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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장 3절 칼럼 -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품격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자기 증명’의 시대다. 서점에 가면 자존감을 높이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즐비하고, SNS는 화려한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물론 건강한 자아상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과해져 타인을 깎아내리면서까지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이 꿈틀댈 때, 공동체에는 균열이 생긴다. 성경은 이러한 태도를 경계하며 인간관계의 본질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다툼’은 헬라어로 ‘에리데이아(eritheia)’인데, 이는 이기적인 야망을 뜻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편을 가르고 계략을 꾸미는 태도다. ‘허영’은 ‘케노독시아(kenodoxia)’로, 말 그대로 ‘비어있는(keno) 영광(doxa)’을 의미한다. 내실 없이 겉치레만 화려한 명예, 즉 거품 같은 자존심을 붙들고 사는 삶은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갈등을 유발한다. 속이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다.

이에 대한 처방으로 성경은 ‘겸손’을 제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겸손은 단순히 고개를 숙이거나 비굴하게 구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나의 한계를 아는 것이 겸손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겸손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완성되는데, 바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다.

한국어 성경에서 이 대목은 매우 흥미롭다. ‘낮게(lowly)’가 아니라 ‘낫게(better)’다. 받침 하나 차이로 뜻이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상대를 나보다 ‘낮게’ 깔보는 순간 갑질과 무시가 싹트지만, 상대를 나보다 ‘낫게’, 즉 더 훌륭한 존재로 인정하는 순간 존중과 배려가 싹튼다.

상대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은 그가 가진 지위나 재산 때문이 아니다. 그 사람 자체에 깃든 고유한 가치와, 내가 갖지 못한 그만의 장점을 인정해 주는 태도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고, 서툰 사람에게서도 숨겨진 잠재력을 발견해 주는 눈이다. 이것이 성결교회가 추구하는 ‘성결’의 사회적 실천이다. 마음의 정결함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증명되기 때문이다.

이기심과 허영은 결국 나를 고립시키지만, 겸손과 존중은 우리를 연결한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올려다보자. “당신은 나보다 낫습니다. 당신에게는 내가 없는 훌륭함이 있습니다.” 이 마음의 고백이 팍팍한 우리의 일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가 될 것이다. 남을 높일 때, 비로소 나도 함께 높아지는 신비가 여기에 있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현대 사회에서 ‘자존감’과 성경이 말하는 ‘겸손’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2.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도저히 존경하기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를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는가?

3.  ‘허영(empty glory)’이 현대인의 소비 습관이나 인간관계에 미치는 구체적인 악영향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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