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25편 4절 칼럼 - 생의 길목에서 참된 길을 묻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오늘 걸어가야 할 길을 고민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막막함을 느낀다. 정보가 범람하고 수많은 조언자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방향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묻는 이들에게 오늘 성경의 시인은 단호하고도 겸손한 기도를 드린다.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이 기도는 단순히 지리적인 방향을 묻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道)'와 '길'은 히브리어로 '데레크'와 '오라흐'인데, 이는 한 사람의 삶의 궤적과 도덕적 습관,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진리의 체계를 의미한다. 성결교회의 신앙 전통에서 이 길은 곧 '성결의 길'이다. 우리는 내 생각과 세상의 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의 방식을 삶의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시인이 "보이시고 가르쳐 달라"고 간구한 이유는 인간의 지혜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며,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하곤 한다. 참된 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안의 지도와 나침반을 내려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철저한 자기 부정이자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은 때로 험하고 좁은 길일 수 있으나, 그 길의 끝에는 생명이 있고 참된 안식이 있다.
"가르치소서"라는 표현은 일회적인 깨달음을 넘어 지속적인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내포한다. 길은 한 번에 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 하나님은 그다음 한 걸음을 비추어 주신다. 이는 마치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작은 등불과 같다. 말씀이라는 등불을 의지하며 묵묵히 순종의 발걸음을 옮길 때, 비로소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오늘 당신이 서 있는 그 길목이 어디든 상관없다. 방황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참된 길을 찾기 위한 갈망의 신호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창조주께 길을 물으라. 성결한 삶은 거창한 구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주어진 작은 길에서 주의 뜻을 구하며 한 걸음씩 옮기는 그 정직한 발걸음에 있다. 주님은 찾는 자에게 반드시 그 길을 보이시고, 당신의 손을 잡아 이끄실 것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본문에서 시인이 '주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한 이유는 인간의 어떤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2. '보여주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이며, 이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3.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뜻(길)을 분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방해 요소는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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