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고보서 2장 22절 칼럼 - 믿음의 온전함은 발끝에서 완성된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마음의 평안이나 지적인 동의 정도로 오해하곤 한다. 교회 안에서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이 단순히 예배에 빠지지 않거나 기도를 유창하게 하는 것으로 평가될 때가 많다. 그러나 야고보서 기자는 오늘 우리에게 믿음의 본질에 대해 아주 날카로운 도전을 던진다. 믿음은 머물러 있는 명사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사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사도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약속을 머리로만 긍정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앞에서 실제로 모리아 산을 향해 걸어갔다. 본문은 이것을 두고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worked together)"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함께 일하고'라는 헬라어는 '쉬네르게이(synergei)'로, 우리가 흔히 쓰는 '시너지(synergy)'의 어원이다. 즉,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갈 때 비로소 추진력을 얻는다는 뜻이다.
성결교회가 강조하는 성결(Holiness) 역시 관념이 아니다. 거룩함은 기도원이나 골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삶의 방식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날개 한 쪽이 부러진 새와 같다. 날 수 없는 새가 새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듯,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이기적이고, 똑같이 분노하며, 똑같이 탐욕스럽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직 '온전하게(teleioō)' 되지 못한 것이다. 온전해진다는 것은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믿음의 목적지는 결국 삶의 변화다.
현대 사회는 말의 홍수 속에 빠져 있다. 화려한 언변과 논리는 넘쳐나지만, 진실한 삶의 무게는 가벼워졌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세련된 교리가 아니라, 투박하더라도 진실한 손과 발의 수고다. 가난한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부당한 이익을 거절하는 정직함,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결단, 이 모든 구체적인 '행함'들이 모여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고 완성한다.
당신의 믿음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머리인가, 가슴인가, 아니면 발끝인가? 믿음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땀 냄새가 나고, 눈물이 묻어 있으며, 흙먼지가 묻어있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다. 오늘 하루, 당신의 믿음이 작은 실천을 통해 온전함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행함으로 증명되지 않는 믿음은 힘이 없지만, 삶으로 번역된 믿음은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 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의 신앙생활에서 '믿음'과 '행함'의 균형은 어떠한지, 혹시 머리로만 믿고 실천은 미루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보자.
2. 본문에서 말하는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를, 나의 구체적인 일상(직장, 가정 등)에 대입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3. 오늘 하루, 나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함'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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