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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9편 4절 칼럼 - 사랑이 미움으로 돌아올 때, 나는 기도가 된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우리의 삶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베푼 호의가 무시당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으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배신과 근거 없는 비난일 때, 인간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억울함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곧 복수의 칼날을 갈게 만든다. 이것이 인지상정(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오늘 시편 기자는 이 처절한 배신의 상황 앞에서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는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나를 대적한다"라고 현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문장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간다. "나는 맞서 싸우겠다"거나 "나도 그들을 저주하겠다"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기도할 뿐이라"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깊은 영적 의미가 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이 구절은 더욱 충격적이다. 우리말 성경은 "나는 기도할 뿐이라"라고 번역하여 마치 기도가 하나의 행동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원어인 히브리어로는 '바아니 테필라(Va'ani tefilah)'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직역하면 "그러나 나는 기도입니다"라는 뜻이 된다.

내가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가 '기도가 되는' 경지다. 이것은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하나님께 엎드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세상이 나를 향해 쏟아내는 저주와 비난의 소음 속에서, 내 인격과 삶 전체를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억울함을 해명하려 들면 말싸움이 되고, 똑같이 갚아주려 하면 진흙탕 싸움이 된다. 하지만 그 모든 아픔을 안고 침묵하며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기도 그 자체'가 된 사람으로 거듭난다.

성결교회가 추구하는 성결(Sanctification)은 고요한 수도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선이 악으로 되돌아오는 치열한 삶의 현장 한복판에서 완성된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향해 변명 대신 기도가 되셨다. 배신의 쓴잔을 마실 때, 입을 열어 사람과 싸우지 말고 하늘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미움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된다. 당신을 대적하는 자들 앞에서도 당신은 여전히 사랑이며, 끝내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승리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최근 내가 베푼 호의가 오해나 비난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어떤 감정과 반응을 보였는가?

2.  기도를 단순히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가?

3.  억울한 상황 속에서 사람에게 해명하기보다 침묵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의 존재'로 서기 위해 내가 훈련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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