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10. 16. 19:57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두려워하지 말라, 침묵하지 말라

사도행전 18장 9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사도행전 18장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린도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혼재된 도시였으며,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큰 어려움과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는 환상을 통해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오늘날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으며 겪는 두려움과 침묵의 유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두려움 속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 - 바울은 사역 중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습니다. 고린도에서도 비슷한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시며 보호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역시 삶 속에서 외부의 저항과 불확실함 속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두려움은 물러가게 됩니다.

침묵의 유혹을 이겨내라 - 하나님은 바울에게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사명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두려움이 밀려올 때 우리는 쉽게 침묵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갈등을 피하고자, 혹은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워 말을 멈추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침묵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진리의 메시지는 상황이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일수록 더욱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에 드러나시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삶 속에 주어지는 평안 -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린도에서 복음을 계속 전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예상치 못한 평안을 누리며 1년 6개월 동안 그곳에 머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행 18: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때, 비록 외적인 환경은 여전히 어려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적인 평안이 임합니다. 순종은 두려움을 이기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게 합니다.  

두려움과 침묵을 넘어 담대함으로 -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다양한 상황과 환경이 복음 전파를 방해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입을 닫고, 때로는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침묵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명령을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때, 우리는 아버지의 평안과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두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면, 그리고 복음 전파에 망설이고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와 함께하시며 모든 길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 명령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힘과 위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10. 15. 18:17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마가복음 10장 47절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마가복음 10장 47절은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외치는 장면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부르짖음 이상으로, 그의 믿음과 간절함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이라는 외침은 당대 유대인 사회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의미를 던집니다.

바디매오는 육체의 눈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영적인 눈으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아보았습니다.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단순한 선생님이나 의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약속된 메시아로 인식한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눈먼 바디매오는 오히려 영적으로 가장 밝은 눈을 가진 자였습니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예수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삶의 고통과 분주함 속에서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바디매오처럼 믿음의 눈을 열어, 예수님을 삶의 구원자와 주인으로 고백할 때 비로소 참된 변화가 시작됩니다.

바디매오는 주저하지 않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 외침은 단순한 절망의 소리가 아니라,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의 제지에도 굴하지 않고 더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외침에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겸손과 오직 예수님만이 자비를 베풀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바디매오와 같은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 우리의 기도는 형식적인 요청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간구가 되어야 합니다.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아버지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은 예수님께서 들으셨고, 결국 그의 눈은 떠졌습니다(마가복음 10:52). 그의 외침이 응답받은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눈먼 상태에서도 주저 없이 예수님을 부른 그의 모습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많은 유혹과 소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바디매오처럼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칠 수 있는 순전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간절히 부를 때 언제나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7절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외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은 단순히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영혼이 예수님을 향해 열려 있음을 증명하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도 삶의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바디매오처럼 예수님께 부르짖을 수 있을 때,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외침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강력한 은혜의 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10. 14. 19:19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믿음의 가능성

마가복음 9장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9장 23절은 예수님께서 믿음의 본질과 능력을 강조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구절은 믿음이 단순한 감정이 아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힘임을 선언합니다. 본 칼럼에서는 이 말씀의 의미와 오늘날 우리 삶에 주는 가르침을 나누고자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병든 아이를 치유해 달라는 아버지의 간청에 대해 “할 수 있거든”이라는 불신의 표현을 지적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음은 상황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한계 안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각자의 문제 앞에서 종종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품습니다. 질병, 경제적 어려움, 관계의 갈등 등 다양한 현실의 문제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의심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때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능력은 그 대상에 따라 달라집니다. 단순히 자신감이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초자연적인 결과를 이끌어냅니다. 아이를 치유해 달라고 간청했던 아버지의 문제는 ‘믿음의 부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믿음을 시험하시며 그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이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이 진정한 능력을 발휘하려면 그 방향이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게 하는 마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와 기도를 아시고, 아버지의 뜻 안에서 가장 선한 길로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의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겸손한 믿음입니다. 내 능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둘째, 믿음의 실천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마음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질 때 참된 힘을 발휘합니다. 기도와 순종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불가능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한계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나아가게 합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 놓인 다양한 문제 속에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아버지의 능력을 경험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삶은 결과를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이 말씀을 붙들고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10. 13. 18:04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침묵의 권위

마가복음 1장 25절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이 구절은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이 강력하게 드러나는 장면으로, 예수님이 더러운 영을 책망하시며 침묵을 명령하신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구절 안에는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가 영적인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삶 속에서도 주님의 권위가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먼저, 이 장면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어떤 장황한 설명이나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잠잠하라"라는 명령 한 마디로 더러운 영은 그 즉시 반응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담긴 권위가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사람의 말과는 차원이 다른 주님의 말씀은,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서도 즉각적으로 힘을 발휘합니다. 성경 곳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듯이, 예수님은 더러운 영에게 명령하시니 그 즉시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신학적, 영적 교훈을 줍니다. 첫째, 예수님은 더러운 영들, 즉 악한 세력들조차도 주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이는 단순한 기적의 사건을 넘어, 예수님이 영적 세계의 주권자이심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도덕적 가르침을 주는 분이 아니라, 영적 전쟁의 승리자이시며, 악의 세력 위에 군림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악한 영들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지라도, 예수님의 권위 아래 그들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잠잠하라"라는 명령은 영적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 삶 속에서 혼란스러운 상황, 마음을 어지럽히는 염려와 두려움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잠잠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혼란 속에서 평안을, 두려움 속에서 확신을 가져다주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여러 가지 불안한 감정들, 외부의 소음들, 혼란스러운 사건들 가운데서 우리는 주님의 명령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시 평안과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명령은 단순히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 공동체, 그리고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선포할 때, 세상은 잠잠해질 것입니다. 악의 세력과 불의한 구조들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무너질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도구로 부름받았으며, 그 말씀은 여전히 살아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5절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는 짧지만 강력한 구절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여전히 역사하고 계심을 기억하며, 주님의 평안과 권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10. 12. 18:23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두려움에서 일으키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17장 7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마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다룹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 그들 앞에서 변형되십니다. 그 모습은 흰옷처럼 빛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려오며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이 장면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들은 두려워 엎드리게 됩니다.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이 한 마디는 단순한 위로 이상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이 구절에서 "예수님의 돌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적 영광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자각하게 됩니다. 제자들 또한 그 순간, 자신들의 무력함을 절실히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가 손을 대시며 그들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하신다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두려움 속에서도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믿음에 대한 도전"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은 신약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라는 초대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두려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에서의 상처 등, 다양한 두려움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삶 속에 개입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영적인 각성"을 촉구합니다.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육체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영적인 깨어남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때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리의 사명을 잊고 엎드려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움과 무력감에 빠져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힘을 얻고, 주님의 손길을 통해 다시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17장 7절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구절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믿음과 자세를 가르쳐줍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주님의 손길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가로막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시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두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손길을 기대해야 합니다.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며 우리의 삶을 새롭게 일으키고,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10. 11. 19:36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두려움의 근원-하나님과의 단절

사무엘상 28장 5절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무엘상 28장 5절은 사울 왕이 블레셋 군대의 위세를 보고 큰 두려움에 빠진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사울의 영적 상태와 그의 리더십의 쇠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사울의 두려움은 단순한 전쟁의 공포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졌을 때 느끼는 영적인 공허함과 불안의 표출입니다. 사무엘상 28장은 사울이 하나님께 응답을 받지 못한 절망 속에서 결국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극단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사울의 영적 쇠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가 왕으로서 가졌던 권위와 능력은 더 이상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적인 두려움과 불안에서 나온 반응이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군대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그의 군사적 능력의 부족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마음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 어떤 물리적인 대적 앞에서도 영적 힘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자신과 함께하지 않음을 깨달았고, 그로 인해 그 마음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사울의 두려움은 그가 왕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그가 왕으로 세움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욕심과 판단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그에게 전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한 결과,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점차 멀어졌고, 결국에는 그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를 본 사울의 두려움은 이러한 영적인 단절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의 두려움은 단지 전쟁의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는 자각에서 오는 깊은 불안이었습니다. 이 두려움은 그의 나약함을 드러냈고, 결국 그가 비극적인 결정을 하게 만듭니다.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려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영적으로 무너져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무엘상 28장 5절의 사울의 두려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영적 가르침을 제공합니다. 우리 삶에서 두려움은 종종 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해질 때 찾아옵니다. 사울이 두려움에 떨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고, 우리의 신앙이 약해질 때, 세상의 문제들은 더욱 크게 보이고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게 됩니다.

우리는 사울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우리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울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극적인 결정을 내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멀어지면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무엘상 28장 5절은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때, 우리는 어떤 도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때, 세상의 어려움은 우리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10. 10. 19:09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가라지를 뽑지 말라-참음의 신앙

마태복음 13장 29절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태복음 13장 29절은 예수님께서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하신 말씀 중 하나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는 구절은 가라지를 뽑지 말라는 주인의 지혜로운 결정이 담겨 있습니다. 이 비유는 선과 악,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기다림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가라지는 농부들이 경작할 때 피해야 할 잡초입니다. 보리나 밀과 같은 곡식과 함께 자라지만, 그 모양은 처음엔 곡식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섣불리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잘못하면 곡식까지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강조하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악인과 의인이 섞여 있어 그들을 당장 구별하거나 처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가라지 비유는 흔히 하나님께서 세상의 악을 허용하시는 이유와 관련지어 해석됩니다. 사람들은 왜 악이 이 세상에 존재하며, 왜 하나님은 그 악을 즉각적으로 제거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주인은 성급하게 가라지를 뽑아내는 대신 추수를 기다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를 나타내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섭리와 계획 속에서 일하십니다. 인간의 시각으로는 악과 선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우리 판단으로 당장 악을 제거하려고 할 때 오히려 선한 이들도 다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음"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기다리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악한 세상 속에서 종종 고통과 불의를 겪으며 참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시며, 추수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때를 신뢰하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 비유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악을 제거하려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아버지의 방법으로 심판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의 판단은 때때로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우리가 보기에 악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인내로 악인들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이나 일시적인 상황만으로 판단하고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라지를 뽑지 말라는 이 말씀은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도 가라지와 같은 죄성과 연약함이 공존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우리의 잘못을 다루지 않으시고, 때로는 기다리시며 인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자신과 타인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의 과정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 13장 29절은 단순한 농업적 비유를 넘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참음과 인내,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악과 불의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섣부른 판단을 피하고, 하나님의 때와 섭리를 신뢰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그 날까지, 우리는 신실하게 살아가며 아버지의 말씀에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10. 9. 17:45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회개의 길, 은혜의 길

사도행전 8장 22절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사도행전 8장 22절은 회개의 본질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는 말씀은 성경 전반에 걸쳐 강조되는 중요한 주제, 즉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용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회개와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이 구절은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에게 베드로가 준 경고입니다. 시몬은 사도들이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하는 능력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도 베드로에게 그 능력을 사고자 제안합니다. 베드로는 시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않다"고 꾸짖으며 그가 가진 잘못된 동기를 드러냅니다. 이때 베드로는 시몬에게 회개할 것을 권면하며, 그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은 주께 기도함으로 죄를 용서받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사건은 회개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게 만듭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와 악함을 철저히 깨닫고, 그 죄로부터 돌아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몬의 경우, 그는 자신의 욕심과 잘못된 동기를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사고자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면서도 그 동기가 순수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조차도 때로는 세속적인 목적이나 개인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8장 22절은 이러한 잘못된 동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바로 '회개'와 '기도'입니다. 회개는 우리의 죄된 본성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변화와 결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회개와 기도를 들으시는 자비로운 분이심을 상기시켜줍니다.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는 말은 하나님이 용서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깨닫고 회개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로 용서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는 위대한 약속입니다.

사도행전 8장 22절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 삶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 속에서 때로는 하나님과 멀어지기도 하고, 잘못된 동기와 욕망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잘못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는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시며, 기꺼이 우리를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행전 8장 22절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안져줍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회개를 통해 아버지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닌,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단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풍성한 은혜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다시금 우리를 아버지의 은혜로운 품 안에 받아주실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