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레미야 1장 5절 칼럼 - 당신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필연적 사랑의 결과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우리는 종종 거대한 우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먼지처럼 작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쁜 일상에 치여 기계 부속품처럼 살아가다 보면, '나는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세상은 우리를 능력이나 소유로 평가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마치 실패한 인생인 양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 존재의 기원을 생물학적 우연이나 확률의 결과로 보지 않는다. 오늘 소개한 예레미야서의 구절은 한 생명이 잉태되기 전부터 신의 세심한 계획과 앎 속에 있었음을 선포한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선지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이 땅에 호흡하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던지는 위로와 존엄의 메시지다.
본문에서 "지었다"라는 표현은 토기장이가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듯, 구체적인 의도와 형상을 가지고 빚어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이 아니라, 창조주의 손길이 닿은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너를 알았다"는 대목이다. 여기서 '알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Yada)'는 단순한 지식적 정보 습득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아주 깊고 친밀한 관계적 앎을 의미한다. 누군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이해한다는 것, 나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나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엄청난 존재론적 안정감을 준다. 당신은 낯선 세상에 홀로 던져진 고아가 아니다. 당신의 시작에는 누군가의 간절한 기다림과 앎이 있었다.
또한, 성경은 우리를 "성별하였다"라고 말한다. 성별(聖別)이란 '구별하여 따로 세웠다'는 뜻이다. 이는 종교적인 엘리트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각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고유한 목적과 쓰임새가 있다는 뜻이다. 남들과 비교하며 그들의 인생을 흉내 낼 필요가 없다. 장미는 장미로서, 백합은 백합으로서 아름답듯, 당신은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로 구별된 가치를 지닌다. 세상의 기준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일이다.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 당신이 감당하는 그 일상 속에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고유한 몫이 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지루했던 일상은 소명(Calling)의 현장으로 바뀐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나 어쩌다 보니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당신의 인생은 태초부터 시작된 신의 기억 속에 있었고, 지금도 그 필연적인 사랑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 그러니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포기하지 마라.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깊고, 존귀한 계획 안에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크게 나를 사랑하는 존재가 있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허무를 넘어 참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오늘 하루,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해주자. "나는 계획된 존재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이 고백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반석이 되기를 바란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라는 존재가 우연이 아닌 신의 계획 속에 있다는 사실이 현재 겪고 있는 자존감의 문제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가?
2. 히브리어 '야다(알다)'의 개념을 인간관계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
3. 자신이 '성별된(구별된)' 존재임을 인식할 때, 직업이나 일상을 대하는 태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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