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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편 12절 칼럼 - 은혜, 어떻게 갚을까

"여호와께서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품게 된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부모님의 헌신, 스승의 가르침, 뜻밖의 손길로 건져진 순간들. 그 무게가 마음에 쌓일 때, 사람은 보답을 생각한다. 시편 기자도 그랬다.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진 그는 붓을 들어 이렇게 고백했다. 「여호와께서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

이 질문은 채무 감각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보답하다'는 뜻의 שׁוּב(슈브)는 본래 '돌아가다', '되돌리다'의 의미를 지닌다. 즉 시편 기자의 외침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어찌 갚을 수 있겠는가?"라는 경외와 감격의 탄성이다. 셈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셈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자의 고백이다.

그 대답이 바로 다음 절에 등장한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로다」(시 116:13). '구원의 잔'은 고대 이스라엘의 제의적 표현으로, 받은 구원을 공동체 앞에서 감사로 선포하는 행위다. 갚는 방법은 더 많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기억하고 선포하는 데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보답은 '감사의 기억'이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그것을 삶 속에서 증언하는 것이다.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소박한 고백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한다. 시편 기자는 거창한 무언가를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잔을 들고, 이름을 부르고, 서원을 지키겠다고 한다.

성도에게 감사는 감정이 아니라 방향이다. 내가 어디를 향해 서 있느냐의 문제다. 은혜를 기억하는 자는 교만하지 않는다. 받은 것이 얼마나 큰지를 아는 사람은 쉽게 낙망하지 않는다. 시편 116편은 그래서 단순한 감사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신앙의 나침반이다.

오늘, 당신의 삶에 쌓인 은혜를 한번 헤아려 보라. 셀 수 없다면, 이미 그 질문을 받은 것이다.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 대답은 멀리 있지 않다. 잔을 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하루, 그 고백이 당신의 보답이 되기를 바란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당신의 삶에서 "셀 수 없는 은혜"라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으며, 그때 어떻게 반응했는가?

2. 시편 기자가 말하는 '구원의 잔을 드는 것'은 오늘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3. 감사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라는 말의 의미를 구체적인 삶의 선택과 연결하여 생각해 본다면?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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