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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장 24절 칼럼n - 초대받은 자리의 빈자리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구나 한 번쯤 초대받은 자리에 가지 못하거나, 초대를 거절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은 한 주인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그들이 핑계를 대며 오지 않자 다른 이들을 대신 초대한다는 비유에서 나온다. 언뜻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말씀은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는지, 어떤 초대에 응답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현대인의 삶은 바쁘다. 일, 가족, 취미, 소셜 미디어까지 - 우리는 매일 수많은 초대와 요구에 둘러싸여 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전화, 가족과의 저녁 식사, 혹은 조용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자는 마음의 속삭임. 하지만 우리는 종종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로 소중한 초대를 거절한다. 누가복음의 비유 속 초대받은 이들도 그랬다. 땅을 보러 가야 하고, 소를 시험해야 하며, 결혼 때문에 바쁘다고 했다. 그들의 핑계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진짜 중요한 자리를 놓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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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는 단순히 종교적인 메시지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관계, 기회, 그리고 자기 성찰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군가의 초대를 거절할 때, 우리는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친구가 더 이상 연락하지 않고, 가족이 점점 멀어지고, 나를 위한 시간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초대는 한정적이고,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이 말씀은 희망을 준다. 처음 초대받지 못했던 이들 - 길거리와 골목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 이 잔치에 들어왔다. 이는 우리에게도 두 번째 기회가 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내가 놓친 자리를 후회하며 주저할 때, 예상치 못한 초대가 찾아올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때 “예”라고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결국 이 구절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매일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할지 결정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랑, 기쁨, 평화를 주는 자리를 떠나보낼 것인가? 아니면 용기를 내어 그 잔치에 들어갈 것인가? 누가복음 14장 24절은 종교를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초대에 응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당신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빈자리는 언제나 채워진다. 다만, 그 자리에 내가 있을지는 나의 선택에 달렸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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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6편 12절 강해 -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

제목: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
본문: 시편 136편 12절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조화를 이루며 백성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적 사건을 회상하며,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히 변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본문을 바탕으로 세 가지 요점을 통해 설교를 구성하고, 관련 성경 구절을 더해 결론을 서술적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강한 손: 구원의 능력

"강한 손"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상징합니다. 이 구절은 출애굽 사건을 배경으로 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신 능력을 나타냅니다. 출애굽기 13:3에서 모세는 "너희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것을 기억하라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너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강한 손이 단순한 힘이 아니라, 백성을 구원하고 자유롭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능력임을 보여줍니다.

-관주: 여호수아 4:24 -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줄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강한 손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그분의 권능을 드러내는 증거임을 강조합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강한 손은 여전히 작동합니다. 우리가 죄와 절망의 노예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당신이 지금 어떤 어려움 속에 있든, 하나님의 강한 손이 당신을 붙잡고 인도하실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기도와 믿음으로 그분께 의지할 때, 그분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펴신 팔: 사랑의 연장

"펴신 팔"은 하나님의 능력이 백성에게 미치는 사랑과 은혜의 범위를 상징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멀리서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품으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시편 136 전체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나열하며, 그 모든 일 뒤에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후렴구를 반복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펴신 팔이 사랑과 자비로 가득한 구원의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관주: 이사야 59:1 -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팔이 결코 짧지 않으며, 언제나 백성을 구원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확증합니다. 하나님의 펴신 팔은 우리의 연약함과 상처를 어루만지며 구원의 길로 인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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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하나님의 펴신 팔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닿아 있습니다. 당신이 외롭거나 소망을 잃은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으로 당신을 감싸십니다.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하나님의 펴신 팔을 반영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 이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십시오.

3. 영원한 인자하심: 변함없는 약속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는 이 시편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 covenant love)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언약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사건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품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시편 136은 창조부터 구원까지 하나님의 행하심을 열거하며, 그 모든 일 속에 영원한 인자하심이 깃들어 있음을 노래합니다.

-관주: 예레미야 31:3 - "나 여호와가 먼 데서 너희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희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이끄는 사랑임을 보여줍니다.

-적용: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은 우리의 믿음의 닻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우리의 상황이 흔들릴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붙잡고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삶이 힘들 때도, 그분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맺는말[Conclusion]:

시편 136편 12절은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그분의 영원한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그리고 변함없는 약속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기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며, 펴신 팔은 그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 안아주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 속에서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합니다.

이 진리를 삶 속에서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강한 손을 신뢰하며, 그분의 펴신 팔에 안겨 위로를 받으며, 영원한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 직장, 교회에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그 사랑을 나누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새로워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찬양이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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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 4절 묵상 -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삶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행전 6장 4절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보여준 신앙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당시 교회가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행정적인 필요가 생겼고, 그로 인해 사도들은 본연의 사명에서 벗어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호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선언하며, 자신들의 핵심 사명을 지켰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을 줍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할까요? 바쁜 일상 속에서 기도와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요?

기도의 중요성

사도들이 "기도하는 일"을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신앙의 뿌리입니다. 기도 없는 신앙은 마치 물 없는 나무와 같아서 결국 시들어 버립니다. 사도들은 교회의 성장과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쁜 사역 중에 늘 기도하셨던 모습을 떠올리면, 기도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생명력의 원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기도에 힘쓰고 있을까요? 바쁜 일정 속에서 기도는 종종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의 결단을 보면,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며, 삶의 모든 순간을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삶은 단순히 시간을 내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말씀 사역의 소중함

사도들이 두 번째로 강조한 것은 "말씀 사역"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길잡이입니다. 초대교회는 말씀을 통해 성장했고,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깨웠습니다. 말씀 사역은 단순히 설교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고,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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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에서도 말씀의 중요성은 변함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려 합니다. 소셜 미디어, 뉴스, entertainment 등 수많은 소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결단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말씀에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삶에 적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소명입니다. 말씀 없이 기도만 하는 것은 방향을 잃기 쉽고, 기도 없이 말씀만 붙잡는 것은 생명력을 잃기 쉽습니다.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하며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세웁니다.

삶 속에서의 적용

사도들의 선언은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행정적인 일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기도와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실천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 중 기도와 말씀을 위한 시간을 정해놓고 지키는 것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거나,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또한, 사도들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듯, 우리도 주변 사람들과 기도와 말씀을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혹은 친구들과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작은 모임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도들의 사역이 교회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었듯, 우리의 작은 실천도 주변에 선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는 사도들의 다짐은 초대교회의 기초를 세운 선언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나침반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우선순위를 강요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기도와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고, 말씀을 통해 그분의 뜻을 깨달으며, 그 깨달음을 삶으로 살아낼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묵상하며 다시 한번 결단해봅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삶을 선택합시다. 사도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이 두 가지를 붙잡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기도와 말씀은 우리의 영적 호흡입니다. 이 호흡이 멈추지 않는 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일상에서 기도와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가?
 - 바쁜 삶 속에서 기도와 말씀을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일들에 밀려 뒷전으로 두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2. 내가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얼마나 깊이 교제하고 있는가?
 - 기도와 말씀 묵상이 형식적인 의무로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키우는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점검해봅시다.

3. 내 주변에 기도와 말씀을 나누며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사도들처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기도와 말씀을 실천할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봅시다.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희가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주님께 마음을 드리고,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하시어, 그 깨달음을 삶으로 살아내게 하소서. 저희 주변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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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장 9절 칼럼n - 어둠 속에서도 빛을 지키는 힘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이 구절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위로의 메시지일 수 있지만, 종교적 배경을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때로는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 구절은 그런 순간에도 내면의 선함과 정의가 결국 승리한다는 믿음을 전하며, 인간의 한계와 그 너머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먼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상징으로 읽힌다. 우리는 살면서 부당함을 겪거나, 약한 이들이 짓밟히는 모습을 볼 때 분노와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구절은 그런 상황에서도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힘이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예를 들어, 역사 속에서 억압에 맞서 싸운 인물들-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혹은 이름 없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물리적 힘이 아닌 도덕적 신념으로 세상을 바꿨다. 그들의 발걸음은 흔들렸을지언정, 결국 보호받고 승리했다는 점에서 이 구절과 닿아 있다.

반면,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는 잘못된 길을 걷는 이들이 언젠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대가를 마주하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종교적 심판이 아니라 인과응보의 자연스러운 원리다. 현대 사회에서도 권력이나 돈으로 약자를 억누르는 이들이 결국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본다. 금융 사기나 부패 스캔들로 몰락한 기업가들, 혹은 폭력을 일삼다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는 이 구절이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어둠은 그들의 행위를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히 그들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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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라는 결론이다. 이는 물리적 힘이나 외적인 조건이 삶의 승패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강렬한 선언이다. 우리는 종종 성공을 돈, 지위, 혹은 체력으로만 측정하려 하지만, 진정한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 병상에 누워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환자, 가난 속에서도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 혹은 재난 속에서 이웃을 돕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진리를 증명한다. 그들은 근육이나 무기가 아니라 마음의 강인함으로 이겨낸다.

이 구절은 신앙이 없어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인간이 보편적으로 갈망하는 희망과 정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불공평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선한 이들이 흔들리지 않고, 악이 영원히 승리하지 않으며, 진짜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는 믿음은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된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선명해진다. 이 단순하면서도 깊은 진리는 오늘도 우리 발걸음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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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9절 강해 -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과의 만남

제목: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과의 만남
본문: 마태복음 28장 9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태복음 28장 9절은 예수님의 부활 후 제자들과 여인들이 만나는 감동적인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평안하냐"라는 인사로 여인들을 맞이하시고,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오는 평안과 경배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포인트를 살펴보고, 관련 성경 구절을 통해 깊이 묵상하며,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평안의 인사 (마 28:9a - "평안하냐 하시거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여인들에게 "평안하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인사는 단순한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인류에게 참된 평안을 주셨음을 상징합니다. 당시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두려움과 슬픔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관주: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는 마음에 평안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부활의 승리가 가져오는 평안의 근거를 보여줍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혼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분이 주시는 영원한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예수님의 "평안하냐"라는 음성을 기억하며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2. 여인들의 반응: 예배와 헌신 (마 28:9b -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여인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그분의 발을 붙잡고 경배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단순한 스승이 아닌,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 행동입니다. "발을 붙잡는다"는 표현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으려는 간절함과 헌신을 나타내며, "경배"는 그분께 온전한 존경과 예배를 드리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관주: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서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그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경배했던 모습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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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때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여인들처럼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 경배하며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삶으로 인정하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3. 만남의 목적: 복음 증거로의 부르심 (마 28:10 연결)

마태복음 28장 10절에서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여인들의 만남이 단순히 개인적인 위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관주: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증거는 복음 전파의 시작입니다.

-적용: 예수님을 만난 우리는 그분의 평안을 누릴 뿐 아니라, 그 평안을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말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마태복음 28장 9절은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오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하냐"라는 음성으로 다가오시며, 우리의 두려움과 슬픔을 평안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여인들은 그 만남 속에서 경배와 헌신으로 응답했고, 결국 복음의 증인으로 세상에 파송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그분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세상 속에서 그분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평안하냐"라고 물으신다면, 어떤 응답을 드리겠습니까? 그분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며, 그 평안을 세상에 전하는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구하며, 우리의 삶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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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32절 묵상 -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깊이 있는 가르침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의 문장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약속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 그리고 이 자유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단순히 사실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즉, 진리는 한 인격,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과 사랑입니다. 이 진리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마음과 삶으로 받아들이고 체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진리”를 제시합니다. 광고, 이념, 철학, 그리고 개인의 욕망은 각기 다른 형태로 진리임을 주장하며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종종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속박에 묶이게 합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기준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속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눈을 열어 참된 삶의 목적을 보게 합니다.

진리가 주는 자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은 자유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자유는 종종 외적인 제약의 제거나 개인의 욕망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훨씬 더 깊고 내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죄와 두려움, 죽음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요 8:34). 죄는 우리를 얽매고,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리를 알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 사랑과 용서를 통해 죄에서 풀려납니다. 이 자유는 단순히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거짓된 약속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담대함을 줍니다.

진리를 아는 과정

진리를 안다는 것은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8장 31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며, 그분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는 여정입니다. 이는 기도와 묵상, 그리고 순종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때로 이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진리를 왜곡하고, 우리의 연약함은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며, 우리의 편견과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진리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우리를 자유의 길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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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진리를 살아가기

이 말씀은 단순히 묵상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거짓이 만연한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진리가 주는 자유를 실천하는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한, 진리의 자유는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세상의 판단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굳게 설 수 있게 합니다. 이 자유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과 도전을 동시에 줍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죄와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자유는 단순히 나만의 해방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진리를 더 깊이 알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며, 그 진리가 우리를 온전히 자유롭게 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에게 진리란 무엇인가?
 - 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얼마나 깊이 알고 있으며, 그것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세상의 거짓된 진리에 비추어 내가 속박되어 있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자.

2. 진리가 나를 어떻게 자유롭게 하는가?
 - 예수님의 진리를 통해 내가 경험한 자유는 무엇이며, 아직도 죄나 두려움에 묶여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3. 내 삶에서 진리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 오늘 하루, 혹은 이번 주에 내가 진리를 말하고 행하며 다른 이들에게 자유를 나누는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 수 있을까?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주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아갑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참된 진리를 알게 하시고, 그 진리가 저를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시길 간구합니다. 저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 자유를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Gr.

 

이미지 출처: 예랑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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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편 7절 칼럼n - 의로움과 정직이 가져오는 빛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 11편 7절의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구절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이 구절은 의로움과 정직이라는 가치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이 말씀은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도덕적 나침반과 연결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마음을 일깨운다.

의로움은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을 넘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공정하게 행동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예를 들어, 길에서 주운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행위는 작은 의로움의 실천이다. 이런 행동은 종교적 믿음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선하다고 느끼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때로 불공정하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의로운 선택은 그 속에서 빛을 발한다. 시편의 이 구절은 의로움이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에게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가져온다고 말하는 듯하다.

정직은 의로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정직한 사람은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때로 실수를 감추거나, 더 나아 보이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정직은 결국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친구에게 실수를 솔직히 고백했을 때 오히려 신뢰가 깊어졌던 경험, 혹은 직장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함으로써 오해를 풀었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정직은 관계를 단단히 하고, 마음에 평온을 준다.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라는 표현은 신앙 안에서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일 수 있지만, 더 넓게는 정직함으로 자신과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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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약속하는 보상에 있다. 의로움과 정직을 실천하는 이들은 ‘그의 얼굴을 본다’는 희망을 품는다. 이는 신앙적인 맥락에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하지만, 일상에서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과의 진실한 연결을 경험하는 순간들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를 돕고 나서 느끼는 뿌듯함,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화해했을 때의 따뜻함—이런 순간들이 바로 ‘얼굴을 보는’ 경험 아닐까.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런 감정은 삶의 의미를 더해준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의로움과 정직은 때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선택으로 보인다. 경쟁이 치열하고, 성공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듯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은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은 그런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상기시킨다. 의로움과 정직은 단기적인 이익을 넘어, 우리 삶에 깊은 울림을 준다. 타인에게 신뢰를 주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힘은 어떤 물질적 보상보다 강력하다.

결국, 시편 11장 7절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얼마나 의롭게, 정직하게 살고 있는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매일 작은 선택 속에서 조금 더 나은 방향을 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다. 이 말씀은 종교적 경계를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선한 삶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의로움과 정직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초석이다. 그러니 오늘, 단 한 번이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보자. 그 순간, 우리는 모두 ‘그의 얼굴’을 조금씩 보게 될 것이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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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9절 강해 - 죄의 자백과 하나님의 용서

제목: 죄의 자백과 하나님의 용서
본문: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성경 1요한 1장 9절은 하나님의 용서와 깨끗하게 하심에 대한 놀라운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말씀은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은혜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 구절을 세 가지 요점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관련 성경 구절을 통해 깊이 이해하며,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1. 죄의 자백: 우리의 책임

첫 번째 요점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이라는 조건입니다. 여기서 "자백"은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죄를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관주: 시편 32:5 -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백하리라 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다윗은 죄를 자백한 후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자백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적용: 우리는 일상에서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정직한 자기 성찰과 회개를 촉구합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고백할 죄가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2.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 용서의 근거

두 번째 요점은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라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시며, 동시에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이 의로움은 우리의 죄를 그냥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정당하게 해결하심을 의미합니다.

-관주: 로마서 3:25-26 -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죄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으니." 하나님의 용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신실함과 의로움의 증거입니다.

-적용: 우리는 때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용서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함을 상기시킵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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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죄 사함과 정결케 하심: 은혜의 결과

세 번째 요점은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불의에서 완전히 정결하게 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면죄가 아니라 새 삶으로의 변화입니다.

-관주: 이사야 1:18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의 정결케 하심은 철저하고 완전합니다.

-적용: 이 약속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과거의 죄로 인해 묶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은혜를 받아 내 삶의 변화를 기대합시다.

맺는말[Conclusion]:

요한일서 1장 9절은 죄와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죄를 자백함으로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을 믿으며, 그분이 주시는 용서와 정결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생생한 진리입니다. 

오늘 이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를 숨기고 스스로를 속이며 살기보다,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나아가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내 봅시다.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하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함을 받아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의 가정, 일터, 그리고 모든 관계 속에서 나타나기를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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