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4장 42절 칼럼 - 깨어 있으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설명하신 뒤, 단 하나의 명령으로 그 모든 말씀을 매듭지으셨다. "깨어 있으라." 이 짧은 한 마디에 신앙의 전부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잠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를 향해 영적으로 살아 있는 상태를 뜻한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여전히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울려 퍼진다.
우리는 종종 '주님이 언제 오실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날과 그 시각을 알려 주시는 대신, 오히려 "알지 못함"을 전제로 삶의 자세를 요구하신다. 이것은 무지에 대한 선고가 아니라, 매 순간을 거룩하게 살라는 은혜로운 초대다. 날짜를 알면 사람은 그 전날에야 준비한다. 그러나 모르기에 오늘을 최선으로 살아야 한다. 이 "알지 못함"은 오히려 성도를 늘 깨어 있게 만드는 하나님의 지혜다.
깨어 있음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다. 노아는 방주를 지었고, 다섯 슬기로운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지금 여기서 맡겨진 일을 충실히 감당했다'는 것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의 삶은 멈춰 선 삶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삶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 - 이것이 바로 깨어 있는 삶의 구체적인 얼굴이다.
현대인은 수많은 소음 속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알림, 뉴스의 홍수, 일상의 분주함이 영혼을 조금씩 잠들게 만든다. 영적 졸음은 대부분 극적인 타락에서 오지 않는다. 하루하루의 작은 게으름, 작은 타협, 작은 무감각이 쌓여 어느 날 우리는 주님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자리에 이른다. 예수님의 "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바로 이 일상의 영적 졸음에 대한 경고이자, 다시 눈을 뜨라는 사랑의 흔들어 깨우심이다.
결국, 깨어 있는 삶이란 주님을 사랑하는 삶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깨어 있게 된다. 주님의 오심을 두려움이 아닌 사모함으로 기다리는 성도, 그 기다림을 오늘의 충실한 삶으로 표현하는 성도 - 그것이 이 말씀이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이다. 오늘 하루도 깨어, 사랑하며,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지금 영적으로 깨어 있는가, 아니면 일상의 분주함 속에 조금씩 잠들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2. '주님이 오신다'는 사실이 나의 오늘 하루의 선택과 태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3. 깨어 있는 신앙을 지속하기 위해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점검하고 정돈해야 할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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