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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9. 2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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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라

요엘 2장 12절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요엘서 2장 12절은 구약 성경에서 중요한 회개의 초대를 담고 있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며,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는 단순한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진정한 회개를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외적인 행위나 형식적인 종교 의식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종교적 활동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요엘서 2장 12절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이 구절에서 강조된 것은 “마음을 다하여”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내면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며,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속마음을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한 회개, 즉 마음을 다하는 회복의 열망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로 '메타노이아'(μετ?νοια)라는 단어는 '생각을 바꾸다', '방향을 바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요엘서의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극심한 재난과 고통 가운데 있었고, 이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제라도"라는 말씀으로 회복의 기회를 제시하십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실수와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두렵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가 아닌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더 관심을 두십니다. 요엘서 2장 12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제라도"는 언제나 열려 있는 회개의 문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지,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라는 표현은 단지 외적인 고통이나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절실한 회개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회개는 죄를 뉘우치고, 그 죄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과정입니다. 이는 단순한 후회의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죄에 대한 깊은 인식과 그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간절한 열망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은 때로는 완고하고 자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사랑보다는 세상적인 욕망과 이익을 쫓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질지라도, 그 마음을 다시 부드럽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한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아버지의 은혜와 자비를 경험하는 통로가 됩니다.

요엘서 2장 12절은 단지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한 소망의 메시지로 이어집니다. "이제라도"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끝없는 자비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돌이켜 아버지께 돌아올 때 환영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실패했을 때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어려움과 도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제라도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때, 아버지는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며,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이미지 출처: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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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9. 2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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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다

사무엘하 22장 31절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사무엘하 22장 31절은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백한 내용으로,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라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고 완전하신 분임을 강조하며, 그의 길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보호자이자 인도자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짧은 구절 안에는 성도의 삶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여러 주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도(道)’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 곧 아버지의 섭리와 계획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많은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도를 따라 걸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도는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습니다. 때로는 고난과 역경을 마주할 때 우리가 선택한 길이 잘못되었는지 의문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도는 언제나 완전합니다. 아버지의 계획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 결국에는 선을 이루어 내십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판단과 이성에 의존하여 인생의 길을 결정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도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시며, 아버지의 도는 언제나 선하고 옳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신뢰하고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인간의 말이 아니라, 신실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말과 약속을 접하지만, 인간의 약속은 흔들리기 쉽고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아버지의 성품을 반영하며,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안에는 우리의 삶을 이끄는 지혜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 같습니다. 세상의 풍파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리 안에 거하는 자는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설 수 있습니다. 다윗이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진실한 말씀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을 방패라고 고백합니다. 방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많은 적과 싸우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우리는 인생의 싸움에서 홀로 서지 않으며,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아버지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아버지께 우리의 신뢰를 두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할 때, 아버지는 우리의 강력한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세상의 위험과 유혹 속에서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아버지의 보호 안에서 안전합니다.

사무엘하 22장 31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아버지의 말씀은 진실하며, 아버지는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도는 결코 틀림이 없으며, 아버지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피하고, 아버지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P.S: 진주충만교회

 

이미지 출처: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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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9. 19.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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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저주를 축복으로, 모욕을 기도로: 예수님의 역설적 가르침

누가복음 6장 28절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인간의 본성은 상처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반격하거나 방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저주하거나 모욕하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분노하거나 마음이 상해 그에 맞서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반응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역설적’인 가르침을 주십니다. 바로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기준과는 너무나 다르기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 구절에는 예수님의 사랑과 주님이 바라시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저주는 상처를 주고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저주에 직면했을 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축복은 단순히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선한 뜻과 진심어린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것은 단지 상대방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를 저주하는 자에게도 선을 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통로를 여는 것입니다.

모욕은 우리의 자존심과 명예를 해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욕 앞에서도 기도로 대응하라고 명하십니다. 이 기도는 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감정이 성령님에 의해 다스려지도록 도와주며, 복수심이나 원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분노와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고, 아버지의 공의와 사랑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이 가르침은 단순한 윤리적 행동 지침을 넘어, 예수님이 이 땅에 가져오신 ‘사랑의 혁명’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이 명령을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실천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모욕과 저주를 참아내셨듯이, 우리도 주님을 닮아가며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서 바울은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복수는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랑과 용서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우리의 감정적 반응을 넘어서는, 영적인 성숙과 훈련입니다.

누가복음 6장 28절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실천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따를 때, 우리는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우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 확장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쉽지 않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반드시 걸어야 할 길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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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9. 18.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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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영혼

시편 63편 2절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시편 63편은 다윗이 유다 광야에서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물이 없어 메마른 광야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시편 63편 2절에서 다윗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바라본 기억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다시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바람을 넘어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갈망하는 다윗의 심정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근본적인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의 목마름입니다. 이 목마름은 세상의 어떤 물질적, 감정적 만족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내면의 필요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의 순간 속에서도 영혼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존재합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성소에서의 경험을 기억한 것처럼, 우리도 삶의 광야 같은 순간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특히 다윗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라고 고백한 부분에서 우리는 그가 이전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소는 단순히 물리적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가 이루어진 자리입니다. 이 고백은 다윗이 하나님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고, 그 경험이 그에게 큰 영적 위로와 힘이 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과거 경험을 잊지 않고, 그 경험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성소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서 '권능'은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의미하며, '영광'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아버지의 위대함을 나타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았고, 그 능력이 자신을 다시 한번 붙들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메마를 때, 세상의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는 힘은 우리의 환경을 초월하며, 아버지의 영광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갈망했던 그 장소는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물이 없고 생명이 유지되기 힘든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광야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때로는 광야와 같은 고통과 외로움의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간절히 찾고, 아버지의 사랑과 돌봄을 새롭게 체험하게 됩니다. 다윗의 시편 63편은 이런 광야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고백이며, 아버지를 찾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다는 확신을 줍니다.

시편 63편 2절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뜨거운 갈망을 담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삶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을 향해 목말라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권능과 영광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만족을 줍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삶의 메마른 순간에 하나님을 더욱 갈망하며 아버지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소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광야 같은 삶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만나주시고, 아버지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이미지 출처: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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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9. 17.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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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함

사도행전 20장 27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며, 자신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회고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도행전 20장 2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바울은 자신이 그들에게 전한 것이 단순한 인간의 지혜나 사상, 혹은 일부분의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한 뜻" 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복음 사역에 대한 매우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그는 전할 것과 전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는 대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복음을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온전히 변화시키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궁극적인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이 지녔던 이 원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이 듣기 좋아할 내용만 골라서 전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에 강한 영향을 받으며, 절대적인 진리보다는 개인의 선택과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은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유혹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이 주는 "불편함"이나 "도전"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때로는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우리의 삶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저항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 참된 사역자의 사명입니다.

사역자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이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과 은혜"의 복음도 함께 전해야 합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란 죄에 대한 책망과 더불어, "구원의 소망"과 "회복의 기쁨"을 함께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는 동시에, 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죄와 구원, 심판과 은혜"를 균형 있게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바울의 이 고백은 "사역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전함"으로써, 자신의 사역을 온전하게 완수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더 이상 에베소 교회를 떠나야 하는 시점에서, 마음의 평안과 사명 완수의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각자의 사역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전했는지, 혹시 빠뜨린 것이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주저함 없이,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참된 사명자로 설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행전 20장 27절은 사역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주저함 없이 전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과 은혜의 복음을 함께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남긴 이 고백은 오늘날 사역을 감당하는 우리에게도 큰 도전과 격려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선포하고, 그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사역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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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9. 15.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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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선을 행함의 인내와 약속

갈라디아서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우리에게 믿음의 삶에서 중요한 원리를 가르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 단순한 도덕적 의무를 넘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인내하는 믿음의 행위임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선을 행하다'라는 것은 단순한 친절이나 자비의 행위를 넘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모든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행은 때로는 지치게 만들고,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결과가 없을 때 우리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선을 행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그 선행이 결실을 맺을 시기가 반드시 온다는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는 종종 인내심을 시험받는 상황을 겪게 됩니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노력이 아무런 결과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느끼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의 시간표와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반드시 결실을 보게 된다는 약속이 이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바울의 이 말씀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성취나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는 때로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을 기대하며 선행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우리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게 합니다. 사람들의 평가나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선을 행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보고 계시며, 아버지의 때에 적절한 결실을 맺도록 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포기하지 아니하면'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육체적 포기를 넘어서, 마음의 지침과 영적 침체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우리는 때로 낙심하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릴 때, 혹은 우리의 선행이 헛된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순간에도 낙심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행이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한 행위 하나하나를 기억하시며, 그 결실을 반드시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인내와 신뢰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때로 즉각적인 성과를 보지 못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아버지의 때에 알맞은 열매를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흔들림 없이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구절은 공동체 속에서의 선행을 장려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위해,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서로가 낙심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하나님께서 주실 결실을 기대하며 함께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 함께 걷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피곤함을 덜어주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워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신실하게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하신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는 흔들림 없이 선을 행하는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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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9. 14.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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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

마가복음 11장 10절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가복음 11장 10절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다루는 장면에서 사람들의 환호와 외침을 기록한 구절입니다. 이들은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라고 외칩니다. 이 구절은 당시 사람들의 기대와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를 동시에 드러내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먼저 이 구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호산나"입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군중들의 외침은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구원을 갈망하는 깊은 소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으며, 메시아가 그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이 그들의 새로운 왕으로 군림하여, 잃어버린 다윗의 나라를 회복해줄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과 예수님이 실제로 오신 목적 사이의 차이입니다. 군중들은 정치적, 세속적인 메시아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차이가 예수님의 사역과 그분이 이끄는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라는 외침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기대를 보여줍니다.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수님은 분명 메시아의 혈통을 이어받으셨지만,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단순히 다윗 왕조의 재건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은 그 나라의 도래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으나, 그것은 세상의 방식으로 통치하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0절은 우리에게도 깊은 가르침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우리의 기대와 계획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황을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며, 때로는 세속적인 성공이나 평안을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호산나"라고 외칠 때, 그 외침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필요를 채워달라는 외침이 아닌,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시며 주님의 구원과 통치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나라를 세우시는 분이지만, 그 나라는 이 땅의 왕국이 아닌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통치를 신뢰하며, 주님의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마가복음 11장 10절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인정하고, 주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하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어,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주님의 왕 되심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호산나"를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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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4. 9. 13.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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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말씀칼럼] 제목: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사무엘상 16장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성경 사무엘상 16장 7절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구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이 구절은 사울 왕의 뒤를 이을 새로운 왕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을 보고 외모와 키에 따라 그들의 왕으로서의 자격을 판단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기준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십니다. 외모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기준이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깊은, 인간의 내면과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외적인 요소에 쉽게 치우치곤 합니다. 사회는 종종 성공, 지위, 외모, 재력 등 외적인 요소들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려 합니다. 이런 세상의 기준은 때때로 우리를 눈멀게 하여 진정한 가치를 놓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겉모습에 얽매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신 이유도 그가 겉으로 보기에는 어린 목동이었지만,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믿음과 순종,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용모나 키로는 왕의 자격을 갖추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의 내면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하라고 도전합니다.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을 멈추고,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시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는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또한, 이 말씀은 우리 자신에게도 큰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외적인 성공과 업적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중심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상태일까요? 겉으로는 종교적인 행위나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중심은 깨끗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외모나 업적에 상관없이 진정한 마음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그리고 자신을 바라볼 때도 외적인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의 진정한 가치를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늘 점검하고,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도 그들의 겉모습에 속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는 그들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라는 도전을 던집니다.

P.S: 진주충만교회

 

이미지 출처: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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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