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피곤하지 아니하며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급변하는 세상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은 종종 약점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실제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내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은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지치거나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끈기 있게 기다릴 때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을 경험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일깨워 줍니다. 항상 쉽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면 그분이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김종민 목사
김 목사의 말씀칼럼] 마태복음 23장 12절 칼럼 - 자아로 가득 찬 세상에서 겸손의 중요성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23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대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 구절은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과도하게 높이려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자아와 교만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소셜 미디어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때로는 부풀려진 자아를 세상에 쉽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전시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경쟁합니다. 아름다운 사진과 성공적인 순간을 공유하며 누군가의 ‘좋아요’와 댓글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그 결과, 외형적인 성공과 인정이 삶의 중요한 목표로 자리 잡으면서, 허영심과 자기 홍보가 미화되는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3장 12절이 지적하듯이, 이러한 자기 과시는 결국 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과 이미지를 높이려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외면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좁은 세계에 갇혀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 즉 사랑, 겸손, 공감,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놓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반대로 겸손은 우리에게 삶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타인의 도움과 기여를 감사히 여깁니다. 이는 단순히 인격의 미덕일 뿐 아니라, 관계를 강화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고, 이를 통해 더 깊은 관계를 맺게 합니다.
겸손은 또한 진정한 성취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자기 자랑과는 달리, 겸손한 태도는 타인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얻게 하며, 하나님께서도 그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이러한 겸손의 열매는 단기적인 만족을 넘어 장기적인 성공과 평안을 가져옵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자아를 중시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3장 12절은 우리에게 더 깊은 진리를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사람은 스스로 낮추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고, 일상 속에서 겸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을 과시하기보다 타인의 필요에 귀 기울이고, 인정받으려 애쓰기보다 조용히 섬기는 삶을 선택해 보십시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를 참된 높임으로 이끄시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에 대한 예수님의 동정심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를 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 짧은 구절에는 예수님의 마음속 깊은 사랑과 연민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과 메시지의 중심에는 항상 연약한 자들과 상처받은 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동정심의 표현 이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사람들의 고통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행동으로 주님의 긍휼을 실천하셨습니다. 질병을 치유하시고, 굶주린 자를 먹이시며,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주님의 긍휼은 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긍휼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종종 개인주의와 경쟁 중심의 문화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로 인해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그것을 간과하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을 묵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직시하고 우리의 손과 발을 사용하여 돕는 것이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느끼셨던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단순히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그들의 본질적인 상태를 보셨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이라는 표현은 보호받지 못하고 방향을 잃은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이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마음의 안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진정한 위로와 사랑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경청하는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보셨고 그들의 아픔을 들으셨습니다. 우리도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주는 것이 때로는 더 큰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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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작은 실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이 모여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많은 사람을 먹이신 것처럼, 우리의 작은 선행도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커다란 긍휼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셋째, 끊임없이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은 때로 우리의 선행을 의심하거나 우리의 의도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사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조건 없이 베풀어졌으며, 우리도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단지 우리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긍휼과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존재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특히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하는 모습은 예수님의 복음을 가장 생생하게 증거하는 방법입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은 우리에게 연민의 깊은 본질과 그 연민이 실천으로 이어질 때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군중을 보며 그들의 고통을 인식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직접 행동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긍휼은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친절에서부터 진정한 희생적 사랑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긍휼을 기억하며,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과 연민을 나타내도록 노력합시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믿으며 말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마태복음 5장 44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학대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도전하십니다. 이것은 갈등과 불일치가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 세계에서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이 계명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우리의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동의하거나 그들의 행동을 묵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이 받을 자격이 없을 때에도 친절과 존경심으로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그들을 용서하고 우리가 그들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분노나 비통함을 놓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원수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하게 합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를 구합니다.
분열과 미움이 만연한 세상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름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여 화평케 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 사랑의 대사가 되기를 힘쓰십시다. - 김종민 목사
시편 23편 3절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우리 영혼을 치유하고 새롭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회복의 능력에 대해 말합니다. 오늘날의 급변하는 세상에서는 삶의 요구에 압도되어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영적 건강을 소홀히 하여 탈진, 불안, 우울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시편 23편은 우리의 행복을 돌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그분께 돌이킬 때 그분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 예배, 성경 읽기를 통해 우리는 인생의 도전에 맞서는 데 필요한 평안과 힘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복잡한 현대 생활을 헤쳐 나갈 때 영적 건강을 우선시하고 하나님의 회복 능력을 구해야 함을 기억합시다. 우리를 의와 갱신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을 신뢰하기 바랍니다. - 김종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