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기 19장 4절 칼럼 - 비어 있는 시선을 채우는 온전한 방향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곧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스마트폰의 화려한 화면부터 타인의 화려한 일상, 그리고 끝없이 솟구치는 물질적 욕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눈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레위기 19장은 거룩함을 명령하며 그 구체적인 실천의 첫걸음으로 시선의 방향을 언급한다. '헛된 것들'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엘릴림'인데, 이는 본래 '비어 있다' 혹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우리가 목매는 세상의 가치들이 결국은 실체가 없는 허무한 것임을 성경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성결교회의 영성은 '성결' 곧 하나님과 합치되는 삶을 지향한다. 성결의 삶은 단순히 도덕적인 깨끗함을 넘어, 내 마음의 중심에서 우상을 몰아내는 결단에서 시작된다. 본문에서 경계하는 '부어 만든 신상'은 단순히 고대의 금속 조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진 모든 수단과 목적을 상징한다. 오늘날의 우상은 나의 안락과 성공을 위해 신의 자리에 올려둔 모든 것들이다. 내가 나를 위해 만든 신상은 결국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고 만다.
우상은 본질적으로 탐욕의 투영이다. 사람들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 즉 신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손에 잡히는 것은 결코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수 없다. 성결한 삶이란 이 '헛된 것'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바라보는 용기다. 세상을 향하던 고개를 돌려 창조주를 직시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선포하신다. 이 선언은 단순한 통보가 아니라 깊은 사랑의 관계를 확인하는 음성이다. 우리가 헛된 우상을 쫓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것이 금지된 규칙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는 가장 완벽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은 무엇을 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를 넘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적극적인 신뢰의 관계다.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비어 있는 마음을 온전히 채울 수 있다.
결국 성결은 시선의 교정이다. 헛된 것에 빼앗겼던 마음을 거두어 생명의 근원이신 분께로 향하는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너를 위한 신상'을 만들라고 유혹하지만, 성도는 그 유혹의 허무함을 간파해야 한다. 오늘 하루, 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자. 헛된 것들이 주는 찰나의 만족에 속지 않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말씀하시는 그분의 품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거룩한 지혜다.
칼럼에 관한 질문:
1.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서 '부어 만든 신상'과 같이 나를 위해 세워둔 우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2. '헛된 것(엘릴림)'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우리 내면의 평안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3.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는 선언이 불안한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실질적인 위로와 힘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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