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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5장 21-22절 칼럼 - 분별의 영성, 성결한 삶의 시작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현대 사회는 가치의 혼돈 속에 살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리이고 비진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포스트모던의 홍수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성결교회의 복음적 전통은 이러한 시대적 도전 앞에서 '성결'이라는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성결은 단순히 도덕적인 깨끗함을 넘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역동적인 삶의 과정이다. 오늘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절과 22절은 그 성결한 삶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원리를 가르쳐 준다.

첫째로, 성도는 '범사에 헤아리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헤아리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마제테(dokimazete)'는 금속의 순도를 시험하듯 꼼꼼히 검증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맹목적인 수용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 아래 모든 것을 복음의 잣대로 비추어 보는 영적 비판력을 의미한다. 성결교회의 전도자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내면과 세상을 살폈다. 분별이 없는 열정은 자칫 독선이 될 수 있기에, 우리는 매 순간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부합하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둘째로, 분별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은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이다. 헤아림의 목적은 단순히 비판하는 데 있지 않고, 참되고 선한 것을 붙잡는 데 있다. 성결의 은총을 입은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善)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자신의 삶에 굳게 고착시킨다. 이는 소극적인 신앙을 넘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려는 의지적 결단이다. 복음적 전통 안에서 선한 것을 취한다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성화의 과정을 말한다.

셋째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22절의 '모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이두스(eidous)'인데, 이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악의 모든 종류와 형태를 포괄한다. 성결한 삶은 죄와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거부에서 완성된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악의 모양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영혼을 더럽히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한다면 단호히 끊어내야 한다. 성결교회는 전통적으로 '온전한 성결'을 강조해 왔다. 이는 우리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악의 뿌리를 뽑아내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상태를 지향한다.

결국,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삶은 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도우심과 은혜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분별하고 거룩함을 지켜낼 수 있다. 성결은 멈춰있는 상태가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악을 멀리하고 선을 택하는 치열한 영적 전투의 결과물이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흠 없고 순전한 산 제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분별의 영성을 통해 세상 속에서 성결의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일상의 사소한 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가치를 분별하는 나만의 기준은 무엇인가?

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이 현대인의 복잡한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

3. 내가 현재 굳게 잡고 있는 '좋은 것'은 진정으로 나를 성결한 삶으로 인도하고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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