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의 인도를 따르는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적용: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그의 음성을 듣고, 세상보다 주님의 길을 우선순위에 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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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속량과 헌신: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첫 열매

마지막으로, 이 구절은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속량"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음을 의미하며, 이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엡 1:7). "처음 익은 열매"는 레위기 23장 10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바친 첫 수확처럼, 이들이 하나님께 드려진 최고의 헌물임을 나타냅니다. 이들은 단순히 구원받은 자를 넘어,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된 삶을 살아갑니다.

-관주: 고린도전서 6장 20절은 "너희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이는 속량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이 마땅함을 보여줍니다.

-적용: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우리의 시간, 재능, 삶 전체를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첫 열매"가 되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요한계시록 14장 4절은 순결함, 순종, 속량과 헌신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마지막 때의 신비로운 장면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강력한 도전을 줍니다. 세상 속에서 거룩함을 유지하며,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속량의 은혜에 합당한 헌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신앙의 모습을 이룹니다. 순결함은 순종으로 이어지고, 순종은 헌신으로 완성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며 삶에 적용할 때, 하나님과 어린 양께 드려지는 참된 "첫 열매"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도전을 받아들이고, 매일의 선택 속에서 어린 양의 길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헌물이 되기를 기도하며,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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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11.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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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7장 1절 묵상 - 화목의 가치를 깨닫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짧은 구절은 인생에서 물질적 풍요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담긴 이 말씀은 단순히 먹을 것의 양이나 질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마음의 평안이 삶의 진정한 가치임을 일깨워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행복의 본질을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물질보다 귀한 화목

"마른 떡 한 조각"은 풍족하지 않은 상황을 상징합니다. 화려한 잔치나 고급 요리가 아닌, 가장 기본적이고 소박한 음식을 뜻하죠. 반면 "제육이 집에 가득하다"는 표현은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잔칫상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물질적 풍요가 다툼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다면, 아무리 많아도 그 가치를 잃는다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화목, 즉 평화로운 관계와 서로를 향한 사랑이 없다면, 그 어떤 부도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물질적 성공을 행복의 척도로 삼습니다. 더 좋은 집, 더 맛있는 음식, 더 많은 재산을 가지면 삶이 나아질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 믿음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가족 간의 다툼, 친구와의 오해, 이웃과의 갈등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반대로 소박한 삶 속에서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화목하게 지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툼의 무거운 대가

"다투는 것"은 단순히 말다툼을 넘어 마음의 상처와 분열을 가져오는 모든 갈등을 포괄합니다. 성경은 다툼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지 자주 언급합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에서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서 나며 다툼이 어디서 나느냐"라고 묻고, 그 원인이 내면의 욕심과 교만임을 지적합니다. 다툼은 집 안을 어지럽히고, 관계를 무너뜨리며, 결국 사람을 외롭고 지치게 만듭니다. 제육이 가득한 집이라도 다툼이 있다면 그 풍요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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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대조적으로 화목은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마른 떡 한 조각을 나누며 웃고 대화할 수 있는 가정은, 비록 물질은 부족할지라도 사랑과 신뢰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느끼는 기쁨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선물입니다. 솔로몬은 이 지혜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더 귀히 여기느냐? 물질의 풍요를 좇아 다툼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소박함 속에서 화목을 선택할 것인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결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목은 단순히 다툼이 없는 상태를 넘어,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삶의 태도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고(로마서 5:10),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를 회복하셨습니다. 이처럼 화목은 하나님의 마음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화목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 오해,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잠언 17장 1절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다툼을 이기려는 마음 대신, 화목을 위해 한 발 물러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사소한 양보와 용서가 마른 떡 한 조각을 나누는 소박한 기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삶 속에서 적용하기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나는 무엇을 더 소중히 여겼던가? 물질적 풍요를 좇느라 가족과의 대화, 친구와의 신뢰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화목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일까 고민해봅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오해를 풀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며, 다툼 대신 이해를 선택하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어도 행복한 삶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결국 잠언 17장 1절은 우리에게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라고 초대합니다. 세상은 화려한 제육을 내밀며 우리를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화목이라는 더 깊은 가치를 보여주십니다. 소박하더라도 평안한 마음,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있는 곳이 진정한 풍요의 자리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화목의 길을 걷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삶에서 물질적 풍요와 화목 중 무엇을 더 우선시하고 있는가?
 - 일상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물질적 욕심이 관계를 해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봅시다.

2. 최근 다툼이 있었던 상황에서 내가 화목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 과거의 갈등을 떠올리며, 내가 화평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거나 양보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반성해봅시다.

3. 오늘 화목을 실천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
 -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만들어갈 구체적인 한 가지 실천을 고민해봅시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잠언 17장 1절을 통해 화목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마음이 물질보다 평안을, 다툼보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오늘 하루, 제 말과 행동으로 화목을 만들어가는 도구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평화가 제 삶과 주변에 넘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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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4. 1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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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3장 1-2절 강해 -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의 삶

제목: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의 삶
본문: 히브리서 13장 1-2절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이 구절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진 실천적인 권면으로, 신앙생활의 핵심인 사랑과 섬김을 강조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교훈을 나누고, 성경의 다른 구절과 연결하며, 현대적인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 살펴보겠습니다.

1. 형제 사랑을 계속하라

첫 번째 교훈은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는 명령입니다. 여기서 "형제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신앙 공동체를 향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함을 "계속하라"는 표현이 강조합니다.

-관주: 요한일서 4장 7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아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는 형제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앙의 표현임을 보여줍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서로를 어떻게 대합니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형제자매의 필요를 살피고, 용서하며, 격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려움에 처한 교우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하거나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두 번째 교훈은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많은 신자들이 박해로 인해 떠돌이 신세가 되었고,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것은 생존과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이 명령은 단순한 예절을 넘어 사랑의 구체적 실천을 요구합니다.

-관주: 창세기 18장 1-8절에서 아브라함이 세 명의 나그네를 정성껏 대접한 사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실 하나님의 사자였고, 아브라함은 이를 통해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는 히브리서 13장 2절 후반부의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과 연결됩니다.

-적용: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나 가정에서 외로운 이웃, 난민, 혹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웃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교회에서 새 신자를 환영하는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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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사들을 대접한 믿음의 보상

세 번째 교훈은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는 결과입니다. 이는 손님 대접이 단순한 인간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행할 때, 하나님은 이를 통해 은밀히 역사하십니다.

-관주: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사랑으로 섬길 때, 그것이 예수님께 드리는 섬김과 같음을 보여줍니다.

-적용: 우리는 모든 사람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외모나 배경을 넘어 사랑으로 대할 때, 하나님께서 예기치 않은 축복으로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심지어 길거리에서 만나는 이들에게까지 적용됩니다.

맺는말[Conclusion]:

히브리서 13장 1-2절은 우리에게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이라는 두 가지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라고 도전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최근 한 교우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문병을 가지 못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쳤지만, 이 말씀을 통해 사랑을 실천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라도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낯선 이에게 먼저 인사하며 다가가고, 가정에서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이웃에게 손을 내밀 때마다 우리는 천사를 대접할지도 모르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이 사랑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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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4. 1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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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7절 묵상 - 고난과 위로의 동행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이 구절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편지의 한 부분으로, 고난과 위로라는 두 가지 주제가 깊이 얽혀 있는 말씀입니다. 이 짧은 문장 안에 담긴 의미는 단순히 고난의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함께한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고난과 위로가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견고한 소망이 어떻게 뿌리내리는지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바울은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이라고 말합니다. 이 소망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당시 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의 분열, 도덕적 문제, 외부의 박해 등 그들의 신앙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고난과 위로의 연결고리에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단순히 피해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난이 신앙의 여정에서 필연적인 부분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고 믿었습니다.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라는 문장은 이 연결고리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고난은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서로와의 연대 속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바울은 앞서 같은 장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고후 1:5)고 말합니다. 즉,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회이며, 그 고난을 통해 우리는 그분의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위로는 단순한 감정적 위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그리고 궁극적인 구원의 약속에서 오는 깊은 평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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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병고, 상실, 실패, 관계의 갈등 등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고난의 무게는 때로 우리를 주저앉게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고난이 끝이 아님을 상기시킵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자는 위로에도 참여합니다. 이는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빛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터널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도, 결국 출구가 있고 그곳에서 따스한 햇빛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알았기에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소망을 견고히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구절은 또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너희를 위한"이라는 표현을 통해 개인적인 소망을 넘어 공동체적 연대를 말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고립시킬 수 있지만, 위로는 공동체 안에서 더욱 풍성해집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경험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분열 속에서도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바울의 마음이 이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 역시 오늘날 교회와 가정, 이웃 안에서 고난을 함께 짊어지고 위로를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의 근거를 묻습니다. 바울의 소망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뿌리내린 소망이었습니다. 고난이 있을지라도 위로가 뒤따르고, 위로가 있기에 소망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 진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세상은 불확실하고 고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7절을 묵상하며, 우리는 고난과 위로가 함께 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지만, 위로는 하나님의 강함을 보여줍니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신앙의 여정에서 함께 엮인 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분의 위로가 우리의 견고한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로 하루를 살아가며, 고난 속에서도 위로를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삶에서 고난을 마주할 때,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 이 질문은 고난을 단순히 부정적인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위로를 찾을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2. 내 주변의 누군가가 고난을 겪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 그들의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까? 공동체 안에서 위로를 나누는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 공동체적 연대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내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됩니다.

3. 나의 소망은 무엇에 뿌리내리고 있는가? 세상적인 낙관주의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기반한 견고한 믿음인지 점검해보라.
 - 소망의 근거를 점검하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토대를 다질 수 있도록 이끕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고난 속에서도 위로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의 삶에 찾아오는 어려움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견고한 소망을 붙들게 하소서. 또한 저를 통해 주변의 아픔을 위로하는 도구로 사용해 주시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으로 섬기게 하여 주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저의 소망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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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2장 24절 칼럼n - 마음을 다해 섬기는 삶의 의미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이 구절은 수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말씀일지라도,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종교적 신념을 떠나, 이 문장은 삶에서 감사와 헌신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큰일을 행했다면, 그에 대한 응답으로 진심을 다해 보답하려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먼저, “그 큰 일을 생각하라”는 초대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부모의 희생, 친구의 도움, 혹은 낯선 이의 작은 친절까지,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은혜를 받는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깨어 자식의 숙제를 도운 기억이나, 어려운 시기에 친구가 내민 손길은 결코 잊히지 않는 ‘큰 일’이다. 이 구절은 그런 순간들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추라고 권한다. 현대 사회에서 바쁜 일상에 치여 잊기 쉬운 이 감정은, 사실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다음으로, “경외하며 섬기라”는 말은 단순한 감사를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라는 요청이다. 경외란 두려움 속에 존경을 담은 마음이다. 이는 신앙의 대상뿐 아니라,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나 가치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가령,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은 환경을 보호하려는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헌신에 감동했다면, 우리도 그만큼 진실하게 보답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는 종교적 맥락을 넘어 인간관계와 사회 속에서 공정함과 책임을 다하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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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하여 진실히”라는 표현은 특히 강렬하다. 형식적이거나 억지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헌신을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일, 가족, 공동체 속에서 얼마나 진실되게 임하는지를 묻는다. 예컨대, 직장에서 단순히 월급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이 구절과 맞닿아 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행동은 결국 공허함만 남기지만, 마음을 다한 노력은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 의미를 준다.

이 말씀은 결국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받은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든, 사람을 믿든, 아니면 스스로의 가치를 믿든, 이 원칙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경쟁과 효율만을 좇아 감사와 헌신을 잊는다. 하지만 이 구절은 잠시 멈춰 서서, 우리를 여기까지 이끈 ‘큰 일’들을 떠올리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갈 것을 조용히 권면한다. 마음을 다해 섬기는 삶,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추구할 보편적이고 아름다운 목표가 아닐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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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장 12절 강해 -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제목: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본문: 예레미야 29장 12절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세 가지 요점으로 나누어 설교하고, 관련 성경 구절을 통해 깊이 살펴보며,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1. 부르짖음의 필요성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약속은 우리가 먼저 그분께 "부르짖어야" 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부르짖다"는 말은 단순한 소원이 아니라 간절함과 절박함이 담긴 외침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시대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고, 그 부르짖음은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관주: 시편 34장 17절 "의인이 부르짖을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느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줍니다. 부르짖음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행위입니다.

-적용: 우리의 삶에서도 어려움이나 고난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작은 소망을 속삭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간절히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병든 가족을 위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또는 죄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로 나아감

"내게 와서 기도하면"이라는 구절은 부르짖음이 단순한 외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구체적인 행동을 포함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삶을 그분께 드리고, 그분의 뜻을 구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예레미야의 백성들은 포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잊고 우상숭배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이 말씀은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초대였습니다.

-관주: 야고보서 4장 8절 "너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가까이 오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신다는 약속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만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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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우리는 기도할 때 단순히 요구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 말씀 묵상, 그리고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추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3. 응답하시는 하나님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라는 말씀은 이 모든 약속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부르짖음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때에 맞춰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줍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들에게 이 약속은 포로 생활 70년 후에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예레미야 29:10).

-관주: 요한일서 5장 14절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 아니라, 그분의 뜻에 합당한 응답을 주신다는 사실을 이 구절이 강조합니다.

-적용: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답이 즉시 오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예를 들어, 취업을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는 중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맺는말[Conclusion]:

예레미야 29장 12절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분께로 나아가며, 그분의 응답을 기대하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약속 이상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초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고난과 연약함이 있을 때, 우리는 절망하거나 스스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분께 부르짖는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열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발걸음은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며, 그분의 응답은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위로와 소망을 찾으며, 그분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며, 언제나 우리를 사랑으로 품으시는 분이십니다. 이 진리를 붙들고, 날마다 그분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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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