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시편 7편 12절 칼럼n - 회개의 기회: 준비된 하나님의 심판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시편 7편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그리고 그 가운데 담긴 회개의 기회를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오늘날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준비되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칼을 가시고 활을 당기셨다”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즉각적이고 필연적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심판의 무게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회개하지 아니하면”이라는 조건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원하시기보다 회개를 기다리십니다. 이는 마치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엄중히 경고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변화와 화해를 바라는 모습과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잘못을 저지르고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SNS에 올린 가벼운 사과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여기죠. 하지만 진정한 회개는 마음의 깊은 변화를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비판하며 상처를 준 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과, 그 비판의 뿌리에 있는 자신의 교만이나 질투를 인정하고 고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행동입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 깊은 회개를 말합니다.

반응형


하나님의 심판은 두려운 현실이지만, 동시에 그분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심판의 예비는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활은 당겨졌지만, 화살은 아직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간극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성경은 에스겔 33장 11절에서 하나님이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이 말씀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적용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환경 파괴, 사회적 불평등, 분열과 같은 집단적 죄를 마주합니다. 이를 외면하고 “내 탓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회개는 우리 모두가 책임을 느끼고 작은 행동이라도 변화에 동참할 때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일회용품을 줄이거나, 약자를 돕는 일을 실천하는 것은 공동체적 회개의 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

시편 7편 12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회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희망을 줍니다. 하나님의 칼과 활은 준비되었지만, 그분의 품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고, 진정한 변화로 나아갈 때입니다. 회개는 결코 끝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728x90
반응형

신명기 30장 15절 칼럼n - 삶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무게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매일 우리는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며, 그 선택들이 우리의 미래를 형성한다. 성경의 신명기 30장 15절은 이렇게 말한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이 말씀은 단순히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경고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삶의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구절은 선택의 본질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고, 그 자유는 생명과 복으로 이어지는 길과 사망과 화로 향하는 길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한다. 이 선택은 단지 종교적 맥락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비슷한 갈림길에 선다. 가족과의 시간을 우선할 것인가, 끝없는 업무에 몰두할 것인가? 타인을 배려하며 정직하게 행동할 것인가,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원칙을 저버릴 것인가? 이 모든 결정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결정짓는다.

현대 사회는 선택의 과부하 속에서 우리를 몰아넣는다. 정보가 넘쳐나고, SNS는 끊임없이 타인의 삶과 비교를 부추긴다. 이런 혼란 속에서 신명기의 말씀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기준을 제시한다. 생명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생명은 단순히 물리적 생존을 넘어, 의미와 목적이 충만한 삶을 의미한다. 복은 타인과 더불어 나누는 기쁨이고, 화는 이기심과 탐욕이 가져오는 파괴다.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가? 우리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가?

반응형


이 말씀은 또한 책임감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선택의 결과를 명확히 제시하며, 그 선택의 무게를 우리에게 맡긴다. 이는 무서운 일이지만 동시에 희망적인 메시지다.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라, 우리 삶의 주인공이다.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도, 언제나 돌아와 생명의 길을 택할 기회가 있다. 신명기는 바로 그 점을 상기시킨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새롭게 선택할 수 있다.

삶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신앙이 있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는 내면의 도덕적 나침반이 길잡이가 된다. 중요한 것은 멈춰 서서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택한 길은 어디로 향하는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가, 아니면 화를 불러오는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결국, 신명기 30장 15절은 우리에게 삶의 주도권을 쥐여준다. 선택은 어렵지만, 그 어려움 속에 삶의 깊이가 있다. 오늘 당신은 어떤 길을 택하겠는가? 생명과 복의 길로 한 걸음 내디뎌 보자. 그 선택이 당신과 세상을 바꿀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728x90
반응형

예레미야 33장 2절 칼럼n -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의 희망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예레미야 33장 2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이 말씀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드러내는 강력한 약속입니다. 이 본문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될 것이라는 희망을 우리에게 전하며,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모든 이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절망에 빠진 시기에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이 파괴되고, 나라가 무너진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를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로 소개하시며, 그분의 계획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삶은 종종 예측할 수 없는 고난으로 가득합니다. 건강 문제, 경제적 어려움, 관계의 갈등, 혹은 꿈이 좌절되는 순간들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이런 때, 우리는 “하나님은 정말 계시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33장 2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황을 아시고, 그분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일하고 계심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약속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약속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반응형


이 본문이 주는 공감의 핵심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의 약속은 깨지기 쉽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이 회복을 경험했듯,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확신하게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불확실성 속에 살아갑니다. 팬데믹, 기후 변화, 정치적 갈등은 우리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세우시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주십니다. 이 진리는 종교적 배경을 떠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모든 이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행동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정의를 실천하는 삶은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우리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도전입니다.

결국, 예레미야 33장 2절은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을 선포하며 우리에게 희망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는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그분의 약속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진리는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주며, 새로운 내일을 향한 용기를 줍니다.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든, 이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728x90
반응형

요한복음 4장 23절 칼럼n -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우리의 삶은 종종 바쁘고 복잡하다. 일, 관계, 책임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시간을 잃어버리곤 한다. 성경의 요한복음 4장 23절은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를 넘어, 우리의 마음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본질을 일깨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형식적인 의식이나 겉치레가 아닌, 깊은 내면의 헌신과 진실한 마음을 의미한다. 영은 우리의 마음과 성령의 감동이 하나 되는 순간을,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성품에 뿌리박힌 삶을 가리킨다. 예배는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정직하게 일하고,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 모든 순간이 예배가 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외적인 성공과 인정에 쉽게 매혹된다. 하지만 이 말씀은 우리에게 본질로 돌아가라고 초대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찾으신다. 예를 들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지친 마음으로 잠시 기도하며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순간, 그 단순한 행위가 바로 영과 진리의 예배다. 또는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는 선택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

반응형


이 말씀은 또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초대다. 예배는 특정한 장소나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젊든 늙든,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한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순간, 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시간, 직장인이 동료에게 보여주는 작은 친절—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의 모습이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오늘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가? 내 삶의 순간들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고 있는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분의 진리에 삶을 맞추는 시간을 가져보자.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찾으시며, 그 예배 속에서 우리와 깊은 교제를 나누고 싶어 하신다.

결국, 영과 진리의 예배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더 가까이 연결하고, 우리 안에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오늘, 당신의 삶의 한 순간을 예배로 드려보길 바란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며 그 예배를 기뻐하실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30. 18:42
728x90
반응형

시편 32편 8절 칼럼n - 하나님의 인도하심: 길을 잃은 이들에게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삶은 때로 예측할 수 없는 길로 우리를 이끈다. 직장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건강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방향을 잃고 방황한다. 이러한 순간, 시편 32편 8절은 깊은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혼자 두지 않으시며, 세심하게 인도하신다는 약속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어디서 살아갈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이러한 결정 앞에서 불안과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은 취업 시장의 불확실성에 압도당하고, 가정을 꾸린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은 우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아시고, 그분의 지혜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때로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과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즉각적인 답이나 명확한 신호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종종 침묵 속에서, 또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통해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 실패로 보였던 한 사건이 결국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줄 때, 우리는 뒤늦게 그분의 손길을 깨닫는다. 한 친구는 해고당한 후 절망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진정 원하던 일을 찾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 속에서도 길을 열어주신다는 증거다.

반응형


이 말씀은 또한 하나님의 “주목”에 대해 말한다. 이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를 살피시는 모습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지켜보듯, 하나님은 우리를 세심히 돌보신다. 이 사랑은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도 변함없다. 과거의 잘못이나 현재의 혼란으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구절은 새 출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오늘 우리를 새롭게 인도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을까? 먼저,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해야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지혜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교회나 소그룹에서 만난 한 사람의 조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완벽한 확신이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그분의 길이 드러난다.

시편 32편 8절은 우리 모두에게 공감되는 메시지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우리는 모두 길을 찾는 여정에 있다. 이 여정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동반자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주목하시고, 사랑으로 훈계하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오늘, 당신이 어떤 길에 서 있든, 이 약속을 붙잡으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29. 18:11
728x90
반응형

잠언 14장 9절 칼럼n - 죄와 은혜: 우리의 선택이 만드는 차이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이 성경 구절은 단순하면서도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와 정직함을 통해 은혜를 경험하는 삶 사이의 대비는,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공감되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말씀은 우리의 선택과 태도가 삶의 질과 관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죄’라는 단어를 무겁고 종교적인 개념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말하는 죄는 단순히 도덕적 규범을 어기는 것 이상이다. 이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신을 속이며, 잘못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친구의 신뢰를 저버리고도 “그저 실수였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순간, 우리는 미련한 자의 길을 걷는다. 이런 태도는 결국 관계를 망치고, 마음에 불안을 남긴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SNS에서 가벼운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상처 입히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죄를 심상히 여기는 태도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반면, 정직한 자는 잘못을 직시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정직은 단순히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을 넘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이런 태도는 은혜를 낳는다. 은혜는 용서, 화해, 그리고 관계의 회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실수를 저지른 동료가 솔직히 사과하고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어진다. 이는 은혜가 작동하는 순간이다. 정직함은 신뢰를 쌓고, 상처를 치유하며,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연결을 만든다.

반응형


이 구절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로를 제시한다. 잘못을 가볍게 여기며 자신을 속일 것인가, 아니면 정직하게 마주하며 은혜를 경험할 것인가. 현대인의 삶은 바쁘고 복잡하다. 우리는 종종 실수를 덮거나 변명으로 시간을 절약하려 한다. 하지만 잠언 14:9은 그런 선택이 결국 우리를 더 깊은 고립과 불안으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고한다. 반대로, 정직함은 처음에는 불편할지라도 결국 우리에게 자유와 평안을 가져다준다.

누구나 실수한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태도다. 친구에게 상처를 준 말을 했을 때,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에게 은혜를 경험하게 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혹은 내면에서 우리는 매일 이 선택의 순간을 만난다. 죄를 심상히 여기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할 때, 우리는 은혜의 길로 들어선다.

결국, 이 구절은 우리 모두에게 공감되는 보편적 진리를 전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삶은 어렵지만, 그 길 끝에는 은혜와 평화가 기다린다. 오늘,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미련한 자의 가벼움 대신 정직한 자의 은혜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하고 따뜻해질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28. 18:28
728x90
반응형

역대하 19장 7절 칼럼n - 공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다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종종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질문을 마주한다. 누군가는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또 다른 누군가는 권력이나 금전으로 특혜를 얻는다. 이러한 세상에서 성경 말씀인 역대하 19장 7절은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준다: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공정하신 성품을 드러내며, 우리에게도 공정한 삶을 요구한다.

공정함은 단순히 법적 정의를 넘어, 일상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선택에 스며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를 평가할 때, 우리는 그들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보는지, 아니면 개인적 호감이나 편견에 치우치는지 돌아봐야 한다.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특정인을 편애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치우침 없는” 삶을 살라고 촉구한다. 이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거나, 친한 이들에게 더 관대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정함을 본받는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뇌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뇌물은 단순히 금전적 뇌물을 넘어,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모든 유혹을 상징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는 아첨, 권력, 혹은 사회적 압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를 받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거나,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원칙을 저버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행동은 결국 우리의 양심과 신뢰를 무너뜨린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로도 타협하지 않는 정직함을 요구한다.

반응형


이 본문은 또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그분의 공의로운 기준을 따르려는 경외심이다. 이런 마음은 우리가 불공정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준다. 예를 들어, 사회적 불평등이나 차별을 목격했을 때, 침묵하거나 동조하기보다는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역사 속 많은 개혁가들은 신앙을 바탕으로 불의에 맞서 싸웠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인종차별에 맞서며 공정함을 외쳤고, 그의 신앙은 그를 불의 앞에서 굳건히 세웠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특정인을 편파적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공정함을 실천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학교, 직장, 가정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만든다. 예를 들어, 팀 프로젝트에서 소외된 동료를 포함시키거나, 친구들 사이의 갈등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공정함의 실천이다.

결국, 역대하 19장 7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정하신 성품을 반영하며 살아가라고 도전한다. 세상은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공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치우침 없이, 뇌물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작은 선택이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씨앗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한 걸음 더 공정함을 향해 나아가 보자.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4. 27. 18:49
728x90
반응형

갈라디아서 5장 16절 칼럼n -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갈등 속 자유로운 삶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무엇을 먹을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에서는 내면의 갈등, 즉 우리의 욕망과 가치 사이의 충돌이 우리를 괴롭힌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바울은 말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오늘날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지침을 제시한다.

‘육체의 욕심’은 단순히 물질적 탐욕이나 쾌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이기적인 충동, 분노, 질투, 혹은 불안처럼 우리를 얽매는 내면의 소리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의 성공을 질투하거나, SNS에서 타인의 삶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육체의 욕심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감정은 자연스럽지만, 방치하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관계를 망가뜨린다.

반면,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은 우리를 더 높은 차원의 자유로 초대한다. 성령은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상징하지만,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도 이는 양심, 사랑, 그리고 선한 의지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령을 따르는 삶은 우리의 충동을 억제하고, 대신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삶이다. 예를 들어, 화가 나는 상황에서 한 발 물러서서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 혹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따르는 실천이다.

반응형


이 말씀은 특히 현대인의 고질적인 문제인 ‘내면의 갈등’에 답을 준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와 싸운다. 더 성공하고 싶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고, 솔직하고 싶지만 상처 줄까 두렵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단순히 욕망이 아닌 더 큰 목적과 가치에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독교인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공감되는 메시지다.

실제로 이 원칙은 일상에서 적용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 친구가 나를 비판했을 때, 즉각적으로 방어하거나 반격하고 싶은 충동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를 따른다면, 잠시 멈추고 그 비판 뒤에 숨은 의도를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 친구는 나를 아껴서 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 발짝 물러서는 순간,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넘어 더 성숙한 대응을 할 수 있다.

이 칼럼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오늘 당신을 괴롭히는 내면의 소리는 무엇인가? 그것이 분노, 두려움, 혹은 탐욕이라면, 잠시 멈춰 성령의 인도함을 구해보자. 신앙이 있든 없든,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갈등 속에서도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바울의 이 말씀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러면 당신은 진정한 자유를 찾을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