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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29절 강해 - 은혜의 언어

제목: 은혜의 언어
구절: 에베소서 4장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서론: 사람은 하루에도 수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내뱉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언어가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하며 말씀 앞에 서고자 합니다.

1. 더러운 말을 버리라 (4:29상)

강해: 본문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더러운'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사프로스(σαπρός)'인데, 이는 본래 썩은 과일이나 부패하여 쓸모없게 된 생선을 가리킬 때 쓰이던 단어입니다. 마태복음 7장 17절에서 나쁜 나무가 맺는 '못된' 열매를 가리킬 때도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곧 더러운 말이란 단순히 욕설만이 아니라 듣는 이의 영혼을 부패시키고 무너뜨리는 모든 말을 의미합니다.

해설: 야고보서 3장은 혀를 작은 불씨로 비유하며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를 불사를 수 있는 위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잠언 18장 21절도 죽음과 생명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말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는 영적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2장에서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말로도 심판 날에 결산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으니, 더러운 말의 문제는 단지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적용: 오늘 우리의 언어생활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배우자와 자녀에게,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분노에 차서 내뱉는 거친 말, 뒤에서 나누는 비방과 험담, 상대를 깎아내리는 조롱의 말들이 우리 입술에서 떠나야 합니다. 더러운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고, 받은 사람의 마음에 오래도록 상처로 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전 같은 입술임을 기억하며, 말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이 말이 누군가를 무너뜨릴 말인지 살피는 거룩한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언어를 회개의 자리로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2. 선한 말로 세우라 (4:29중)

강해: 이어지는 본문은 "오직 선한 말을 하여"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선한'은 헬라어 '아가도스(ἀγαθός)'로서 단순히 도덕적으로 옳다는 뜻을 넘어, 실제로 유익을 끼치고 효력을 발생시키는 좋음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본문은 이 선한 말의 목적을 "쓸 데 있는 대로"라고 밝히는데, 헬라어로는 '오이코도멘 테스 크레이아스(οἰκοδομὴν τῆς χρείας)'입니다. '오이코도메'는 집을 짓는다는 뜻에서 나온 '건축, 세움'을 의미하며, '크레이아'는 필요, 상황을 가리킵니다. 곧 선한 말이란 상황에 맞게 사람을 세워주는 건축적인 말입니다.

해설: 잠언 25장 11절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말씀하며,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하는 말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보여줍니다. 골로새서 4장 6절에서도 바울은 성도의 말이 항상 은혜 가운데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고 권면하는데, 이는 본문의 가르침과 정확히 같은 맥락입니다. 잠언 15장 1절의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니라"는 말씀처럼, 선한 말은 갈등의 현장에서도 회복과 세움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예화: 한국전쟁 당시 한 피난길에서 어린 자녀를 잃을 위기에 처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절망하여 서로를 향해 날선 말을 쏟아내던 그 순간, 한 노인이 조용히 다가와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우리도 살 길을 여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함께 길을 찾아 나설 힘을 주었습니다. 폭격과 굶주림보다 사람을 무너뜨린 것은 절망의 말이었고, 사람을 다시 일으킨 것은 소망을 담은 선한 말 한마디였습니다.

적용: 우리는 날마다 누군가를 세울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는 말의 도구를 손에 쥐고 살아갑니다. 지치고 힘든 동료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한마디, 실패한 자녀에게 건네는 격려의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선한 말이란 막연히 좋은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형편과 필요를 살펴서 꼭 필요한 때에 건네는 맞춤의 말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의 상황을 헤아리고, 그에게 진정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힘이 되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다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세우는 말을 선택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은혜를 끼치라 (4:29하)

강해: 본문의 마지막 구절은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입니다.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리스(χάρις)'로, 본래 받는 사람에게 기쁨과 유익을 가져다주는 호의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끼치게 하라'는 헬라어로 '도(δῷ)'인데, 이는 디도미(δίδωμι, 주다)의 가정법 형태로서 말을 통해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선물처럼 건네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곧 성도의 말은 그 자체로 은혜라는 선물을 듣는 사람의 손에 쥐어주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설: 이 말씀은 에베소서 4장 전체의 흐름, 곧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성도의 삶이라는 주제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25절부터 32절까지 바울은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며,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며 선한 일을 하라고 연속해서 권면하는데, 이는 모두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새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도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가르치며 권면하라"고 말씀하는데, 이 역시 성도의 언어가 공동체 안에서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적용: 우리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은혜의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부르심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나누는 인사, 위로, 권면의 말들이 단순한 사교의 언어를 넘어 실제로 듣는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때, 그 말이 받는 사람에게 정말 은혜가 되는 말인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말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의지하며, 입을 열기 전에 잠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말이 모일 때마다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세워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은혜로 채워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입술의 거룩함을 다시금 점검하게 합니다. 더러운 말을 버리고, 선한 말로 세우며, 마침내 은혜를 끼치는 말로 나아가는 것이 성령 안에 사는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말은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인생에 새겨지는 흔적입니다. 우리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살리고, 누군가의 신앙을 세우며, 누군가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한 주간도 우리의 입술을 성령께 내어드려, 듣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는 언어의 통로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관련 질문:

1. 나의 평소 언어생활 중 버려야 할 더러운 말은 무엇입니까?

2. 가까운 사람에게 오늘 건넬 수 있는 선한 말은 무엇입니까?

3. 나의 말이 듣는 이에게 은혜가 되도록 어떻게 준비할 수 있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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