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1. 22. 08:12
728x90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묵상]
마태복음 7장 14절 묵상 - 좁은 길의 의미를 새기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4절은 우리에게 좁은 길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이 짧은 구절은 신앙생활과 일상의 선택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세상은 종종 넓고 편안한 길을 제시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좁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도록 부르십니다. 이는 단순히 어려운 길을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길, 진리의 길을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좁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수하며, 때로는 세상의 가치와 충돌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때로는 외롭고, 힘들며,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주님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며 더욱 단단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좁은 길을 찾는 이가 적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 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은 우리를 끊임없이 흔들어 놓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좁은 길은 우리의 믿음과 신뢰를 시험하는 과정이며, 그 길을 끝까지 걷는 자만이 참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좁은 길을 걷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연결시켜 주며, 말씀 묵상은 우리의 삶에 영적 지침을 제공합니다. 또한, 공동체와의 교제는 신앙의 여정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신앙의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반응형


좁은 길은 우리에게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지만, 그 끝에는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걸으며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좁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고난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이웃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용기와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며, 좁은 길의 여정을 즐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좁은 길은 쉽지 않지만, 그 길 끝에는 예수님과의 영원한 동행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좁은 길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리 삶에서 좁은 길을 걸어가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2.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 있어 내가 더욱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삶을 본받기 위해 내가 변화해야 할 점들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3. 좁은 길을 함께 걸어갈 동역자는 누구인가요?
   신앙의 여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들과의 교제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보세요.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저를 좁은 길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 삶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본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항상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로 주님과 가까이 동행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모든 말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mc.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1. 21. 18:18
728x90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이사야 57장 19절 칼럼 - 평강의 하나님이 주시는 화평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화평의 메시지이며, 회복과 치료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말씀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입술의 열매: 말씀과 화평의 시작 -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만드시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적이고 능력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의 삶에 평강을 창조하십니다. 우리의 입술 또한 하나님의 평강을 반영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평화를 이루고, 화합을 이루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말이 상처를 주고 분열을 일으키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의 언어를 심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2. 평강: 가까운 자와 먼 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가까운 자와 먼 자 모두에게 평강을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가까운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운 이들을, 먼 자는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이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사람만을 위한 평강이 아닌, 온 인류를 위한 평강을 원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구원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교회 안에서든, 세상 속에서든 이 평강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응형


3. 치료와 회복: 평강의 완성 - 하나님은 단지 평강을 약속하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치료와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과 깨어진 관계, 병든 육체를 고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평강은 단순한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회복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아시고, 이를 치유하시며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 57장 19절은 하나님의 평강이 어디에나 임할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이는 단순한 위로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며,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의지해야 할 진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평강을 받는 자로서, 그것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 평강의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시다.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생각하며,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치료와 회복이 우리의 삶 속에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구절강해2025. 1. 21. 14:17
728x90
반응형

김 목사의 구절강해]
베드로전서 4장 14절 강해 - 고난 속에서도 주어지는 복

제목: 고난 속에서도 주어지는 복
본문: 베드로전서 4장 14절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고난과 핍박을 피할 수 없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진리를 따르며 살아가려 할 때, 세상은 우리를 대적하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고난을 단순히 견디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복이 있다는 놀라운 진리를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 4장 14절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하는 고난 속에서 우리가 받는 영적인 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고난 속에서도 주어지는 복"이라는 주제로 세 가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1. 고난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나타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14절 전반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당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깊이 연합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시며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5:18-20)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우리가 주님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을 때, 이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는 증거입니다.

-관주: 마태복음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며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 빌립보서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반응형


-적용: 고난을 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고난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대적할수록 우리는 더욱 예수님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예수님께서 이미 걸으셨던 길을 따라가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2.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기회입니다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4절 후반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의 위로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박해를 받을 때, 그들의 태도와 담대함은 성령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다는 증거였습니다. (사도행전 4:13)

-관주: 고린도후서 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 로마서 8: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적용: 우리의 삶에서 고난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드러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킬 때,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십니다.

3. 고난은 영원한 상급의 약속을 보장합니다

고난은 일시적이지만, 그 결과는 영원합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고난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하며, 이는 단지 현재의 고난을 넘어서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의 소망을 붙잡게 하고, 이 땅의 일시적인 즐거움에 얽매이지 않도록 합니다.

-관주: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 히브리서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적용: 현재의 고난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하늘의 상급을 소망하며 믿음을 굳게 지킵시다. 우리의 고난이 하나님 앞에서 헛되지 않음을 기억하며, 영원한 나라를 위해 인내하며 나아갑시다.

결론[Conclusion]:

베드로전서 4장 14절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이 단순한 불행이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오히려 그 고난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이며, 영원한 상급을 보장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성령님의 임재 안에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지만, 그 시험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욱 정금같이 단련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을 단순히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 고난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감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도 주어지는 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믿음을 굳게 지키며 주님과 동행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을 축복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cg.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1. 21. 06:14
728x90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묵상]
골로새서 3장 15절 묵상 - 평강의 다스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이 구절은 신앙 생활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평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평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골로새서 3:15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 - 평강, 하나 됨, 그리고 감사 - 를 통해 우리의 신앙 생활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1. 평강의 주권 - 골로새서 3:15의 첫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장하다'는 단어는 본래 헬라어로 '심판하다, 통치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감정, 생각, 행동을 그리스도의 평강이 다스리게 하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상황에서, 우리의 마음이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찰 때,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진정시켜 주고, 평안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2. 하나 됨을 위한 부르심 - 구절의 중간 부분에서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자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배경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평강 안에서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랑으로 하나 됨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 됨은 단순히 외적인 일치가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깊은 일치를 의미합니다.

반응형


3. 감사하는 자가 되라 - 마지막으로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평강을 누리고, 하나 됨을 경험할 때, 자연스럽게 감사의 마음이 생깁니다. 이는 단순히 말로만 하는 감사가 아닌, 우리의 삶 전체에서 드러나는 감사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며,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15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며,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매일 이 구절을 묵상하며,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충만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하나 됨을 이루며,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통해, 골로새서 3:15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이는 우리를 더욱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며, 평강과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필요합니까?
2. 교회 공동체나 가족 안에서 내가 하나 됨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3.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가득 채워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마다 평강을 경험하며, 교회와 가정 안에서 하나 됨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또한,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항상 당신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mc.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2025. 1. 20. 18:06
728x90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골로새서 3장 14절 칼럼 - 사랑의 띠로 온전하게 되라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로새서 3장 14절은 우리 신앙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이 말씀은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신앙과 공동체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고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데 필수적임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선택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는 가장 핵심적인 속성입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사랑은 단순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하나님을 반영하는 본질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골로새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신앙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등 여러 덕목을 나열합니다. 그러나 14절에서 그는 이 모든 덕목을 하나로 묶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랑은 이 모든 덕목의 완성이며, 그것이 없이는 모든 덕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사랑이 "온전하게 매는 띠"라는 표현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로, 사랑은 모든 관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연결고리입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 직장, 그리고 친구 관계 안에서 진정한 하나됨은 사랑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갈등과 오해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능력은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둘째로, 사랑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는 데 필수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규칙과 행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그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반응형


오늘날의 세상은 분열과 갈등이 만연합니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가 사람들을 갈라놓고, 개인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공동체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사랑의 본을 보이고 사랑으로 묶인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보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때로 어려운 선택이기도 합니다.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품으며, 내 이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일은 우리의 본성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5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부어졌다고 말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4절은 우리에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켜 주며,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사랑의 띠로 묶여 하나 될 때,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실천하며 성장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맡겨진 관계와 상황 속에서 사랑을 선택합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온전하게 매는 띠가 되어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하나로 묶고,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증거가 되게 합시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cg.

 

이미지 출처: 갓피플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1. 20. 06:02
728x90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묵상]
요한복음 13장 34-35절 묵상 - 사랑의 새 계명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이 새 계명은 단순히 사람들 간의 사랑을 넘어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 없이, 끝까지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라고 부름받았습니다. 이는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일 수 있지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 사랑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보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반응형


하지만,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는 상처받고, 실망하고, 화를 낼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와 이해,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3:34-35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사랑의 행동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은 친절한 말 한마디, 도움의 손길, 따뜻한 미소가 누군가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됨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이 세상 속에서 빛나도록, 오늘도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 새 계명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구현되기를 소망하며,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을 어떻게 내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가?
2.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3. 내 주변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과 친절을 실천할 수 있을까?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친절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내 주변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세상에 빛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mc.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김 목사의 말씀묵상2025. 1. 19. 05:41
728x90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
고린도전서 13장 12절 묵상 -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은 사도 바울이 사랑의 본질과 그 깊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비유로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이 구절은 우리의 현재 영적 상태와 미래의 완전한 지식을 대비시키며, 신앙의 길에서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라는 부분은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영광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거울은 현대의 맑고 투명한 거울이 아닌, 흐릿하게 비추는 청동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불완전하고 흐릿한 이미지로 현실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고 말하며,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직접 하나님을 대면하게 될 때,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임을 예언합니다. 그 때에는 더 이상 흐릿하고 불완전한 이미지가 아니라, 마치 친구를 대면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의 목표이며,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또한 바울은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의 현재 지식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며, 완전한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퍼즐 조각들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아시듯이, 우리도 그 때에는 모든 것을 완전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반응형


이 구절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큰 위안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불완전함이 미래의 완전함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2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현재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미래의 완전한 지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현재의 희미한 이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신뢰하며, 장차 올 영광스러운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여정인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흐릿하게 보고 있는가?
2. 미래에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될 때, 나의 믿음과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3. 현재 내가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지만, 그것이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기도합시다:

사랑과 은혜의 주님, 우리의 눈을 밝혀 주셔서 지금 흐릿하게 보이는 주님의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소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가득 채워 주시고, 장차 주님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그 날을 소망하게 하소서. 우리가 현재 부분적으로 알더라도, 그 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따르게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mc.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
728x90
반응형

김 목사의 말씀칼럼]

로마서 8장 9절 칼럼 -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의 비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은 우리 신앙의 중심을 꿰뚫는 중요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분명히 정의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의 의미와 그 열매를 깊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로마서 8:9은 성령의 임재가 그리스도인의 본질임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이라는 조건을 제시하며, 성령이 없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행위나 도덕적 규범을 따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성령의 내주로부터 시작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원천이 됩니다.

둘째,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은 육신을 따르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라는 말씀은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이 단순히 영적인 영역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삶의 방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육신은 성령을 거스르는 본성적인 욕망과 세상의 유혹을 상징합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대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갑니다. 이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선택의 기준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삶입니다.

반응형


셋째,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의 열매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은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강조합니다. 성령은 단순히 우리를 그리스도께 속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갈라디아서 5:22-23).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증거이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결론적으로, 로마서 8:9은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성령은 단순한 영적 경험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 안에 거하며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자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매일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cg.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728x90
반응형
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