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14절은 신약성경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오는 영원한 만족의 약속을 말합니다. 그가 주시는 생수는 육적인 물이 아니라 성령과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영생을 비유한 것입니다.
영원한 만족에 대한 이 약속은 특히 사람들이 물질적 소유물이나 일시적인 쾌락에서 성취를 추구하는 오늘날의 세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되고 지속적인 만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물이 우리의 육신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처럼 영적인 물은 우리의 영적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그것 없이는 우리는 항상 공허하고 불만족스러운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현재와 영원을 위해 우리를 위해 의도하신 충만한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김종민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 Sacrificial Love 마태복음 26장 7절 칼럼 - 여자의 사치스러운 사랑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태복음 26장 7절에 보면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녀는 식탁에 기대어 앉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사건 이상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의 문화와 맥락에서, 이 여인의 행동은 매우 파격적이고 비범한 일이었습니다. 값비싼 향유는 보통 중요한 의식이나 특별한 사람에게만 사용되었으며, 그녀가 이를 예수님께 부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얼마나 예수님을 귀히 여겼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사건을 목격한 제자들은 분개하며 불만을 표했습니다. "왜 이렇게 비싼 향유를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얼핏 보면 합리적인 주장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중요한 본질이 가려져 있습니다. 제자들은 향유의 세속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했지만, 이 여인은 그 가치 이상의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 여인의 행동은 단순한 사랑의 표현을 넘어 헌신과 경외심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물질적 재산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예수님께 경의를 표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계산적인 마음도 없었습니다. 이 행위는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전적인 헌신과 깊은 믿음을 상징하며, 그녀가 진정으로 깨닫고 있던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행동은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사랑과 경배의 표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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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제자들의 반응은 인간적인 사고방식과 영적인 통찰력의 차이를 선명히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현실적인 필요와 경제적인 효율성을 강조하며 여인의 행동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행동을 옹호하시며 "그녀가 내게 좋은 일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행위를 낭비로 보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녀의 사랑과 헌신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헌신이 세상적인 기준으로 평가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이 구절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헌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헌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합리적이거나 사치스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행동이 사랑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그 중심에 예수님이 계신지입니다. 우리는 이 여인의 사례를 통해 진정한 숭배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물질적, 감정적 자원을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드리는 것입니다.
그 여인의 행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안락한 지대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의 헌신이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의해 제한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녀의 행위는 우리가 사랑과 헌신을 표현할 때 세상의 기준을 초월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우리의 사랑은 어떠한 계산이나 논리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합니다.
결국, 이 여인의 사치스러운 사랑은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물질적인 가치로 측정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같은 사랑과 헌신이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낭비로 보일지라도, 주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헌신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드려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장 7절에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기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비유로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 즉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목자의 모습에서 출발합니다. 이 목자는 다른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서라도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시며, 이를 위해 기꺼이 찾아 나서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은 우리에게 각 개인의 가치와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일깨워 줍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누가복음의 이 가르침을 깊이 새기며 실천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 중에는 길을 잃은 양처럼 인생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먼저 다가가야 하며, 그들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르침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주변에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든지 간에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직장 동료, 이웃, 심지어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들까지도 우리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그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포용적이고 환영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그들이 교회 안에서 편안함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와 신앙을 멀리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와서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찾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항상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죄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은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가 돌아올 때 큰 기쁨으로 맞이하십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기쁨을 기억하며, 우리의 주변에서 신앙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지녀야 합니다. 비록 작은 노력일지라도, 잃어버린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늘의 천사들조차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쁨을 잃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는 기쁨은 단순한 감정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품으신 사랑의 깊이와,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매일의 삶 속에서 그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