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22절 강해 - 선을 붙들라
제목: 선을 붙들라
구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22절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서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수많은 정보와 다양한 가치관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 속에서 무엇이 참으로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분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우리에게도 단호하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범사에 헤아리고, 선을 붙들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입니다.
1. 모든 것을 헤아리십시오 (21절 전반)
강해: "범사에 헤아려"의 핵심 헬라어는 δοκιμάζετε(도키마제테)입니다. 이는 '시험하다', '검증하다', '분별하다'는 뜻의 현재 명령형으로, 금이나 은을 불에 달구어 순도를 검사하는 장인의 행위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한 번의 판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헤아리고 분별하라는 강한 명령입니다. '범사(판타, πάντα, 판타)'는 '모든 것'을 의미하여, 그 어떤 것도 분별 없이 무턱대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해설: 이 분별의 명령은 단순한 지적 판단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분별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삼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빌립보서 1장 9-10절에서도 바울은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분별력을 기르라고 권면하는데, 이 분별력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말씀과 기도로 훈련될 때 날마다 성장해 갑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의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까지도 성경으로 날마다 상고한 것이 바로 이 분별의 삶이었습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보고 듣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헤아려 보십시오. 소셜 미디어의 정보도, 세상의 유행도, 심지어 오늘 이 설교까지도 말씀으로 검증하고 기도로 확인하는 분별력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좋은 것을 굳게 붙드십시오 (21절 후반)
강해: "좋은 것을 취하고"에서 '좋은 것'은 헬라어 τὸ καλόν(토 칼론)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선한 것을 넘어, '아름다운 것', '탁월한 것'이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취하다'로 번역된 κατέχετε(카테케테)는 '꽉 붙들다', '놓지 않다'는 뜻의 강한 현재 명령형입니다. 선한 것을 발견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붙들고 간직하라는 명령입니다.
해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 72절은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더 좋으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4장 8절에서 바울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 받을 만하며 칭찬 받을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에 채워 담아 두는 것이 건강한 영혼의 비결입니다. 선을 붙드는 삶은 우리를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닻이 됩니다.
예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겨울, 한 종군 목사가 포화가 잠시 멈춘 틈을 타 폐허가 된 교회 안에서 홀로 기도하는 노 권사님을 발견했습니다. 주위가 온통 잿더미였지만, 그 권사님은 낡은 성경 한 권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이것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놓을 수가 없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한 권의 성경이 그분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좋고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우리가 진정으로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해집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손에는 무엇이 붙들려 있습니까? 세상이 결코 빼앗아 갈 수 없는 말씀과 믿음, 소망과 사랑을 굳게 붙드십시오. κατέχετε(카테케테), 꽉 잡으십시오! 그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반드시 여러분의 삶을 지켜 줄 것입니다.
3.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십시오 (22절)
강해: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에서 '모양'은 헬라어 εἶδος(에이도스)로 '형태', '외양', '겉모습'을 뜻합니다. '악'은 πονηροῦ(포네루)로 도덕적으로 해롭고 파괴적인 악을 가리킵니다. '버리라'는 ἀπέχεσθε(아페케스테)로 '멀리하다', '거리를 두다'는 뜻의 현재 명령형입니다. 악에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아예 거리를 두라는 강력한 명령으로, 악은 그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예외 없이 피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해설: 잠언 4장 14-15절은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라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악은 처음에는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경고합니다. 달콤한 유혹이든,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운 타협이든, 악은 그 첫 모양부터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피할 길을 반드시 내어 주십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삶 속에 악이 어떤 모양으로 침투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작은 타협, 가벼운 거짓말, 사소해 보이는 불의가 사실은 악의 첫 발걸음입니다. 그 모양을 보는 순간 단호히 등을 돌리십시오.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성도의 결단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22절은 우리에게 세 가지 명령을 주고 있습니다. 헤아리고, 붙들고,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따로 떨어진 명령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 거룩한 삶의 원리입니다. 분별 없이는 선을 붙들 수 없고, 선을 붙들지 않으면 악을 버릴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 세 명령은 서로를 붙들고 세워 주는 믿음의 삼각형입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마지막 권면으로 남긴 것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삶, 빛과 소금이 되는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라는 간절한 부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진주충만교회도 이 말씀 위에 굳게 세워져야 합니다. 범사에 헤아리는 분별력, 선을 붙드는 결단력, 악을 버리는 거룩함이 우리 공동체의 분명한 특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를 떠나면서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분별하는 삶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격려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범사에 헤아리고, 선을 붙들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는 —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이 세상을 밝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 관련 질문:
1. 나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삶의 기준을 세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분위기에 따라 흔들리고 있습니까?
2. 내가 지금 가장 소중히 붙들고 있는 것(τὸ καλόν, 토 칼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까?
3. 내 삶 속에서 '사소하다'고 지나쳐 온 악의 모양은 없었습니까? 오늘 단호히 결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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