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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장 11절 칼럼 - 사랑, 성결한 삶의 시작이자 완성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명료하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도 요한은 이 짧은 문장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붙들어야 할 가장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명령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며, 우리가 복음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들었던 가장 기초적인 소식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바로 서듯, 우리 신앙의 성패는 이 사랑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결교회의 전통에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성화의 증거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성령 세례를 받은 성도의 자연스러운 열매다. 죄로 인해 오염되었던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자를 향한 진정한 긍휼의 마음을 품게 된다. 따라서 서로 사랑하라는 권고는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의무이자, 은혜 안에 거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오늘날 세상은 갈등과 분열로 점철되어 있다. 이기심이 미덕으로 포장되고,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교회는 달라야 한다. 요한은 '서로'라는 단어를 통해 사랑의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고 세워주는 유기적인 관계 맺기가 성결한 삶의 실제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가야 한다.

사랑은 관념 속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도 요한이 이 소식을 '처음부터 들은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것이 복음의 변하지 않는 정수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희생적 사랑이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확신할 수 있다.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세상에 알리는 가장 강력한 신분증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화려한 수식어나 복잡한 신학 체계보다 중요한 것은 내 곁에 있는 지체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다. 성결의 은총을 사모하는 자라면, 가장 먼저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처음 들은 그 소식을 다시 붙잡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사랑을 일구어 나가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하고도 영원한 사명이다.

칼럼에 관한 질문:

1.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 오늘날 나에게 여전히 신선한 신앙적 동력이 되고 있는가?

2. 나의 성결함이 개인적인 만족에 그치지 않고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 발현되고 있는가?

3. 오늘 내가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할 '내 곁의 이웃'은 누구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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