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영생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갖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 소유, 사회적 지위, 세상적 성취에 초점을 둡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성취와 영생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우선시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구축하려면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교회에 참석하고, 그분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발전시키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의 변화시키는 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영생의 열쇠는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데 있습니다. 영적인 여정을 우선순위에 두고 그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이 생에서 진정한 성취를 경험하고 다음 생에서 영생의 약속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김종민 목사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는 단순히 따뜻한 권고나 좋은 덕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 새로운 계명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서로에게 나누며 살아가도록 부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적이고, 사심이 없으며,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단순히 말로만 사랑을 전한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의 안락과 안전을 뒤로하고 낮은 자리에 서서 섬기셨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사랑은 계산적이지 않으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랑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우리와 비슷한 배경,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주님은 나와 다르고,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는다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이 이기적인 욕망이나 편리함을 넘어,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고려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희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때로 마음이 아프고 힘들 수 있습니다. 친절과 연민을 베푸는 일이 때로는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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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를 넘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은혜와 화합, 그리고 평화로 가득 찬 공동체를 만들어갑니다. 서로를 미워하거나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짐을 나누고 함께 기뻐하며 슬픔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야 할 사랑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이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때, 그 사랑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이 새 계명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갑시다.
요한복음 13장 1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그들에게 “그러므로 내가 너희 주 곧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서로에게 그와 같이 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이 봉사 행위는 겸손의 상징이었으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도력과 봉사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그것을 사용하셨습니다.
겸손은 성공이 종종 권력, 부, 지위로 측정되는 우리 사회에서 종종 과소평가되는 자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범은 진정한 위대함은 다른 사람을 겸손하게 섬기고 우리 자신의 필요보다 그들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돌보기 위해 가장 비천하고 비천한 일도 기꺼이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기회를 찾음으로써 겸손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자원봉사하거나 단순히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동정심을 나타내는 것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다른 사람의 필요를 우선시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제쳐두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는 행위는 섬김을 받는 사람과 섬기는 사람 모두에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연결하고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 모두가 제공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감사와 겸손함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종종 개인주의와 자기 홍보를 강조하는 세상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모범은 겸손과 봉사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상기시켜 줍니다. 그분의 모범을 따르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기회를 모색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참으로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김종민 목사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참으로 불확실성으로 가득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가 남아 있는가 하면, 경제적 불안정과 정치적 격변, 기후 변화까지 더해지며 일상의 안정과 평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기대어 힘을 얻어야 할까요? 시편 20편 7절은 이에 대해 강력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를,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노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어떻게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를 지탱할 수 있는지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이 구절에서 '병거'와 '말'은 인간의 힘과 물질적 소유물의 상징입니다. 당시 병거와 말은 군사력의 척도였고, 이는 곧 안전과 승리를 보장하는 요소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모든 것을 의지하기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보다 더 크신 분을 의지하는 것이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아버지의 능력에 기대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이러한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람들이 권력과 돈, 명성, 영향력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시대와 구약 시대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물질적 자산이나 세속적인 힘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은 하나님 안에만 있습니다.
신뢰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변치 않는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내적 힘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세상의 부와 권세, 혹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더 큰 계획과 섭리를 따라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이 신뢰는 막연한 신비나 공상 속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삶의 도전 속에서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실제적 힘입니다. 불확실한 시대의 도전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이 힘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신뢰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고난의 때에도 우리를 인도하는 이정표가 되어줍니다.
또한, 시편 기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께 의지할 때 비로소 진정한 평안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힘과 자원을 쌓지만, 그것들이 진정한 평안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돈이 많으면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혹은 지위나 명성을 가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합니다. 그러나 돈과 권력으로는 질병과 죽음을 막을 수 없으며,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평안과 안전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통제권을 넘겨드릴 때, 우리는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 안에서 안전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모든 일을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우리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게 하며,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게 합니다. 이는 마치 거센 바람이 부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지만, 강력한 닻을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배와도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불확실한 시대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힘입니다. 이는 일종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이며 우리 삶의 중심을 잡아 주는 근본적인 힘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지라도 삶의 도전을 품위와 존엄성으로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힘이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시편 기자의 권면대로, 이 시대에 우리가 의지할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의지하며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립시다.
시편 13편 5절에 “나는 주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큰 고통의 순간에 다윗 왕이 한 이 말은 가장 암울한 시기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안에서 희망과 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상기시켜 줍니다.
인생은 질병과 상실에서부터 재정적 어려움과 관계 문제에 이르기까지 시련과 환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 앞에서 압도당하고 절망감을 느끼며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를 위해 계시는지 의문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편 13편 5절이 우리에게 보여 주듯이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항상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문제가 마술처럼 사라지거나 고통과 괴로움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계속 나아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회복력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고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절망적이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약속을 붙잡는 것은 생명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함으로써 우리는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평화와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 왕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신뢰하며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기뻐합시다. - 김종민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 마태복음 26장 40-41절 칼럼 - 기도와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앞두고 제자들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실 때의 장면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도 자신과 함께 깨어 있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하러 가신 동안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러 가셨다가 돌아오셨을 때, 제자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시고는 실망감을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이 그 시점에서 직면하고 있던 영적 도전과 앞으로 다가올 시험에 대비하라는 경고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연약한 육체와 의지의 한계를 이해하고 계셨지만, 동시에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됨으로써 영적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기도와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이라는 제목은 이 구절의 핵심 메시지를 잘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유혹과 시험이 다가올 때 이를 대비하는 방법으로 깨어 기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의무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우리를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영적 방패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인간적인 한계를 이해하시면서도,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기도에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 구절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다양한 유혹과 시험에 직면합니다. 물질주의, 관계 문제, 도덕적 타락 등으로 인해 우리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기도와 경계심을 통해 이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항상 깨어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도록 돕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깨어 있음은 단순히 신체적으로 잠에서 깨어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준비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다가올 영적 도전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할 때, 우리는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기도와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이 부르심은 단순한 권고가 아닌, 신앙 생활의 본질적인 원리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힘에 의지하며, 아버지의 보호하심 속에서 우리의 영적 싸움을 이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연결과 의존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와 깨어 있음은 단순히 과거의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 부르심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서 예수님은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구절은 고통과 죽음을 의미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 예수님이 직면한 투쟁을 강조합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인간이었고 희생에 따른 두려움과 고통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 구절은 자신의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한 현대 성도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위로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관계나 진로와 같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모범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고통을 가져오더라도 궁극적으로 올바른 선택임을 가르쳐줍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선택하셨고, 그렇게 하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려움과 결정에 직면할 때 예수님이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모든 단계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힘과 인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은 항상 우리의 궁극적인 선을 위한 것임을 믿을 수 있습니다. - 김종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