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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장 4절 칼럼 - 멈추어 서는 용기, 들려오는 부르심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40년의 광야 생활은 모세의 혈기와 희망을 모두 앗아간 듯 보였다. 한때 이집트의 왕자로 화려한 문명을 누렸던 그였지만, 이제는 미디안의 척박한 들판에서 양 떼를 치는 노인에 불과했다. 일상은 단조롭고 희망은 마른 풀처럼 바스라져 가던 어느 날, 그는 호렙산 기슭에서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 그것은 단순히 자연 현상을 넘어 모세의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였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모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셨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뜻을 강요하기보다, 인간이 그분의 신비 앞에 스스로 멈추어 서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분주한 일상의 궤도에서 잠시 이탈하여 영적인 호기심을 가질 때, 비로소 하늘의 대화는 시작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물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주목하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통해 역사를 바꾸신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울려 퍼진 “모세야 모세야”라는 음성은 단지 이름의 호명을 넘어선다. 성경에서 이름을 두 번 반복하여 부르시는 행위는 간절함과 친밀함,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중대한 사명의 부여를 의미한다. 성결의 신앙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세상이 부여한 직함이나 나조차 잊고 지냈던 초라한 자아가 아니라, 창조주가 부르시는 그 음성 안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세상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에 달려 있다.

모세의 대답은 짧지만 강렬하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것은 단순한 위치의 보고가 아니라 전 존재를 내어드리는 마음의 항복이다. 자신의 무능함과 지나온 세월의 상처를 숨기지 않고, 부르시는 이 앞에 온전히 자신을 노출하는 태도다. 성결교회의 전통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그분의 영으로 채워지기를 갈망하는 전적 순종을 강조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내가 지금 누구 앞에 서 있느냐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광야와 다르지 않다. 반복되는 업무와 끝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놓치기 일쑤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삶의 현장, 그 작고 초라한 떨기나무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분을 바라보라. 그 부르심에 정직하게 응답할 때, 평범했던 광야는 거룩한 땅으로 변하고 모세의 메마른 지팡이는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

칼럼에 관한 질문:

1. 모세가 떨기나무를 보러 ‘돌이켜 오는 것’을 하나님이 보셨다는 대목에서, 우리 삶에 필요한 ‘멈춤’의 의미는 무엇인가?

2.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 번 반복하여 부르실 때 느껴지는 신앙적 친밀감과 사명감은 모세의 심경을 어떻게 변화시켰겠는가?

3.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고백이 오늘날 현대인의 바쁜 삶 속에서 어떤 실제적인 순종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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