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목사의 말씀칼럼] 에스겔 16장 6절 칼럼 - 내가 너를 보고 말하였노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에스겔 16장 6절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생생한 이미지로 묘사하며, 그들의 죄악된 상태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라는 말씀은 영적 죽음에 이른 인간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아버지의 주권적 사랑을 잘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를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존재로 묘사하십니다. 이는 출생 직후 돌봄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 누구도 돌보지 않고 생명을 포기한 듯한 상황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과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에스겔 16장 전체를 보면, 이는 단지 육체적 생명을 넘어 영적으로도 철저히 망가진 상태를 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살아날 힘이 없는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시는 장면은 놀라운 은혜의 모습입니다.
“내가 너를 보고”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음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만한 조건이나 자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절망 속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찾거나 노력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피투성이가 된 갓난아기는 자기 자신을 치유하거나 돌볼 능력이 없습니다. 이는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인간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살아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소망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성취되며, 아버지의 말씀은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명령은 단지 생명을 유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풍성한 삶으로 나아가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죽음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에스겔 16:6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깊은 영적 교훈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유혹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죄로부터 구원하시며,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며 생명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에스겔 16:6은 단순히 과거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절망의 상태에서 스스로를 구할 수 없었던 우리를 향해 “너는 살아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로 살아가며, 그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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