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6장 15절 칼럼 - 온 세상에 나가라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나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 직업도, 성공도, 관계도 그 답을 온전히 채워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신 직후, 가장 먼저 이 말씀을 남기셨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구호가 아니다. 삶의 방향을 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선명한 나침반이다.
원문에서 '전파하라'는 헬라어 κηρύξατε(케뤽사테)로, 왕의 포고를 온 성에 알리는 전령의 행위를 뜻한다. 이 단어에는 두려움도, 망설임도, 선택의 여지도 없다. 전령은 왕의 말을 그대로 전할 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로 그 역할을 맡기셨다. 내 말솜씨나 신앙의 깊이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건 - 부활 - 을 전하는 것이 복음 전도의 본질이다.
'만민(萬民)'에 해당하는 헬라어 πάσῃ τῇ κτίσει(파세 테 크티세이)는 직역하면 '모든 피조물'이다. 특정 계층, 특정 문화, 특정 민족에 한정되지 않는다. 교회 안의 사람만이 아니라,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웃,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 심지어 나를 외면하는 사람에게도 이 말씀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 복음은 선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종종 복음 전도를 부담스럽게 느낀다. '거절당하면 어쩌지',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명령을 주신 때를 기억해야 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사람들이었다. 실패한 이들에게, 다시 일어선 주님이 이 사명을 맡기셨다. 자격이 아니라 은혜가 출발점이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반드시 설교단에 서는 일이 아니다.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 힘겨운 사람 옆에 조용히 앉아 있어 주는 것, 삶으로 보여주는 정직함과 친절함 - 이 모든 것이 '온 천하'를 향한 발걸음이 될 수 있다. 복음은 말이기 전에 삶이고, 선언이기 전에 동행이다.
"온 천하에 다니며"라는 말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그 자리, 오늘 내가 만나는 그 사람에서 시작된다. 진주의 골목도, 직장의 회의실도, 가족의 식탁도 모두 '온 천하'의 일부다. 이미 부활하신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모든 두려움보다 크다. 오늘, 그 한 걸음을 내딛을 용기를 내어보자.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지금 '온 천하' 중 어느 자리에서 복음의 삶을 살고 있으며, 아직 내가 외면하고 있는 '만민'은 누구인가?
2. 복음 전도를 부담으로 느끼게 만드는 내 안의 두려움은 무엇이며, 그것을 넘어서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3. '말'이 아닌 '삶'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오늘 나의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 수 있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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