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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장 9절 칼럼n - 어둠 속에서도 빛을 지키는 힘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이 구절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위로의 메시지일 수 있지만, 종교적 배경을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때로는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 구절은 그런 순간에도 내면의 선함과 정의가 결국 승리한다는 믿음을 전하며, 인간의 한계와 그 너머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먼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상징으로 읽힌다. 우리는 살면서 부당함을 겪거나, 약한 이들이 짓밟히는 모습을 볼 때 분노와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구절은 그런 상황에서도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힘이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예를 들어, 역사 속에서 억압에 맞서 싸운 인물들-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혹은 이름 없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물리적 힘이 아닌 도덕적 신념으로 세상을 바꿨다. 그들의 발걸음은 흔들렸을지언정, 결국 보호받고 승리했다는 점에서 이 구절과 닿아 있다.

반면,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는 잘못된 길을 걷는 이들이 언젠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대가를 마주하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종교적 심판이 아니라 인과응보의 자연스러운 원리다. 현대 사회에서도 권력이나 돈으로 약자를 억누르는 이들이 결국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본다. 금융 사기나 부패 스캔들로 몰락한 기업가들, 혹은 폭력을 일삼다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는 이 구절이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어둠은 그들의 행위를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히 그들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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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라는 결론이다. 이는 물리적 힘이나 외적인 조건이 삶의 승패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강렬한 선언이다. 우리는 종종 성공을 돈, 지위, 혹은 체력으로만 측정하려 하지만, 진정한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 병상에 누워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환자, 가난 속에서도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 혹은 재난 속에서 이웃을 돕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진리를 증명한다. 그들은 근육이나 무기가 아니라 마음의 강인함으로 이겨낸다.

이 구절은 신앙이 없어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인간이 보편적으로 갈망하는 희망과 정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불공평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선한 이들이 흔들리지 않고, 악이 영원히 승리하지 않으며, 진짜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는 믿음은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된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선명해진다. 이 단순하면서도 깊은 진리는 오늘도 우리 발걸음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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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9절 강해 -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과의 만남

제목: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과의 만남
본문: 마태복음 28장 9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태복음 28장 9절은 예수님의 부활 후 제자들과 여인들이 만나는 감동적인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평안하냐"라는 인사로 여인들을 맞이하시고,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오는 평안과 경배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포인트를 살펴보고, 관련 성경 구절을 통해 깊이 묵상하며,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평안의 인사 (마 28:9a - "평안하냐 하시거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여인들에게 "평안하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인사는 단순한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인류에게 참된 평안을 주셨음을 상징합니다. 당시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두려움과 슬픔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관주: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는 마음에 평안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부활의 승리가 가져오는 평안의 근거를 보여줍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혼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분이 주시는 영원한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예수님의 "평안하냐"라는 음성을 기억하며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2. 여인들의 반응: 예배와 헌신 (마 28:9b -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여인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그분의 발을 붙잡고 경배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단순한 스승이 아닌,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 행동입니다. "발을 붙잡는다"는 표현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으려는 간절함과 헌신을 나타내며, "경배"는 그분께 온전한 존경과 예배를 드리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관주: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서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그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경배했던 모습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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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때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여인들처럼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 경배하며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삶으로 인정하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3. 만남의 목적: 복음 증거로의 부르심 (마 28:10 연결)

마태복음 28장 10절에서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여인들의 만남이 단순히 개인적인 위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관주: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증거는 복음 전파의 시작입니다.

-적용: 예수님을 만난 우리는 그분의 평안을 누릴 뿐 아니라, 그 평안을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말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마태복음 28장 9절은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오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하냐"라는 음성으로 다가오시며, 우리의 두려움과 슬픔을 평안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여인들은 그 만남 속에서 경배와 헌신으로 응답했고, 결국 복음의 증인으로 세상에 파송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그분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세상 속에서 그분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평안하냐"라고 물으신다면, 어떤 응답을 드리겠습니까? 그분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며, 그 평안을 세상에 전하는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구하며, 우리의 삶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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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32절 묵상 -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깊이 있는 가르침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의 문장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약속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 그리고 이 자유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단순히 사실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즉, 진리는 한 인격,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과 사랑입니다. 이 진리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마음과 삶으로 받아들이고 체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진리”를 제시합니다. 광고, 이념, 철학, 그리고 개인의 욕망은 각기 다른 형태로 진리임을 주장하며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종종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속박에 묶이게 합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기준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속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눈을 열어 참된 삶의 목적을 보게 합니다.

진리가 주는 자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은 자유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자유는 종종 외적인 제약의 제거나 개인의 욕망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훨씬 더 깊고 내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죄와 두려움, 죽음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요 8:34). 죄는 우리를 얽매고,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리를 알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 사랑과 용서를 통해 죄에서 풀려납니다. 이 자유는 단순히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거짓된 약속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담대함을 줍니다.

진리를 아는 과정

진리를 안다는 것은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8장 31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며, 그분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는 여정입니다. 이는 기도와 묵상, 그리고 순종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때로 이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진리를 왜곡하고, 우리의 연약함은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며, 우리의 편견과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진리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우리를 자유의 길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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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진리를 살아가기

이 말씀은 단순히 묵상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거짓이 만연한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진리가 주는 자유를 실천하는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한, 진리의 자유는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세상의 판단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굳게 설 수 있게 합니다. 이 자유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과 도전을 동시에 줍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죄와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자유는 단순히 나만의 해방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진리를 더 깊이 알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며, 그 진리가 우리를 온전히 자유롭게 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에게 진리란 무엇인가?
 - 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얼마나 깊이 알고 있으며, 그것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세상의 거짓된 진리에 비추어 내가 속박되어 있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자.

2. 진리가 나를 어떻게 자유롭게 하는가?
 - 예수님의 진리를 통해 내가 경험한 자유는 무엇이며, 아직도 죄나 두려움에 묶여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3. 내 삶에서 진리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 오늘 하루, 혹은 이번 주에 내가 진리를 말하고 행하며 다른 이들에게 자유를 나누는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 수 있을까?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주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아갑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참된 진리를 알게 하시고, 그 진리가 저를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시길 간구합니다. 저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 자유를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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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편 7절 칼럼n - 의로움과 정직이 가져오는 빛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 11편 7절의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구절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이 구절은 의로움과 정직이라는 가치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이 말씀은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도덕적 나침반과 연결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마음을 일깨운다.

의로움은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을 넘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공정하게 행동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예를 들어, 길에서 주운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행위는 작은 의로움의 실천이다. 이런 행동은 종교적 믿음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선하다고 느끼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때로 불공정하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의로운 선택은 그 속에서 빛을 발한다. 시편의 이 구절은 의로움이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에게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가져온다고 말하는 듯하다.

정직은 의로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정직한 사람은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때로 실수를 감추거나, 더 나아 보이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정직은 결국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친구에게 실수를 솔직히 고백했을 때 오히려 신뢰가 깊어졌던 경험, 혹은 직장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함으로써 오해를 풀었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정직은 관계를 단단히 하고, 마음에 평온을 준다.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라는 표현은 신앙 안에서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일 수 있지만, 더 넓게는 정직함으로 자신과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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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약속하는 보상에 있다. 의로움과 정직을 실천하는 이들은 ‘그의 얼굴을 본다’는 희망을 품는다. 이는 신앙적인 맥락에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하지만, 일상에서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과의 진실한 연결을 경험하는 순간들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를 돕고 나서 느끼는 뿌듯함,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화해했을 때의 따뜻함—이런 순간들이 바로 ‘얼굴을 보는’ 경험 아닐까.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런 감정은 삶의 의미를 더해준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의로움과 정직은 때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선택으로 보인다. 경쟁이 치열하고, 성공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듯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은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은 그런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상기시킨다. 의로움과 정직은 단기적인 이익을 넘어, 우리 삶에 깊은 울림을 준다. 타인에게 신뢰를 주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힘은 어떤 물질적 보상보다 강력하다.

결국, 시편 11장 7절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얼마나 의롭게, 정직하게 살고 있는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매일 작은 선택 속에서 조금 더 나은 방향을 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다. 이 말씀은 종교적 경계를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선한 삶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의로움과 정직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초석이다. 그러니 오늘, 단 한 번이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보자. 그 순간, 우리는 모두 ‘그의 얼굴’을 조금씩 보게 될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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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9절 강해 - 죄의 자백과 하나님의 용서

제목: 죄의 자백과 하나님의 용서
본문: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성경 1요한 1장 9절은 하나님의 용서와 깨끗하게 하심에 대한 놀라운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말씀은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은혜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 구절을 세 가지 요점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관련 성경 구절을 통해 깊이 이해하며,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1. 죄의 자백: 우리의 책임

첫 번째 요점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이라는 조건입니다. 여기서 "자백"은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죄를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관주: 시편 32:5 -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백하리라 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다윗은 죄를 자백한 후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자백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적용: 우리는 일상에서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정직한 자기 성찰과 회개를 촉구합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고백할 죄가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2.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 용서의 근거

두 번째 요점은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라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시며, 동시에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이 의로움은 우리의 죄를 그냥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정당하게 해결하심을 의미합니다.

-관주: 로마서 3:25-26 -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죄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으니." 하나님의 용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신실함과 의로움의 증거입니다.

-적용: 우리는 때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용서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함을 상기시킵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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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죄 사함과 정결케 하심: 은혜의 결과

세 번째 요점은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불의에서 완전히 정결하게 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면죄가 아니라 새 삶으로의 변화입니다.

-관주: 이사야 1:18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의 정결케 하심은 철저하고 완전합니다.

-적용: 이 약속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과거의 죄로 인해 묶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은혜를 받아 내 삶의 변화를 기대합시다.

맺는말[Conclusion]:

요한일서 1장 9절은 죄와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죄를 자백함으로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을 믿으며, 그분이 주시는 용서와 정결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생생한 진리입니다. 

오늘 이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를 숨기고 스스로를 속이며 살기보다,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나아가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내 봅시다.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하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함을 받아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의 가정, 일터, 그리고 모든 관계 속에서 나타나기를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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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장 51절 묵상 -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의 축복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누가복음 24장 51절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마무리되는 감동적인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 짧은 구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시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시는 순간을 묘사하며, 그리스도의 승리와 제자들에게 남겨진 소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예수님의 떠나심이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영원한 약속과 축복의 시작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축복하실 때에" 떠나셨다는 표현은 깊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축복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전하는 능력 있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과 평화를 남기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앞으로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필요한 힘과 위로가 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고, 그 시작은 축복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어려운 순간이나 이별의 때에 축복의 마음을 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게 됩니다.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라는 구절은 예수님의 신성과 승리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셨고, 이제 하늘로 돌아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셨음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이 장면을 보며 두려움 대신 경외와 소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은 더 이상 육신의 제약 속에 계시지 않으며, 이제 어디서나 제자들과 함께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님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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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천 사건은 제자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2-53절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떠나심을 슬퍼하기보다 기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축복과 승천이 그들에게 확신과 기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심으로써 성령이 오실 길이 열렸고, 제자들은 곧 오순절에 성령을 받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떠나심은 제자들을 떠난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명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씀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근거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지셨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구속자이자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잇고 계심을 뜻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축복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합니다. 삶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힘이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변화시켰듯,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과 축복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또한 재림의 약속과 연결됩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에서 천사들은 "하늘로 가신 이 예수는 너희에게서 하늘로 가신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지신 것은 언젠가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을 보증하는 사건입니다. 이 약속은 우리로 하여금 소망 가운데 깨어 살아가게 합니다. 세상의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는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결국, 누가복음 24장 51절은 예수님의 사랑, 승리, 그리고 약속이 담긴 말씀입니다. 축복하실 때에 떠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이 축복을 기억하며,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며 충성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결코 끝나지 않음을 선포하는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도 제자들처럼 기쁨과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신 후 하늘로 올려지셨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위로와 소망을 주는가?
 - 이 질문은 예수님의 축복과 승천이 개인적인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되새기게 합니다.

2. 내 삶에서 예수님의 축복을 경험한 순간은 언제였으며, 그 축복을 어떻게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을까?
 - 이 질문은 축복의 경험을 돌아보고, 그 은혜를 실천으로 옮기는 방법을 고민하게 합니다.

3.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믿음이 나의 일상적인 선택과 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 이 질문은 재림의 소망이 현재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묵상하게 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 예수님, 축복하실 때에 하늘로 올려지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남겨주신 평안과 소망으로 오늘도 힘을 얻습니다. 주님의 축복을 기억하며 세상에 그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깨어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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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7장 19절 칼럼n - 맹세와 배신: 인간의 약속에 담긴 무게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약속을 주고받는다. 친구와의 사소한 약속부터 가족 간의 깊은 맹세, 심지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조용한 결심까지. 약속은 인간 관계와 삶의 기본 틀을 이루는 요소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때로는 고의로 약속을 깨며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신뢰를 잃는다. 이 구절은 이런 배신의 무게와 그에 따른 책임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 말씀은 비단 종교적 맥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약속과 배신, 그리고 그 결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다.

약속은 신뢰의 상징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나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며, 미래를 함께 구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예를 들어, 결혼 서약은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약속의 정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는 사랑과 헌신의 맹세가 깨지는 순간이 많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약속이 깨질 때, 남는 것은 상실감과 배신감이다. 에스겔의 구절에서 언급된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넘어, 인간 사이의 신뢰가 무너질 때 느끼는 깊은 실망을 떠올리게 한다.

배신은 왜 그렇게 아픈가? 그것은 우리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비밀을 누설하거나, 동료가 약속한 도움을 주지 않을 때, 우리는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심리학적으로 배신은 신뢰가 깨진 결과로 감정적 상처를 남기며, 때로는 신체적 스트레스로 이어지기도 한다. 에스겔의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라는 말은 배신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배신한 사람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의 배신은 경력의 몰락으로, 가정에서의 배신은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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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구절은 단순히 책임과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맹세와 언약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약속을 지키는 삶은 어렵지만, 그만큼 가치 있다. 작은 약속이라도 지킬 때마다 우리는 신뢰를 쌓고, 관계를 단단히 만든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아이에게 "널 사랑해"라고 말하며 그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부모는 아이에게 안전감을 준다. 반대로,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안을 심어준다. 에스겔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네가 한 말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느냐?"

현대 사회는 약속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 계약은 법으로 강제되지만, 마음에서 우러난 약속은 쉽게 잊힌다.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며 응원하겠다고 한 말이 다음 날이면 잊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에스겔의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약속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걸고 하는 맹세다. 그것을 어길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준다. 배신의 대가는 외부에서 오는 처벌뿐 아니라 내면의 혼란과 죄책감이기도 하다.

결국, 이 구절은 우리 모두에게 공감과 성찰을 요구한다. 종교를 떠나, 약속과 배신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삶의 일부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약속을 지키고, 얼마나 쉽게 배신했는가? 그 선택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보며, 오늘이라도 한 사람에게 한 약속을 지켜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신과의 맹세든, 사람과의 약속이든, 결국 그 가치는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는 말처럼, 약속은 우리의 삶 그 자체와 맞닿아 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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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21절 강해 - 하나님의 은혜로운 덮으심

제목: 하나님의 은혜로운 덮으심
본문: 창세기 3장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짧은 구절은 인류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 그들은 스스로 잎사귀로 몸을 가리려 했지만, 그것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수치와 부족함을 덮어주시기 위해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포인트를 살펴보고, 다른 성경 구절을 통해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1. 죄로 인한 수치와 인간의 한계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은 후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깨닫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창 3:7). 이는 인간이 죄를 지은 후 스스로를 가리려는 첫 번째 시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했습니다. 잎사귀는 곧 시들고, 그들의 수치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적인 한계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죄를 해결하거나 수치를 덮을 능력이 없습니다.

-관주: 이사야 64장 6절은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사오니"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은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며, 우리의 의로는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잎사귀 치마는 이 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도 죄책감이나 수치를 스스로 해결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행위나 외적인 노력으로 덮으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와 희생

창세기 3장 2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닙니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이 죽어야 했습니다. 이는 죄의 대가가 죽음이라는 사실(롬 6:23)을 암시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당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관주: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포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한 가죽옷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의 죄와 수치를 영원히 덮어주는 참된 가죽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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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어도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우리의 죄가 덮어졌음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어진 구원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된 존엄성

가죽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신 상징입니다. 죄로 인해 그들은 부끄러움과 두려움 속에 숨었지만(창 3:10),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가죽옷을 입힘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이 여전히 당신의 소중한 피조물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관주: 갈라디아서 3장 27절은 "너희가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리스도를 입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입혀진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덮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새 신분과 존엄성을 주십니다.

-적용: 우리는 때로 과거의 죄나 실패로 인해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덮으시고 새롭게 입히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맺는말[Conclusion]:

창세기 3장 21절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덮으심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로 인해 수치와 두려움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한계를 아시고 주도적으로 은혜를 베프셨습니다. 가죽옷을 통해 그들의 수치를 덮으시고, 희생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며, 사랑으로 그들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된 구원의 그림자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죄와 부족함을 스스로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에 의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입혀진 자녀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은혜를 다시금 깨닫고,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날마다 그분의 덮으심 아래 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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