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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장 2절 칼럼 - 공명(共鳴), 마음이 닿는 기적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우리는 지금 '소통'을 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불통'인 시대를 살고 있다. 타인의 목소리는 소음으로 치부되고, 오직 나의 주장만이 진리라고 외치는 세상이다. 이러한 분열의 시대에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를 향해 보낸 편지는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바울은 자신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 무엇을 요구했는가? 그것은 거창한 성과나 숫자가 아니었다. 바로 '하나 됨'이었다.

본문에서 말하는 '마음을 같이하여(프 로네이테, phroneite)'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똑같은 생각을 하라는 강요가 아니다. 이는 서로 다른 악기가 지휘자의 손끝을 바라보며 하나의 교향곡을 만들어내듯, 우리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통의 지향점에 두라는 뜻이다. 각자의 개성과 생각은 다르지만, 그 방향이 주님을 향해 정렬될 때 비로소 진정한 연합이 시작된다.

이어지는 '같은 사랑을 가지고'라는 권면은 감정적인 호감을 넘어선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조건 없는 사랑, 곧 아가페의 사랑을 공유하라는 것이다. 나와 성향이 맞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세상도 한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는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공통 분모 안에서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존재까지 품어내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공동체다.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라는 구절은 '혼(soul)이 같이 된 상태(슁쉬코이, sympsychoi)'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동의를 넘어 생명을 공유하는 유기체적 결합을 말한다.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공감의 영성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결핍된 것이 바로 이 '한마음'이다.

성결교회는 사중복음 중 '성결'을 강조한다. 진정한 성결은 개인의 도덕적 깨끗함을 넘어, 관계 속에서 화평을 이루는 능력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내 안의 자아와 고집을 비워내지 않고서는 결코 타인과 한마음을 품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낮아짐을 통해 서로의 틈을 메워야 한다.

오늘 하루, 내 주장을 잠시 내려놓고 옆 사람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자. 서로의 다름을 비난하기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여낼 때, 차가운 벽은 무너지고 따스한 '공명'이 시작될 것이다. 그것이 교회가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마음을 같이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을 포기하는 것과 어떻게 다르며, 건강한 연합을 위해 나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2. 내가 현재 공동체(가정, 교회, 직장) 안에서 '같은 사랑'으로 품기 가장 어려운 대상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3. 예수님의 낮아지심(자기 비움)이 오늘날 나의 인간관계 갈등을 해결하는 데 어떤 구체적인 열쇠가 될 수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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