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7장 19절 칼럼 - 흔들리는 광야에서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살았던 세례 요한은 당대 가장 단단한 믿음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그는 예수께 세례를 베풀었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치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선구자였다. 그러나 차가운 감옥의 벽에 갇힌 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그 강인했던 심령에도 의문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본문에서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 던진 질문,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라는 물음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절망의 심연에서 터져 나온 처절한 신앙적 고백이자 갈등의 발로다.
성결교회의 복음적 전통에서 볼 때, 이 질문은 인간이 겪는 연약함과 성결을 향한 갈망 사이의 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요한은 메시아가 오시면 심판의 불로 세상을 정화하고 이스라엘을 즉각적으로 회복하실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들은 소식은 예수가 죄인들과 먹고 마시며, 병든 자를 고치는 낮은 행보뿐이었다. 자신의 기대와 하나님의 섭리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거대한 괴리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영혼의 밤'과 같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에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요한처럼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되묻곤 한다.
하지만 주님은 요한의 의심을 꾸짖지 않으신다. 대신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얻는 '실제적인 복음의 역사'를 전하게 하신다. 이는 성결교회가 강조하는 사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복음은 관념적인 이론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병든 자를 치유하고 더러운 영혼을 성결케 하는 생명력이다. 주님은 요한의 기대라는 틀을 깨뜨리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고 계심을 확증해 주셨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고난이라는 감옥은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의 확신은 안개처럼 흐려진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점은 흔들리는 것은 우리의 감정과 상황일 뿐, '오실 그이'이신 그리스도의 실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결은 내 감정이 뜨거울 때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의심의 구름 속에서도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의 발치에 머무는 의지적 신뢰를 포함한다. 지금 당신의 삶이 요한의 감옥처럼 답답할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생명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계신다. 다른 이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영혼의 유일한 해답이며, 우리를 온전케 하실 성결의 본체이시기 때문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세례 요한과 같은 위대한 선지자조차 의심에 빠졌던 원인은 무엇이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적 기대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2. 예수께서 요한의 질문에 직접적인 "예, 아니오" 대신 사역의 열매를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3.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의 기대와 다를 때, 나는 어떻게 신앙의 중심을 성결하게 지켜낼 수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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