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2장 42절 칼럼 - 두 렙돈의 무게, 그 진심의 셈법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루살렘 성전의 여인들의 뜰에는 나팔 모양의 헌금함 열세 개가 놓여 있었다. 유월절을 앞둔 성전은 수많은 순례자로 붐볐고, 헌금함으로 떨어지는 동전 소리는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듯 묵직한 은화와 금화를 던져 넣었다. 짤랑거리는 그 경쾌한 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소음 속에 한 가난한 과부가 조용히 다가왔다. 그녀가 넣은 것은 두 렙돈, 당시 통용되던 화폐 중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 두 닢이었다.
두 렙돈은 로마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한 고드란트'에 불과하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데나리온의 64분의 1에 해당하는 가치다. 오늘날로 치면 껌 한 통도 사기 힘든, 길에 떨어져 있어도 굳이 줍지 않을 만큼 하찮은 액수다. 제사장들이나 관리들의 눈에 이 헌금은 장부 정리조차 귀찮은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세상의 계산법으로 그녀의 헌금은 통계적 가치가 '0'에 수렴한다.
그러나 그 순간, 성전 맞은편에 앉아 계시던 예수의 눈이 빛났다.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충격적인 선언을 하신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수학적으로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이 셈법은 어디서 온 것일까.
예수의 시선은 동전의 액수가 아니라, 그 동전을 쥐고 있던 여인의 떨리는 손과 중심을 향했다.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서(perisseuontos)' 얼마를 떼어 냈지만, 이 과부는 '궁핍한 중에서(hystereseos)' 자신의 소유 전보를 넣었다. 여기서 '소유'로 번역된 헬라어 '비온(bion)'은 단순히 재물이 아니라 '생명' 혹은 '생활 자체'를 의미한다. 그녀는 돈을 넣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명을 하나님께 의탁한 것이다.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막막한 내일을 오직 하나님의 처분에 맡긴, 전적인 신뢰와 헌신의 행위였다.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모든 가치를 숫자로 환산하는 데 익숙하다. 교회의 사역조차 효율성과 가성비를 따질 때가 많다. 많이 가진 자가 많이 기여한다고 믿으며, 작은 자들의 헌신을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세상과는 다른 저울이 있다. 그 저울은 잉여의 헌신이 아닌, 결핍 속에서 피어난 진심의 무게를 잰다.
당신이 가진 것이 작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마라. 화려한 조명도, 사람들의 박수갈채도 없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드리는 당신의 '두 렙돈'을 주님은 보고 계신다. 세상은 거대한 액수에 놀라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다한 작은 헌신에 감동하신다. 오늘 우리가 드려야 할 것은 지갑 속의 잉여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전부다. 그것이 기적을 만드는 하늘의 셈법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우리는 사람의 가치나 헌신을 평가할 때, 그 내면의 진심보다 눈에 보이는 규모나 액수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2. '풍족한 중의 일부'와 '궁핍한 중의 전부'라는 대조 속에서, 현재 나의 신앙생활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3. 나의 삶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마지막 안전장치'는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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