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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8편 15절 칼럼n - 기쁨의 소리, 어디에서 오는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기쁨을 찾고자 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좇는다. 어떤 이는 성공과 부를 통해, 어떤 이는 가족과 사랑을 통해, 또 어떤 이는 명예와 인정을 통해 기쁨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기쁨을 찾았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여전히 그것을 찾기 위해 헤매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다면 진정한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고대 문헌인 시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의인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시편 118:15). 이는 단순한 감정적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의 소리’는 외부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깊은 내면의 환희다. 그런데 왜 굳이 ‘의인의 장막’에서 기쁨이 난다고 했을까?

현대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사람들의 내면은 점점 더 공허해지고 있다. 첨단 기술이 발달하면서 삶은 편리해졌지만, 정작 인간관계는 소원해졌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문화는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SNS에는 미소를 짓는 사진들이 넘쳐나지만, 그 이면에는 비교와 불만, 그리고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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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8편은 단순한 종교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인간이 경험한 삶의 진리를 담고 있다. 이 구절에서 ‘의인의 장막’은 단순히 어떤 특정한 장소나 공동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마음의 상태’이다. 자신의 삶을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가며, 타인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기쁨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기쁨은 외부 환경이 어떠하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진정한 기쁨은 나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세상의 기준에 따라 성공을 좇으며 쉴 새 없이 달리다 보면, 기쁨은 점점 멀어지고 초조함만 남는다. 반대로,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구원의 소리’란 단순한 종교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마음이 회복될 때, 상처받은 영혼이 다시 살아날 때, 희망을 잃었던 사람이 새롭게 일어설 때 들리는 소리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기쁨을 찾고 있는가?
기쁨을 좇아 끝없이 달리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쁨이 과연 오래 지속될 것인지. 의로운 삶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며, 사랑을 베풀고,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 그렇게 살아갈 때, 당신의 삶에서도 ‘기쁨의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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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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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21절 강해 - 예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자

제목: 예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자
본문: 마태복음 1장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Yehoshua)"에서 유래하며,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명과 역할을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이름이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관주: 출애굽기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 이름은 단순한 칭호가 아니라, 주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단순한 종교적 개혁이 아니라,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성취입니다.

-적용: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한 종교 지도자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참된 구원을 경험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2.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며,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존재입니다(로마서 3:23).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어떠한 선행이나 율법의 준수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관주: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이사야 64:6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예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습니다.

-관주: 히브리서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요한일서 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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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3.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삶

예수님의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할 때, 참된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관주: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수님의 구원을 받은 자는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며,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관주: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로마서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적용: 우리는 구원을 받은 자로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빛을 드러내야 합니다.

결론[Conclusion]:

마태복음 1:21에서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고, 주님의 구원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로서 죄를 떠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하고 계시며, 그 구원의 은혜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구원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삶이 주님께 온전히 드려지기를 소망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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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4장 15절 묵상n - 선택의 순간: 당신은 누구를 섬길 것인가?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립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와 같은 사소한 것부터 직장, 관계, 가치관과 같은 중요한 문제까지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선택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들에게 중요한 선택을 요구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과거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선택지 앞에 서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오직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종교적인 선택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문제였습니다.

1.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며 살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신앙을 떠나더라도 ‘무엇을 의지하며 살 것인가’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삶의 중심이 되고, 어떤 사람은 성공이 유일한 목표가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은 타인의 인정이나 명예를 좇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변하고 사라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돈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고, 성공은 영원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평가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선택은 ‘변하는 것’을 의지할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을 의지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2. 선택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강제적인 신앙이 아니라 자유로운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삶의 길에서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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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신앙을 강요받는 것처럼 느낄 때 거부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처럼 조종하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도록 존중하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에 따른 결과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3. 나와 내 집은 누구를 따를 것인가?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선택을 요구했지만, 자기 자신의 입장은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는 다른 사람들의 결정과 상관없이 자신과 자신의 가정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확고히 선언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주변 환경이나 여론에 따라 삶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선택은 타인의 의견이 아니라 스스로의 신념과 확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호수아처럼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결론: 당신은 누구를 섬길 것인가?  
여호수아의 외침은 단순히 종교적인 권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근본적인 방향과 가치를 결정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 것인가? 변하는 것을 좇을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당신은 누구를 섬길 것입니까?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현재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은 변하지 않는 가치인가, 아니면 변할 수 있는 것인가?
2. 하나님은 나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선택을 해왔으며, 그 선택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3. 여호수아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선언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그 결단을 실천할 수 있을까?

기도합시다:

하나님, 제 삶 속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소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저와 제 가정이 여호수아처럼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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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