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136편 2절 칼럼 - 영원한 사랑의 근원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세상에는 우리가 무의식중에 의지하고 숭배하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현대인들에게 그것은 때로 돈이 되기도 하고, 명예나 권력, 혹은 자기 자신이라는 이름의 우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명확한 어조로 이 모든 세상의 가치 위에 계신 단 한 분을 지목하며 우리를 초대한다.
히브리어 성경은 이 구절에서 ‘엘로헤 하엘로힘’(לֵאלֹהֵי הָאֱלֹהִים, Elohei ha-Elohim)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단순히 신들 중 하나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만물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주권자를 의미한다. 세상의 신들은 유한하고 조건적이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창조주는 그 모든 허상을 압도하는 실재이시다.
성경은 그분께 ‘감사하라’고 권고한다. 여기서 감사를 뜻하는 히브리어 ‘호두’(הוֹדוּ, Hodu)는 단순히 고마움을 느끼는 감정을 넘어선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공적으로 인정하고 그분께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신뢰의 고백이다. 내 삶의 주도권이 세상의 파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시인하는 행위다.
우리가 그분께 감사할 수 있는 근거는 그분의 ‘인자하심’에 있다. 원어로는 ‘카스도’(חַסְדּוֹ, Chasdo)이며, 그 뿌리는 언약적 사랑인 ‘헤세드’(חֶסֶד)이다. 이는 상대방의 자격과 상관없이 끝까지 책임을 지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뜻한다. 인간의 사랑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하나님의 헤세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다.
성도는 바로 이 영원한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다. 세상의 조건부 사랑은 우리가 쓸모를 다할 때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실패와 연약함조차 덮을 만큼 광대하다. 인생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우리가 침몰하지 않는 이유는 나를 붙들고 있는 그분의 손길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잠시 분주한 걸음을 멈추고 만유의 주재이신 그분의 인자하심을 깊이 묵상해 보자. 그 영원한 사랑이 나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힘임을 깨닫는 순간, 불안은 사라지고 진정한 평안이 시작될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유일한 소망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현재 나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는 세상의 '신'은 무엇인가?
2.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인 '헤세드'가 나의 지난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기억해 볼 수 있는가?
3.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사실이 오늘 내가 마주한 불안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바꾸어 주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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