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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3절 강해 - 하나님께로 난 자

제목: 하나님께로 난 자
구절: 요한복음 1장 13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서론: 우리는 태어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혈통을 이어받아 세상에 나오는 것, 가정과 민족의 이름을 물려받는 것,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출생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전혀 다른 탄생을 말합니다. 혈통도, 인간의 의지도 아닌,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거듭남입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은 바로 이 거듭남의 본질을 세 가지 부정과 하나의 강력한 긍정으로 선언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함께 서겠습니다.

1. "혈통으로 나지 아니하고" - 거듭남은 혈통이 아닙니다 (13절)

강해: 헬라어 원문은 "οὐκ ἐξ αἱμάτων(우크 엑스 하이마톤)"으로 시작합니다. '혈통'으로 번역된 αἱμάτων(하이마톤)은 αἷμα(하이마, 피)의 복수형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부모 양쪽의 피가 합쳐져 생명이 형성된다고 이해했으며, 복수형은 바로 이 개념을 반영합니다. 즉, "혈통으로나"는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민족적 계보가 결코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BDAG 사전에 따르면 αἷμα(하이마, 피)는 생물학적 혈통과 출생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가문과 민족적 계보를 지칭합니다.

해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구원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요한복음 8장 33절에서 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당당히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마태복음 3장 9절에서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느니라"고 경고하며, 혈통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로마서 9장 8절도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은 혈연의 계보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새 생명에서 비롯됩니다.

적용: 우리는 종종 신앙의 가문을 내세웁니다. "우리 집은 3대째 기독교 집안입니다"라는 말은 감사한 고백이지만, 그 자체가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거듭남은 부모로부터 유산처럼 상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어도, 각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오늘 나 자신의 믿음, 내가 직접 하나님 앞에 세운 그 믿음을 돌아보십시오.

2.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 거듭남은 인간의 힘이 아닙니다 (13절)

강해: 헬라어 원문은 "οὐδὲ ἐκ θελήματος σαρκὸς(우데 엑스 델레마토스 사르코스) οὐδὲ ἐκ θελήματος ἀνδρὸς(우데 엑스 델레마토스 안드로스)"입니다. θέλημα(델레마)는 '의지' 또는 '뜻'을 의미하며, σάρξ(사르크스)는 '육신', ἀνήρ(아네르)는 '남자' 또는 '사람'을 뜻합니다. BDAG 사전은 σάρξ를 하나님과 대립되는 연약한 인간 본성으로 설명합니다. '육정'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충동을, '사람의 뜻'은 인간의 계획과 의도를 가리킵니다. 본문은 이 두 가지가 모두 거듭남을 일으킬 수 없음을 선언합니다.

해설: 거듭남은 인간의 종교적 열정이나 도덕적 노력, 감정적 결단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선언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3절도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경고합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화: 1950년 12월, 한국전쟁의 포성이 채 멈추지 않은 흥남 부두에 수만 명의 피란민이 몰려들었습니다. 마지막 배를 향해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들었고, 한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품에 꼭 안고 군중 속에서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다해도 배는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때 한 군인이 군중을 헤치고 다가와 그 아이를 번쩍 들어 배 위로 올려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힘이 아니라 외부의 강한 손이 그 아이를 구한 것입니다. 거듭남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스스로를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들어 올리실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적용: 열심히 봉사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감사함으로 섬기는 것과, 섬김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은 전혀 다른 방향입니다. 오늘 내 믿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 거듭남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3절)

강해: 헬라어 원문은 "ἀλλ' ἐκ θεοῦ ἐγεννήθησαν(알 엑스 데우 에겐네데산)"입니다. ἀλλά(알라)는 강한 대조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앞의 세 가지 부정을 일거에 뒤집습니다. ἐκ θεοῦ(엑스 데우)는 '하나님으로부터'라는 출처를 나타내며, ἐγεννήθησαν(에겐네데산)은 γεννάω(겐나오, 낳다)의 수동태 과거형입니다. 여기서 수동태가 결정적입니다. 낳으시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문법 구조 자체가 증거하는 것입니다. BDAG 사전은 이를 '신적 수동태(divine passive)'로 이해하여 하나님을 행위의 유일한 주체로 봅니다.

해설: 요한복음 3장 5-6절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거듭남을 일으키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디도서 3장 5절도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새 생명을 받는 것이며, 이것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적용: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우리가 획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깊은 겸손과 넘치는 감사를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남보다 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시고 새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아직 거듭나지 못한 주변의 이웃에게 이 복음을 담대히 나누십시오.

맺는말\[Conclusion]:

요한복음 1장 13절은 짧지만 강력한 선언입니다. 거듭남은 혈통으로도, 육신의 충동으로도, 사람의 의지로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가능합니다. 이 세 가지 부정과 하나의 긍정은 구원의 근거를 인간에게서 완전히 거두어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때로 신앙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 가려 합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도덕적으로 살면 하나님께 더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다만 받은 자로서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뒤바뀔 때 신앙은 피로한 종교가 되고 맙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까? 혈통의 신앙으로, 습관의 신앙으로, 혹은 사람의 기대에 맞추어 교회를 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께서 오늘 우리 각자의 마음에 새 생명의 불을 지피시기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은혜가 이 자리의 모든 성도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설교 관련 질문:

1.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났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그 확신의 근거는 혈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2. 나는 혹시 신앙을 종교적 열심이나 도덕적 노력으로 유지하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녀로서, 나는 오늘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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