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21절 칼럼n - 예수, 구원이라는 이름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세상에는 수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때로는 그가 감당해야 할 역할과 사명을 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천사가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을 이름 자체가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삶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마주합니다. 실수하고, 후회하며, 때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관 앞에서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를 이 상황에서 구원해 줄 사람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구원이란 종교적인 개념을 떠나, 우리 삶 속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구원이 필요한 이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원을 갈망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금전적인 도움을 원하고, 관계의 갈등 속에 있는 사람은 화해와 회복을 원합니다.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은 위로와 평안을 찾고자 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구원은 어디에서 올까요? 어떤 사람은 성공과 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지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만족과 평안을 가져다줄까요?
진정한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예수님의 이름이 의미하는 ‘구원’은 단순한 문제 해결을 넘어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외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내적인 문제로부터도 구원하고자 오셨습니다.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와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할 수 없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하고,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은 단순히 우리를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자유와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그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종교적인 틀을 떠나,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초대입니다.
구원은 선택이다:
예수님은 억지로 누구를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다만 초대하실 뿐입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 튜브를 붙잡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처럼, 구원도 개인의 선택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누구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외적인 문제로, 어떤 이는 내면의 상처로 인해 도움을 갈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뜻하는 ‘구원’은 그러한 갈망을 채우는 참된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할 때, 비로소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한 종교적 이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희망의 메시지이며,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초대입니다. 당신은 이 초대에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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