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요한복음 2장 9절  칼럼 - 물 떠온 하인만 아는 비밀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인생은 종종 뜻하지 않은 순간에 결핍을 마주한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사건은 우리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잔치의 흥이 깨지고 주인의 체면이 구겨질 위기다. 인생의 기쁨을 상징하는 포도주가 바닥난 순간, 예수께서는 개입하신다. 그런데 이 기적의 현장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바로 '맛보는 자'와 '아는 자'다.

연회장은 잔치를 주관하는 전문가다. 그는 포도주의 맛을 감별하고 그 탁월함에 감탄한다. 그러나 정작 그 출처는 모른다. 반면, 하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포도주의 맛을 즐길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어찌 보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명령에 순종하여 땀 흘려 물을 길어 날랐을 뿐이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기록한다.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기적의 결과만을 누리는 사람은 그 기쁨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운이 좋았다거나,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여길 뿐이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의 땀방울을 흘린 사람은 안다. 맹물 같은 밋밋한 현실이 예수의 말씀과 만날 때 어떻게 극상품 포도주로 변하는지, 그 비밀스러운 과정을 목격한다. 이것이 바로 '체험적 신앙'의 본질이다. 성결교회가 강조하는 중생과 성결의 은혜 역시 머리로 이해하는 교리가 아니라, 순종의 현장에서 부딪치며 경험하는 실제적인 변화다.

세상은 결과에 환호한다. 연회장처럼 눈앞에 놓인 성공과 풍요를 평가하고 누리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신앙의 깊이는 누림이 아니라 '앎'에 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일함으로 얻어지는 친밀함이다. 아무런 맛도 향도 없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화학적 변화보다 더 위대한 기적은, 불평 없이 물을 떠다 나른 하인들의 순종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의 인생 항아리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혹시 기쁨의 포도주가 떨어져 낙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연회장의 자리에서 내려와 하인의 자리에 서야 한다. 이해되지 않아도, 당장 눈앞에 변화가 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물을 채우고 떠다 나르는 순종이 필요하다. 기적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세상은 결과를 마시고 취하지만, 순종하는 자는 예수를 마시고 깨어난다. 우리 삶의 진짜 기쁨은 포도주 자체가 아니라,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주님을 아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내 삶에서 현재 '포도주'가 떨어져 결핍을 느끼고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

2. 나는 신앙생활에서 결과만을 누리는 '연회장'인가, 아니면 과정에 순종하여 비밀을 아는 '하인'인가?

3. 내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물 떠오는 일'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