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1장 4절 칼럼 - 은혜의 증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감사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 드린 감사는, 인간적 애정이나 습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히 목격했기 때문에 터져 나온 신앙의 고백이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허물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편지 전체가 그 허물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먼저 감사로 시작했다. 이것이 은혜를 아는 자의 시선이다.
"항상(πάντοτε, 판토테) 감사한다"는 바울의 고백은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되는 감사를 뜻한다. 고린도 교회는 분열과 음행과 교만으로 얼룩진 공동체였다. 그러나 바울의 눈은 먼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종종 공동체 안에서 실망과 상처를 경험한다. 그러나 성도를 향한 감사의 시선을 잃는 순간, 우리는 은혜보다 상처를 더 크게 보기 시작한다. 바울의 감사는 우리에게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은혜(χάρις, 카리스)는 헬라어로 단순히 '선물'이 아니라 받는 자의 공로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호의를 뜻한다. 고린도 성도들은 결코 은혜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것 -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이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은혜를 알면, 교만할 수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엔 크리스토 예수)"라는 표현은 바울 신학의 핵심 구조다. 은혜는 공중에 떠 있는 추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 안에서만 구체적으로 경험된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한다고, 성경을 많이 안다고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 안에 머물 때, 비로소 은혜는 살아 있는 실재가 된다. 진주충만교회 공동체가 예수 안에 머무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울의 감사는 또한 철저히 '너희를 위하여' 드려진 감사였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중보적 감사다. 목회자가 성도를 위해 감사하는 마음을 잃으면, 그것은 사역이 아니라 관리가 된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서로를 위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공동체는 은혜의 통로가 된다. 감사는 관계를 살리고, 냉랭해진 마음에 따뜻함을 불어넣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감사로 반응한다. 그 감사는 말로만 머물지 않고 삶의 태도로, 공동체 안의 섬김으로, 그리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1장 4절은 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복음의 본질 - 은혜, 그리스도, 감사 - 이 모두 담겨 있다. 오늘, 우리 모두 이 질문 앞에 서 보자.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내 곁에 주신 사람들로 인해, 그분께 감사하고 있는가?"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평소 공동체 안의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의 부족함을 먼저 바라보고 있는가?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이 나의 일상적인 신앙생활에서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3. 바울처럼 '항상' 감사하는 삶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내 안에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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