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15장 20절 성령의 칼럼 - 아버지 품의 회복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죄의 끝자락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택은 돌이킴이다. 둘째 아들이 주리고 비참한 현실에서 일어나 아버지께로 향하기로 결단한 순간, 하늘의 역사는 시작된다. 성령은 성도의 마음속에 거하며 세상의 욕망이 주는 갈증을 깨닫게 하고, 진정한 생명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끊임없이 속삭인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음을 고백할 때, 성령의 권능은 비로소 그 발걸음을 인도하기 시작한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라는 표현은 성도가 느끼는 하나님과의 영적 거리를 상징한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우리로 하여금 감히 아버지 앞에 서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그러나 성령은 그 거리가 결코 사랑의 크기를 넘지 못함을 증명한다. 성도가 머뭇거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하늘의 은혜는 이미 우리를 향해 열려 있다. 마음의 방향이 결정된 순간 회복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먼저 발견한다. 이는 성령이 성도보다 앞서 행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이미 다 알고 계심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초라한 행색이나 실패의 흔적을 탓하지 않는다. 오직 돌아왔다는 사실 그 자체에 주목한다. 성령의 눈은 세상의 판단 기준과 다르다. 세상은 결과를 보지만 성령은 중심을 보며, 그 중심이 하나님을 향할 때 천국은 잔치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달려가신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른이 달리는 것은 체면을 잃는 일이었으나, 사랑은 체면보다 귀하다. 성령은 성도가 겪는 고통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위로를 건네신다. 율법의 잣대로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먼저 손을 내미신다. 이러한 역동적인 사랑의 움직임이야말로 성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며, 차가운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불씨가 된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행위는 인격적인 연합과 완전한 용서의 확증이다. 아들은 종의 하나로 써달라고 빌려 했으나, 아버지는 그를 다시 아들의 권위로 높여주신다. 성령은 우리 안에 임재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날마다 인친다. 죄로 인해 더러워진 옷을 벗기고 정결한 세마포를 입히시는 그 손길은 성도의 상처 입은 자아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부여한다.
이제 성도는 더 이상 방황하는 나그네가 아니다. 아버지의 품이라는 영원한 안식처를 소유한 존귀한 존재다. 삶의 고단함이 밀려와 다시 먼 나라로 떠나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며,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지금도 대문 밖에서 서성이신다. 그 깊고 넓은 사랑의 품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지금 당신의 발걸음은 아버지를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을 향하고 있는가?
2. '아직 거리가 먼데' 나를 보시고 달려오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는가?
3.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영역이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어떻게 극복하겠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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