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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28절 칼럼 - 의심의 끝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우리는 '확신'보다 '의심'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며,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허구로 치부한다. 합리적 이성이라는 잣대 앞에서 신앙은 종종 설 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성경은 의심을 무조건 정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의심의 끝자락에서 가장 위대한 신앙 고백이 탄생했음을 보여준다. 바로 도마의 이야기다.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동료들의 증언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이것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따랐던 스승의 죽음 앞에서 겪은 깊은 상실감과 절망의 표현이었다. 그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시 걸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원했다.

8일 후, 예수께서 다시 오셨다.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신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주님은 도마의 의심을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의 불신조차 품으시며 당신의 상처 입은 몸을 기꺼이 내어주셨다. 이때 도마의 반응은 놀랍다. 성경은 도마가 실제로 손을 넣어보았는지 기록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임재와 사랑 앞에서 더 이상의 검증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신약 성경에서 가장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고백을 토해낸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나의(My)'이다. 그전까지 예수는 '우리의 선생님'이거나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심의 터널을 통과하고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마주한 순간, 예수는 객관적인 신(God)에서 도마 자신의 주권자가 되셨다. 헬라어 원문(Ho Kyrios mou kai ho Theos mou)은 이 고백이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예수를 야훼 하나님과 동등한 본질로 인정하는 최고의 신앙 고백임을 보여준다.

신앙은 의심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심을 들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우리의 이성이 멈추는 곳, 우리의 논리가 무너지는 그 지점에 부활하신 주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머리로만 알던 하나님이 가슴으로 내려와 '나의 하나님'이 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송두리째 변화된다. 오늘 당신의 의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 의심을 덮어두지 말고 주님께 내어놓으라. 그때 비로소 우리는 2천 년 전 도마가 경험했던 그 전율, 죽음을 이기신 생명의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도마가 요구했던 '증거'와 오늘날 현대인들이 신앙을 갖기 위해 요구하는 '증거'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2.  예수님을 단순히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에는 신앙적으로 어떤 깊이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3.  나의 삶에서 도마처럼 의심이 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으며, 그 의심이 해소되거나 혹은 신앙이 깊어지는 계기가 된 경험이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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