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레미야 1장 5절 강해 - 나를 아신 하나님
제목: 나를 아신 하나님
구절: 예레미야 1장 5절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서론: 우리는 살면서 때로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품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내 삶에는 과연 의미가 있는가?' 오늘 본문 예레미야 1장 5절은 이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명확한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에게 선언하십니다. '나는 너를 알고, 구별하고, 세웠다'고. 이 한 절의 말씀 안에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과 영원한 부르심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함께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1. 모태 전부터 나를 아셨다 (렘 1:5)
강해: 본문의 첫 선언은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입니다. 여기서 '알았고'의 히브리어는 יְדַעְתִּיךָ(예다아티카)로, 동사 יָדַע(야다)에서 온 말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나 지식이 아니라, 깊은 인격적 관계와 친밀한 사귐을 뜻합니다. 창세기 4장 1절에서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알았다'고 표현할 때 쓰인 것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또한 '모태에 짓기 전에'에서 '짓다'는 히브리어 אֶצָּרְךָ(에차르카), 동사 יָצַר(야차르)로,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정성껏 빚는 섬세한 행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어머니의 태 안에서 형성하시기도 전에 이미 그를 인격적으로 깊이 알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해설: 이 놀라운 선언은 성경 전체를 통해 풍성하게 울려 퍼집니다. 시편 139편 13절에서 다윗은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이 생명의 형성 과정 전체에 친히 관여하신 분임을 노래합니다. 이사야 49장 1절에서도 하나님의 종은 "여호와께서 나를 태에서부터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도다"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기억하셨도다'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능동적인 관계적 앎을 나타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 사도 바울 역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신 이가"라고 고백하며, 이 앎이 개인을 넘어 하나님의 구원 역사 전체와 연결됨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앎은 시간의 경계를 초월합니다.
적용: 오늘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가치를 외모나 능력, 또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로 가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우리를 인격적으로 아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나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깊은 앎과 사랑 안에서 계획되고 빚어진 존재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 삶의 흔들리지 않는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확신 위에 오늘부터 우리의 정체성을 굳건히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2. 태어나기 전에 구별하셨다 (렘 1:5)
강해: 두 번째 선언은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입니다. '성별하였고'는 히브리어 הִקְדַּשְׁתִּיךָ(히크다쉬티카)로, 동사 קָדַשׁ(카다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 단어는 '거룩하게 하다, 따로 구별하다, 하나님을 위해 세우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ἡγίακά(헤기아카)로 표현되며 동일하게 '거룩히 구별함'의 뜻을 전합니다. 예레미야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하나님이 이미 그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당신의 사람으로 삼으셨다는 선언입니다. 이 성별은 예레미야의 선택이나 노력, 또는 어떤 공로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근거한 일방적인 은총의 행위입니다.
해설: 이 거룩한 구별하심의 진리는 신약 성경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성별은 창세 이전부터 이미 계획된 것이며,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로마서 8장 30절도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며 하나님의 예정과 부르심, 칭의와 영화가 하나의 구원 사슬로 이어짐을 보여 줍니다. 예레미야를 향한 성별은 그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 전체의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경남 산골 마을에 갓난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피난민들이 길을 메우고 포화 소리가 산을 울리던 그 혼란 속에서도 아이의 어머니는 핏덩이 같은 아이를 품에 안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 이 아이를 주의 것으로 삼아 주소서." 그 아이는 훗날 수십 년간 농어촌 교회를 섬기며 수많은 영혼을 품어 안은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노년의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기도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먼저 이 아이를 정해 두셨던 것 같았어요." 하나님의 구별하심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보다 앞섭니다.
적용: 하나님의 구별하심은 예레미야 같은 특별한 선지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거룩하게 구별된 존재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선언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굳건히 붙들 때, 우리는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구별하심을 받은 존재라는 정체성을 오늘 새롭게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3.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렘 1:5)
강해: 세 번째 선언은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입니다. '선지자'는 히브리어 נָבִיא(나비)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하는 대언자를 뜻합니다. '여러 나라'는 히브리어 לַגּוֹיִם(라고임)으로, 이스라엘 한 나라만이 아닌 모든 민족과 열방을 향한 광대한 사명을 가리킵니다. '세웠노라'는 히브리어 נְתַתִּיךָ(네타티카), 동사 נָתַן(나탄)으로 '주다, 임명하다, 세우다'를 의미합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주권적 임명 선언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원하거나 준비되어서 선지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세우셨기에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해설: 이 사명의 선언은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부르심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선포하며, 열방을 향한 이 사명이 예레미야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 교회 공동체 전체에 이어진 것임을 보여 줍니다. 우리 각자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들입니다.
적용: 예레미야는 이 부르심 앞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 1:6). 우리도 종종 이런 고백을 합니다. '능력이 없다, 자격이 없다, 나이가 많다, 나이가 너무 적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능력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주권과 은혜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렘 1:8). 오늘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가정, 직장, 이웃, 그리고 이 지역 사회 - 그 모든 자리가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사명의 현장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증인으로 담대히 살아가시기를 간곡히 권면합니다.
맺는말[Conclusion]:
오늘 예레미야 1장 5절이 선포하는 세 가지 진리 - '알았고, 성별하였고, 세웠노라' - 는 모두 하나님의 주도와 주권으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기 전에, 우리가 어떤 업적을 쌓기 전에, 심지어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향한 영원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은혜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공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성품과 뜻에서 흘러나옵니다.
예레미야는 이 부르심을 받고 눈물의 선지자로 살았습니다. 배척과 핍박,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지탱하였습니까? 바로 "내가 너를 알았다"는 하나님의 선언이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몰라보고, 나 스스로도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을 때,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그 사실 하나가 예레미야를 붙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방향을 잃었을 때, 오늘 이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 닻처럼 내려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신 존재,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존재, 그리고 하나님이 사명을 위해 세우신 존재입니다. 이 정체성을 가슴에 품고 이번 한 주를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나를 부르시고, 나를 세우셨다는 그 고백이 오늘 여러분 삶의 가장 든든한 기초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설교 관련 질문:
1. 하나님이 "나를 알았다"(יָדַע, 야다)는 것이 단순한 정보적 앎이 아닌 인격적 관계의 앎이라면, 나는 지금 하나님과 그처럼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2. 하나님께서 나를 태어나기 전에 이미 거룩하게 구별하셨다면(קָדַשׁ, 카다쉬), 나는 오늘 내가 살아가는 가정과 직장과 이웃을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사명의 자리로 인식하며 그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3. 예레미야처럼 "나는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두려움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가로막고 있다면, 그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오늘 어디에서 붙들고 있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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