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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6절 칼럼 - 비워야 채워지는 생명의 강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2,000년 전 유대 광야 요단 강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의 거친 외침 앞에 섰다. 그 외침은 단순히 도덕적인 훈계나 종교적인 요식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의 깊은 밑바닥을 울리는 하늘의 경고이자 초대였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갈증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며, 그 결핍의 근원에는 창조주를 떠난 인간 본연의 소외와 죄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은 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요단 강으로 나아갔다.

성경은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자복(自服)이란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인정하고 빛 가운데 드러내는 행위다. 이는 견고한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뼈아픈 과정이지만, 동시에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 감추어둔 상처와 죄를 정직하게 대면할 때, 비로소 치유와 회복의 역사는 시작된다. 숨기는 자는 결코 평안을 얻을 수 없으나, 털어놓는 자는 하늘의 위로를 경험한다.

요단 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이곳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옛 자아를 강물에 장사 지내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물속으로 잠기는 찰나의 순간은 교만했던 과거의 죽음을 의미하며, 물 위로 다시 올라오는 순간은 생명의 부활을 뜻한다. 더러운 물을 쏟아내지 않은 그릇에는 맑은 물을 담을 수 없듯, 죄의 자복과 씻음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경험할 수 없는 법이다.

성결교회의 신앙 전통에서 '중생'과 '성결'은 핵심적인 가치다. 세례 요한의 물 세례가 회개의 시작인 중생을 예표한다면, 이후에 오실 그리스도의 성령 세례는 우리를 온전한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성결의 은혜를 상징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식어나 종교적 포장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가난한 마음이다. 그것이 성결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일상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는 현대인들에게 요단 강의 부름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직한 고백은 수치가 아니라 가장 고귀한 용기이며, 그 고백의 끝에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형언할 수 없는 평안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우리 마음속의 요단 강가로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를 얽매던 죄의 사슬과 무거운 짐을 자복이라는 이름으로 풀어놓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분이 주시는 맑은 생명수가 메마른 우리 영혼을 새롭게 적실 것이다.

칼럼에 관한 질문:

1. 본문에서 언급된 '자복'이 현대인들에게 심리적 해방감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요단 강이 지니는 역사적, 신앙적 상징성이 오늘날 우리의 '새로운 시작'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3. 성결교회의 '사중복음' 관점에서 볼 때, 회개(자복)는 왜 성결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되나요?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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