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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장 19절 칼럼 - 헐라, 그리고 일으키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후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였다. 그 질문 앞에서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겉으로 보면 물리적인 성전을 두고 하신 도전적인 선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 말씀이 예수 자신의 몸, 곧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킨 것임을 분명히 증언한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건물의 성전만을 생각했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 임재의 참된 자리가 어디인지를 드러내고 계셨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요, 죄 사함과 회복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성전은 신앙의 본질보다 제도와 형식, 이해관계가 얽힌 공간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 왜곡된 중심을 흔드시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건물이나 제의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선포하신다. 헐라 하신 말씀은 파괴를 즐기라는 명령이 아니라, 잘못 세워진 신앙의 구조를 내려놓으라는 초청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불편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성전들을 마음속에 세워 두고 살아간다. 오래된 습관, 굳어진 생각, 안전하다고 여기는 종교적 틀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가두고 있다면, 주님은 여전히 말씀하신다. “헐라.” 주님은 무너뜨리신 후에 반드시 일으키시는 분이시다. 사흘 만에 일으키신다는 말씀은 고난이 끝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진다는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실패처럼 보였으나, 부활은 하나님의 새 창조를 열었다.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는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가 세워졌다. 이제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성전에만 거하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그러므로 성전을 헐라는 말씀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다. 나의 옛 자아가 무너질 때, 주님의 생명이 그 자리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복음을 제한하고 있는가.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 한가운데서 참된 성전을 세우기 원하신다. 그 성전은 십자가를 통과한 부활의 생명 위에 세워진다. 헐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무너짐 속에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증언하는 복음의 깊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신앙생활 속에서 결코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나만의 성전’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2. 주님께서 헐라 하실 때,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순종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3. 내 삶의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새롭게 일으키시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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