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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장 10절 칼럼 - 주님께 합당한 삶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수많은 선택 앞에 선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 누구를 만날지 -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그 모든 선택의 기준을 하나로 모아준다. 바로 "주께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서 "합당하게"는 '악시오스(ἀξίως, 아크시오스)'로, 저울의 양쪽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이 주님의 부르심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라는 구절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감을 넘어선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기쁨을 드린다는 것은 마음 전체를 드린다는 의미다. 히브리어로 기쁨을 뜻하는 '심하(שִׂמְחָה, 심하)'는 생명의 충만함과 연결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억지로 짜내는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온 존재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바울은 이어서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라고 말한다. 열매는 스스로 맺으려 애쓴다고 맺히지 않는다. 나무가 뿌리로부터 양분을 받아야만 열매를 맺듯, 성도의 선한 행실도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로마 감옥 안에서도 이 확신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 이 구절에서 "안다"는 것은 헬라어 '에피그노시스(ἐπίγνωσις, 에피그노시스)'로, 단순한 지식이 아닌 깊은 인격적 앎을 가리킨다. 교리를 외우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르다. 마치 누군가의 이름을 아는 것과 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 다르듯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삶 속에서 그분과 동행하며 쌓여가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의 하루는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주님께 합당한 삶이란 거창한 신앙 행위가 아니다. 가정에서 말 한마디를 조심하고,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고, 이웃에게 따뜻한 눈길을 건네는 것 - 그 소박한 일상 속에서 저울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이 된다.

주께 합당한 삶은 완벽한 삶이 아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그 앎이 행동으로 이어지며, 그 행동이 열매가 되는 삶이다. 오늘 하루도 그 저울 앞에 나 자신을 조용히 올려놓아 보자. 그것이 이 말씀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초대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의 일상적인 선택들 - 말, 태도, 시간 사용 - 은 "주께 합당한가"라는 기준으로 바라볼 때 어떻게 보이는가?

2.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간다"는 것이 나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3. 선한 열매가 의무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결에서 흘러나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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