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수기 27장 16절 칼럼 - 영을 세우는 기도
"여호와께서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원하건대 여호와께서 이 회중 위에 한 사람을 세우사"
모세는 지금 죽음 앞에 서 있었다. 하나님은 이미 그에게 선고를 내리셨다—너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억울함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자기 죽음이 아니라 자기 뒤에 남을 백성을 생각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탄식이 아니라 기도였다.
"여호와께서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니이다(אֱלֹהֵי הָרוּחֹת לְכָל־בָּשָׂר, 엘로헤 하루호트 레콜-바사르)." 이 히브리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루아흐(רוּחַ)는 '영, 숨결, 바람'을 동시에 의미하며, 모든 피조물의 영적 존재 근거 자체가 하나님께 있음을 선언하는 말이다. 모세는 후계자를 구하면서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고백했다. 간구의 뿌리가 신앙 고백이었다.
헬라어 성경은 이 구절에서 '주님께서 모든 육체의 영들의 하나님(Κύριε ὁ Θεὸς τῶν πνευμάτων καὶ πάσης σαρκός, 퀴리에 호 테오스 톤 프뉴마톤 카이 파세스 사르코스)'이라고 옮긴다. 영과 육이 분리되지 않은 총체적 인간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고백이다. 지도자를 세우는 일은 단순한 인사(人事)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 행위임을 모세는 알고 있었다.
"원하건대 여호와께서 이 회중 위에 한 사람을 세우사"—모세의 기도에는 자기 아들의 이름이 없었다. 자신의 혈육이나 정치적 동맹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보시는 사람을 달라고 했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에서 사사로움을 내려놓는 것, 이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마지막 덕목이다. 영어 성경 ESV는 "Let the LORD...appoint a man"이라 번역하여, 임명의 주체가 철저히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우리 시대도 목자를 필요로 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정 안에서, 사회 안에서 누군가는 앞에 서야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가, 아니면 인맥과 조건으로 계산하는가. 모세의 기도는 묻는다—당신의 공동체를 위한 기도 제목에 다음 세대 지도자가 있는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자기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한 모세의 기도는 오늘 성도에게 도전이다. 내 자리, 내 유익, 내 이름보다 '하나님이 세우실 한 사람'을 위해 무릎을 꿇는 것—그것이 가장 위대한 리더십의 유산이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고, 여호수아가 세워졌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에 응답하신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지금 나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가, 아니면 공동체의 다음을 위한 기도를 하는가?
2. 내가 속한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내가 물려주어야 할 신앙의 유산은 무엇인가?
3. '하나님이 세우실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왜 인간적 계산보다 어렵고, 또 왜 더 중요한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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